본문 바로가기

한전 적자 줄이기에, 전기차 충전 인프라 ‘방전’ 위기

중앙선데이 2020.01.04 00:21 668호 12면 지면보기
전기자동차 보급을 늘리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정부와 더불어 전기차 충전 인프라 설치를 주도해온 민간 사업자들이 고사 위기에 처해서다. 민간 사업자들은 전기차 충전 사업이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고정비만 증가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특히 한국전력이 전기차 충전기에 적용해온 기본요금 할인 제도를 점진적으로 중단할 계획을 내놓자 이미 설치한 충전 설비를 폐쇄하는 등 사업 축소에 나서는 업체까지 등장했다. 민간 사업자의 이탈은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이어져 정부의 2022년 전기차 43만 대 보급 목표에도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충전료 할인 단계적 폐지 파장
민·관 협력으로 충전기 보급 추진
8개 사업자, 전국에 4만여 기 설치

한전 “영업손실 커 특례할인 중단”
민간업자 “버티기 어려워 폐쇄”
전기차 보급 확대도 급브레이크

#전기차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의 전기차 충전기 보급 사업에 참여했던 A사는 최근 아파트와 같은 공공주택에 설치한 전기차 충전 설비를 폐쇄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 회사 B대표는 “환경부가 추진한 지원 사업에 적극 나섰지만, 아직은 전기차 충전기 사업으로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면서 “충전기에 들어가는 유지·관리비를 빼고 나면 1기당 5000~6000원가량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장이 커졌을 때 이익을 상정하고 선점 효과를 노렸지만 갈수록 버티기 어려워지고 있어 사업을 줄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환경부의 전기차 충전기 보급 사업은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늘리기 위한 민·관 협력사업으로 2017년부터 추진했다. 환경부는 기술력을 가진 충전 사업자를 선정해 전기차 충전기 설치에 필요한 보조금을 지급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3만1515기 설치에 지원금을 나눠줬다. 이에 따라 8개 민간 사업자가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이들 민간 사업자가 전국 4만469기 전기차 완·급속 충전기 중 74.4%를 설치했다.
 
민관의 이런 노력에도 전기차 시장은 이제 막 싹을 틔우려는 단계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 충전기 민간 사업자의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전이 전기차 충전기에 적용해온 기본요금 할인을 점진적으로 없애겠다고 밝히면서 고정비 증가를 피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기본요금은 한전이 송배전망 증설과 전력 부하 관리 대가로 전기차 충전 사업자에 청구하는 일종의 수수료다. 정부는 2017년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충전기 보급에 나서며 충전 인프라를 구축한 민간 사업자들이 한전 기본요금을 면제받도록 하는 특례할인을 적용했다.
 
그러던 한전은 지난 12월 30일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올해 하반기 전기차 충전기에 대한 기본요금 50% 부과 방침을 정했다. 지난 한 해 자회사를 제외한 한전만의 영업손실이 1조5000억원에 이를 전망인 만큼 전기차 충전 전력요금 할인 등 환경과 미래 산업 관련 할인 혜택을 폐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2021년 하반기부턴 재차 75%를 부과, 2022년 6월을 끝으로 기본요금 특례할인을 폐지할 계획이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 특례할인으로 지난해 333억원을 포함 지금까지 595억3000만원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에 따른 전기차 충전 민간 사업자의 타격이다. 전기차 충전기에 한전이 부과한 기본요금은 7㎾급 완속충전기 기준 2만534원(부가세, 전력발전기금 포함)이다. 여기서 50%만 해도 1만200원이다. 특히 기본요금은 전기차 충전기 각각에 모두 부과된다. 가령 전국에 가장 많은 전기차 충전기를 구축한 민간 사업자 파워큐브는 7894기(12월 기준)에 대한 기본요금으로만 매월 약 8000만원을 새로 내야 한다. 한찬희 파워큐브 대표는 “기본요금이 적용되면 내년 하반기 매월 1억2000만원 적자가 날 것”이라고 걱정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기차 충전기 유지·관리를 중단하겠다는 민간 사업자도 속속 늘고 있다. 환경부의 전기차 충전기 보급 사업에 참여했던 민간 사업자 C사 측은 “전기차가 이제 막 늘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요금이 부과되면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회사의 D 대표는 “환경부의 전기차 충전기 보급 사업은 충전기 설치 보조금을 지원해주는 사업으로 2년간 유지·보수 의무를 지게 했다”면서 “2017년부터 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기본요금이 부과되는 올해 하반기에 2년이 지난 전기차 충전기는 비용 절감을 위해서라도 유지·관리를 멈출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충전기 사업을 포기하는 민간 사업자가 늘면 전기차 보급 확대에도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충전 인프라가 탄탄하지 않으면 전기차 시장이 커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보급 목표(4만 대)도 달성하지 못했다. 2022년까지 목표(43만3000대)를 이루려면 앞으로 3년간 해마다 12만 대씩 총 36만 대를 보급해야 한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연간 333억원 한전 적자를 막기 위해 전기차 보급에 필수적인 전기차 충전 민간 사업자를 사지로 몰고 있다”면서 “소비자에 부과하는 요금은 올리더라도 충전기 기본요금은 계속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