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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성장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중앙선데이 2020.01.04 00:20 668호 20면 지면보기
만들어진 성장

만들어진 성장

만들어진 성장
데이비드 필링 지음

‘GDP 성장=행복’ 등식은 망상
빈국이 부국 될 때까지만 유효

실제 행복 나타내는 대안 찾아야
장하준 교수 필독서로 추천

조진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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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지수(IQ)와 국내총생산(GDP)은 운명의 궤적이 비슷하다. 각기 지능과 경제를 총괄하여 하나의 수치로 나타낸다. 수십 년 동안 각광받았다.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대안이 개발되고 있다. GDP와 IQ는 도전받는 1등이다.
 
GDP의 역사와 문제점과 대안을 정리한 『만들어진 성장』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경제는 실체가 아니다. 우리의 세상을 상상하는 한 가지 방법일 뿐이다. 국내총생산, GDP라는 것도 실체가 아니다. 우리 인류가 하는 행위들을 측정하는 영리한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경제성장은 위대한 발명품이었다. 이제는 그것을 넘어설 때다.”
 
저자는 ‘여럿 중 하나(one among many)’에 불과한 GDP가 70여년 간, 경제와 성장과 안녕(安寧, well-being) 심지어는 행복의 사실상 동의어로 군림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원제 ‘The Growth Delusion’이 한마디로 요약하고 있듯이 ‘성장=GDP’라는 등식은 망상·착각·오해를 낳는다. ‘성장=GDP’라는 맹신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국부론』(1776)을 의식한 듯한 이 책의 영문판 부제 ‘The Wealth and Well-being of Nations(국가들의 부와 안녕)’가 해법을 암시한다.
 
국부 못지않게 국민 개개인의 안녕을 중시하는 것이 해법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와 더불어 ‘GDP의 아버지들’ 중 한 사람인 사이먼 쿠즈네츠(1901~1985)는 GDP를 웰빙의 대리지표로 삼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만들어진 성장』은 성장의 한 척도에 불과한 GDP의 제자리를 찾아주는 가운데 안녕을 측정할 여러 대안을 점검한다.
 
IMF가 공개한 2018년 국가별 명목 GDP 순위. 원의 크기가 클수록 GDP 규모가 크다. 한국은 1조7000억 달러로 11위. 이웃 중국은 14조 1700억 달러로 2위, 일본은 5조2200억 달러로 3위다. [사진 IMF]

IMF가 공개한 2018년 국가별 명목 GDP 순위. 원의 크기가 클수록 GDP 규모가 크다. 한국은 1조7000억 달러로 11위. 이웃 중국은 14조 1700억 달러로 2위, 일본은 5조2200억 달러로 3위다. [사진 IMF]

저자는 GDP의 대안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검토한다. 1인당 GDP, 소득중간값(median income), 국가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 GNH), 참진보지수(Genuine Progress Indicator, GPI), 유엔 인간개발지수(HDI)···. 이 지수들은 저자가 중시하는 안녕을 보다 잘 반영한다. 저자가 꼽는 안녕은 이런 것들이다. 건강, 평균수명 연장, 공동체 의식, 낮은 범죄율, 깨끗한 공기, 사람들이 자신에게 받는 느낌 등이다.
 
50~60대 이상의 한국인은 성장제일주의를 통해 저자가 말하는 안녕의 요소들이 대폭 향상되는 것을 체험했다. 『만들어진 성장』의 주장에 회의할만하다.
 
저자는 ‘경제성장=GDP’에 대해 일종의 ‘시한부 효용성’을 인정한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빈국이 부국이 되는 과정에서는 GDP가 안녕을 측정할 수 있는 괜찮은 대리지표다. 하지만 한 나라가 일정 수준 이상의 부국이 된 다음에는 경제성장과 안녕의 연결고리는 붕괴한다. 부자나라가 된 다음에는 새로운 방식의 성장과 지표가 필요하다.
 
GDP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국가 목표를 제시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 정쟁을 치르는 데 필요한 거짓말의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한국 정치에서 GDP는 야당이 정부와 집권 정당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애용됐다. GDP에 대해 국민·유권자·독자가 알아야 악용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야 바보야(It’s NOT 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구호가 먹히는 시대가 개막하고 있다. ‘국가 경제가 좋아져도 내 삶은 좋아진 게 없다. 그냥 좀 편하게 살게 해달라’는 저변 심리가 표로 나타날 수 있다.
 
성장이나 GDP의 문제점을 다룬 책은 이미 많이 나왔다. 3000만부가 팔렸다는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1972)는 “2072년께 명확해질 성장의 한계는, 인구와 산업 능력의 급격하고도 통제 불능한 동반 하락을 초래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만들어진 성장』의 차별성은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취재를 통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는 점이다.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만들어진 성장』을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드는 데 관심 있는 모든 사람의 필독서”라고 추천했다. 저자 데이비드 필링은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이자 아프리카 담당 에디터다. 역자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편집장이다.
 
김환영 대기자/중앙콘텐트랩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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