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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심·꾸리·부챗살 말려 잼·김밥까지…육포의 맛깔난 변주

중앙선데이 2020.01.04 00:20 668호 24면 지면보기

이택희의 맛따라기 

김 여사의 딸 김지윤씨가 개발한 육포 스프레드. 전민규 기자

김 여사의 딸 김지윤씨가 개발한 육포 스프레드. 전민규 기자

지난달 솔깃한 임시식당이 열렸다. 한우 육포를 다양하게 조리해 코스로 차려내는 자리였다. 한 달간 저녁에만 하루 최대 15명씩 예약을 받아 진행했다. 연일 손님이 가득 차는 성황이었다. 기획의도를 담은 행사 이름은 ‘전통 수제 육포의 재해석-정육포 팝업식당’이었다.
 

모녀가 대 잇는 ‘정육포’의 법고창신
기름기 덜한 강원 평창 소고기
100% 수작업, 자연건조 원칙

고기 300㎏ 말려 포 100㎏ 만들어
“구워 잣가루 묻혀 먹으면 맛있어”
육포 코스 요리도 선보일 예정

다섯째 날 무명 손님으로 찾아가 식사를 했다. 11가지 육포 음식과 ‘정육포’ 집안의 내림 한식 5가지가 차례로 나왔다. 소고기 4가지 부위로 육포를 만든 것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전통 육포의 재해석’이라는 슬로건에 걸맞게 새로운 감각으로 시도한 창작 음식도 재미있었다. ▶가늘게 잘라 꿀을 바르고 잣가루에 굴린 육포 카나페 ▶3부위(안심·꾸리·부챗살) 육포 꼬치 즉석 화로구이 ▶홍두깨살 육포 채 ▶홍두깨살 육포를 보풀 내서 마요네즈, 머스터드, 다진 청양고추, 로즈메리 잎을 넣고 무친 스프레드(일명 육포잼) ▶육포 스프레드가 들어간 계란말이·김밥·타르틴(프랑스식 오픈 샌드위치) 등이다. 먹으면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자꾸 떠올랐다. 옛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변하되 근본을 잃지 않는다는 말이다.
  
칭기즈칸 병사들 전투식량으로 이용
 
서울 동부이촌동 ‘전통 수제 육포의 재해석-정육포 팝업식당’에서 ‘정육포’의 김정자 여사가 홍두깨살로 만든 육포를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서울 동부이촌동 ‘전통 수제 육포의 재해석-정육포 팝업식당’에서 ‘정육포’의 김정자 여사가 홍두깨살로 만든 육포를 보여주고 있다. 전민규 기자

육포는 수렵시대부터 인류와 함께한 음식으로 본다. 사냥한 고기를 장기 보관하는 원초적 방법이 건조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2500년 전쯤 엮은 『논어』에 육포가 등장한다. 공자께서 “육포 한 묶음 이상의 예를 스스로 행하면 나는 가르침을 주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는 대목이 있다. 문맥상 당시 말린 고기 한 묶음은 부담스러운 학비는 아니었던 듯하다.
 
13세기 칭기즈칸의 몽골 군대는 병사마다 보르츠(borcha)라는 육포 가루를 인스턴트 전투식량으로 이용했다. 그 덕에 보급부대가 따라가지 않아도 기병의 진격은 멈추지 않았고, 아시아·유럽 대륙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대몽항쟁 중이던 고려에서는 여수에서 출발해 강화도로 가던 배에 개고기 포가 실려 있었다. 2009년 9월 충남 태안군 근흥면 마도 해역에서 발견된 ‘마도 3호선’에서 그게 나왔다. 한반도에서 육포는 여러 가지 고기로 만들었겠지만, 근현대로 올수록 소고기로 좁혀졌다.
 
가늘게 자른 육포에 꿀을 바르고 잣가루를 입혀 만든 육포 카나페. 전민규 기자

가늘게 자른 육포에 꿀을 바르고 잣가루를 입혀 만든 육포 카나페. 전민규 기자

예전 육포는 제물의 으뜸이고 안주의 첫째였다. 혼례·환갑 잔칫상에도 반드시 올라갔다. 육포 종류는 진간장에 주물러 말린 장포와 다진 고기를 양념해 말린 편포, 소금 간을 해서 말린 염포가 있다. 편포에는 대추 크기로 빚어 양쪽 끝에 잣을 하나씩 박는 대추포, 둥글납작하게 빚어 가운데 잣 7개를 박는 칠보편포, 얇게 뜬 육포 고기에 잣을 소로 넣어 만두처럼 잘라 말리는 포쌈이 있다. (황혜성 외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2』 요약)
 
전통 육포는 소고기 우둔살이나 홍두깨살로 만들었다. 고기를 결 따라 포 떠서 간장을 먹여 말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정육포’에서는 이 상식에 의문을 품었다. 소고기 여러 부위를 말려 실험했다. 20가지를 실험한 다음 안심·꾸리·부챗살 육포를 제품으로 채택했다.
 
한우라도 생산지와 작업 환경에 따라 맛이 달랐다. 전라도·충청도·강원도를 돌아다니며 육포를 만들어봤다. 강원도 평창이 가장 나았다. 소고기는 기름기가 덜하고 맛은 청년처럼 힘찼다. 볕 좋고, 공기는 맑으면서 바람이 잘 불어 100% 자연건조가 가능했다. 육포는 맛이 고소하고 고기 향이 살아있었다.
 
‘정육포’의 ‘정(貞)’은 육포를 만드는 김정자(75)여사 이름에서 따왔다. 김 여사는 요즘 서촌, 옥인동 일대에서 5~6대를 내리 산 집안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다. 어머니가 서울식 온갖 음식을 하는 걸 보면서 자랐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교양강좌 ‘박물관대학’을 수강하면서 보니 예전 어머니 음식하던 일상을 학문으로 논의하고 있었다.
 
육포 스프레드를 넣어 특별한 음식으로 재탄생한 김밥과 계란말이. 전민규 기자

육포 스프레드를 넣어 특별한 음식으로 재탄생한 김밥과 계란말이. 전민규 기자

그때 고 황혜성(1920~2006) 선생이 궁중음식연구원에서 궁중음식·혼례음식 강좌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 대를 잇고, 아이들 결혼할 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배웠다. 1988년 폐백·이바지 음식을 하기 시작해 다음해부터 돈 받고 해주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했다. 그 작업공간이 ‘반가원’이다.
 
그러나 혼례를 집에서 치를 때 잔치음식에 보태라는 뜻으로 해 보내던 이바지음식은 결혼식을 모두 예식장에서 하면서 설 자리를 잃었다. 폐백음식도 간소화하면서 만들기 어려운 육포만 주문이 들어왔다. 그 바람에 다양했던 혼례음식은 집에서나 가끔 해 먹고, 육포만 계속하게 됐다.
 
100% 수작업·자연건조를 원칙으로 하는 김 여사의 육포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핏물 빼기=결 방향으로 포 뜬 고기를 하루 남짓 찬물에 담가 둔다. 물을 자주 갈아준다.
 
▶물기 빼기=고기를 건져 소쿠리에 밭쳐 12시간쯤 물기를 뺀다. 물기를 잘 빼야 그만큼 고기 조직 사이로 양념이 잘 밴다.
 
▶양념=진간장·양조간장·설탕으로 불고기 양념처럼 만들어 고기를 담그고 잘 머금도록 뒤적인다.
 
▶건조=건조대에 펼쳐 말린다. 볕 좋은 봄에는 하루면 마른다. 마르는 동안 양쪽이 잘 마르도록 가끔 뒤집어주면서 반듯하게 펴고 모양도 잡는다. 손의 감촉으로 육포 걷을 때를 정한다.
 
▶보관=적당히 마르면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하루 거풍하고 모양을 잡아 부위·크기 별로 진공포장해 냉동 저장한다.
  
고려시대엔 개고기로도 육포 만들어
 
먹음직스럽게 건조된 부챗살은 즉석화로 구이용으로 식탁에 오른다. 전민규 기자

먹음직스럽게 건조된 부챗살은 즉석화로 구이용으로 식탁에 오른다. 전민규 기자

봄철 3~4개월에 소고기 300㎏을 말려 100㎏의 육포를 만든다. 무게가 3분의 1로 줄어드는 건 늘 똑같다. 김 여사는 “육포는 살짝 구워 참기름이나 꿀 바르고 잣가루를 묻혀 먹으면 가장 맛있다”며 “개인적으론 생으로 찢어 먹는 걸 제일 좋아하지만, 육포는 잣과 잘 어울린다”고 알려줬다.
 
김 여사의 ‘반가원’ 육포를 재해석하겠다고 나선 사람은 딸 김지윤(45)씨다. 남편과 홍보회사를 운영했는데, 20년쯤 하니 쉬고 싶었다. 1년 작정으로 쉬다가 ‘반가원’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도화선이 돼 어머니 육포를 세상에 전하는 ‘정육포’라는 회사를 만들고 대표가 됐다. 2018년 1월이다.
 
발을 담그자 육포는 홍두깨살·우둔살로만 해야 하나, 양념은 간장 아니면 안 되나,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육포로 창조적 변주를 시작한 원점이다. 그는 “평생 키워갈 육포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한국을 대표하는 육포가 되고 싶은 기대도 없지 않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번 팝업은 재해석한 육포를 세상에 더 널리 알리기 위한 몸풀기 운동이다. 아직은 육포를 판매만 하지만, 준비가 되면 육포 코스식사를 차려내는 예약제 식당도 구상하고 있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lee.tackhee@joins.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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