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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가장’ 류현진 ‘황태자’ 김광현 MLB서 맞짱?

중앙선데이 2020.01.04 00:20 668호 25면 지면보기

김식의 야구노트

류현진(33·토론토 블루제이스)은 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KBO리그 최고 투수로 활약했다. 열아홉 살 나이에 힘과 정확성을 이미 갖춘 그를 모두가 ‘괴물’로 불렀다.
 

약팀서 성장 류현진
한화 입단 후 어려운 팀 이끈 ‘괴물’
마운드 약한 토론토도 리더 기대

강팀서 단련 김광현
SK서 막강 타선 도움 받아 MVP
NL 중부지구 우승팀서 선발 경쟁

국내 좌완투수 쌍벽
류는 제구력, 김은 강속구 뛰어나
KBO리그선 한 번도 맞대결 안 해

데뷔 첫해 18승6패 평균자책점 2.23을 기록하며 신인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을 석권한 류현진은 이듬해 완급조절 능력까지 터득했다. 20세의 그는 완성형 투수였다. 류현진이 훈련을 게을리하거나 불펜 피칭을 생략해도 누구 하나 야단치는 이가 없었다. 매년 200이닝 안팎을 던지는 ‘이닝 이터’였고, 언제나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류현진의 은사인 김인식 당시 한화 감독도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김인식 감독도 류현진을 야단친 적이 있다. 수비 실책이 나와 실점을 하게 되면 류현진의 표정에서 불만이 엿보인다는 이유였다. 수비뿐만 아니었다. 한화의 타격과 불펜 모두 리그 최하위권이었다.
  
류현진이 김광현의 1년 선배
 
류현진(위)에게는 약체 토론토 마운드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연합뉴스]

류현진(위)에게는 약체 토론토 마운드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김광현은 세인트루이스 5선발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다. [연합뉴스]

류현진이 다른 팀에서 뛰었다면 매년 3~5승은 더 올렸을 것이다. 평균자책점도 더 낮아졌을 것이다. 김인식 감독은 류현진이 그걸 의식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김인식 감독의 지적을 받은 뒤 류현진은 동료의 실수도 감싸 안는 선수로 성장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성장한 그를 팬들은 ‘한화의 소년가장’이라고 불렀다.
 
류현진이 가장 부러워한 선수가 1년 후배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이었다. 김광현은 같은 왼손잡이인 류현진보다 빠른 공을 던졌다. 변화구(슬라이더)도 더 날카로웠다. 그러나 제구력 등을 포함한 종합능력을 따지면 류현진이 한 수 위였다.
 
김광현은 류현진 못지않은 성적을 올렸다. 당시 최강팀 SK 와이번스에서 뛰었던 그는 막강한 타선, 탄탄한 수비와 불펜의 도움까지 받았다. 2008년에는 16승4패 평균자책점 2.39를 기록하며 MVP에 올랐다. ‘소년가장’ 류현진의 눈에는 김광현이 ‘황태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세인트루이스 입단식에 참석한 김광현(왼쪽)과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 [중앙포토]

세인트루이스 입단식에 참석한 김광현(왼쪽)과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류현진. [중앙포토]

둘은 KBO리그에서 경쟁자로, 국가대표팀에서 협력자로 오랜 시간을 함께했다. 류현진은 2013년 포스팅(비공개 입찰)을 통해 메이저리그(MLB) 진출에 성공했다. LA 다저스는 2573만 달러(약 298억원)의 이적료를 써내 단독협상권을 따냈다. 결국 류현진은 6년 총액 3600만 달러(417억원)에 다저스와 계약했다. 그의 나이 26세였다.
 
류현진은 MLB에 데뷔하자마자 2년 연속 14승을 올렸다. 이후 왼 어깨 수술을 받아 선수 생명이 끝날 뻔했지만, 지난해 14승5패를 기록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아시아 투수 최초로 평균자책점 MLB 전체 1위(2.32)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올스타전 선발로 뛰어봤고,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2위를 기록했다.
 
다저스에서 리그챔피언십시리즈, 월드시리즈를 경험한 류현진은 ‘빅게임 피처(큰 경기에 강한 투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소년가장’ 시절 기술적·정신적으로 단단히 단련된 덕분이었다. 류현진은 지난달 4년 총액 8000만 달러(926억원)를 받고 토론토와 계약했다. 그의 평균 연봉은 역대 한국인 MLB 선수 중 최고액이다.
 
류현진이 MLB로 떠난 뒤 김광현은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2014년 말 MLB 포스팅에 나섰지만 만족할 만한 조건을 제시하는 구단이 없었다. 2016년 말 왼 팔꿈치 수술을 받은 그는 2018년 성공적으로 복귀했다. 지난해엔 17승6패, 평균자책점 2.51의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김광현은 SK 구단의 승낙을 받아 MLB에 재도전했다. 결국 지난달 세인트루이스와 2년 800만 달러(92억원)에 계약했다. 5년 전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MLB에서 다시 만나는 ‘좌완 쌍벽’

MLB에서 다시 만나는 ‘좌완 쌍벽’

수많은 스타가 모인 다저스를 떠난 류현진은 토론토에서 단숨에 최고 연봉 선수(연평균 2000만 달러·231억원)가 됐다. 그만큼 토론토에는 스타가 없다.
 
지난해 토론토는 아메리칸리그(AL) 동부지구 5개 팀 중 4위(67승 95패·승률 0.414)에 그쳤다. 토론토는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27회)을 기록한 뉴욕 양키스와 21세기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팀(4회) 보스턴 레드삭스와 경쟁한다. 신흥 강호 탬파베이 레이스는 지난해 보스턴을 제치고 지구 2위에 올랐다.
 
토론토의 전력은 강하지 않다. 게다가 AL 동부지구는 MLB 전체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토론토에서 류현진은 다시 ‘소년가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토론토의 가장 큰 약점은 마운드다. 토론토에는 네이트 피어슨(23), 시메온 리차드슨(19), 알렉 마노아(21) 등 강속구를 던지는 젊은 투수들이 있다. 그러나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은 한참 떨어진다. 당장 1선발 류현진 뒤를 받쳐줄 2선발 찾기부터 쉽지 않다.
 
그래서 토론토가 올해 당장 포스트시즌에 진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런데도 거금을 투자해 류현진을 영입한 이유는 젊은 선수들과 함께 토론토의 미래를 만들어달라는 기대 때문이다. 류현진이 유망주들의 귀감이 되길 바란 것이다. 류현진은 “공이 빨라도 가운데로 던지면 맞을 수 있다. 나는 늘 제구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토론토에서 재능 있는 선수들과 함께 뛰는 건 내게도 영광이다. 서로 다가가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토론토 홈구장 로저스센터는 타자에게 유리한 야구장이다. 지난해 로저스센터의 홈런 팩터(ESPN 기준, 1보다 높으면 타자에게 유리하다는 의미)는 1.317로 30개 구장 중 가장 높았다. 지난해 수치가 유독 높아진 것이지만, 로저스센터에서 홈런이 많이 나온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로저스센터에서 AL 동부지구 강타자를 상대하는 건 투수에게 아주 위험한 승부다. 그러나 류현진은 태연하다. 그는 “제구만 되면 장타를 피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제구와 변화구 능력)을 다듬는 게 중요하다”며 “야구장은 어디나 똑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양팀 6월, 8월 두 차례씩 대결
 
류현진의 인터뷰가 빈말은 아니다. ‘소년가장’ 시절부터 그는 늘 그랬다. 외생변수를 신경 쓰지 않고 용감하고 효율적인 선택을 했다. MLB에 진출할 때, 그리고 성공률 10% 정도의 어깨 수술을 결정할 때처럼 토론토와 계약을 맺을 때도 자신감으로 밀어붙였다.
 
MLB 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은 “류현진이라면 그런 변수를 잘 극복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다저스에서 거뒀던 성적을 토론토에서 내기는 어렵다고 본다”며 “여러 가지 환경과 상대 팀의 전력을 고려하면 10~12승 정도만 올려도 성공이다. 평균자책점 3.30 안팎을 기록한다면 토론토도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인트루이스 유니폼을 입은 김광현은 예측이 더 어렵다. 류현진처럼 선발투수 자리를 확보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잭 플래허티(25), 마일스 마이콜라스(32), 다코타 허드슨(26), 애덤 웨인라이트(39) 등 세인트루이스 선발진은 모두 오른손 투수다. 지난해 세인트루이스에서 왼손 투수가 선발로 나선 경기는 두 차례뿐이었다.
 
좌완 김광현이 5선발을 맡아준다면 세인트루이스 선발진의 구성은 탄탄해진다. 그의 경쟁자로는 카를로스 마르티네스(29)가 꼽힌다. 오른손 강속구 투수인 마르티네스는 2017년까지 선발로 뛰다 어깨 부상으로 불펜으로 전환했다. 올 시즌 선발 복귀를 강력하게 바라고 있다.
 
세인트루이스는 지난해 내셔널리그(NL) 중부지구 우승팀이다. 월드시리즈 통산 우승(11회)도 뉴욕 양키스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수비·불펜·타선 모두 수준급이다. 송재우 해설위원은 “김광현이 좋은 팀과 계약했다. 그러나 32세 나이에 새로운 팀에서 펼쳐야 할 경쟁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김광현이 선발 한 자리를 꿰차면 10승을 바라볼 수 있다”고 밝혔다.
 
KBO리그에서 한 번도 선발 맞대결을 펼친 적 없는 둘은 메이저리그에서  대결할 수도 있다. 양 팀은 6월 2일과 3일 세인트루이스에서, 8월 19일과 20일엔 토론토에서 만난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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