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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약한 말이 칼날이라면, 잘못된 SNS 기록은 ‘핵폭탄’

중앙선데이 2020.01.04 00:20 668호 28면 지면보기

황세희의 ‘러브에이징’  

새 천 년이 시작된 지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최첨단 정보통신(IT)산업의 발전은 경이로운 사회문화적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중화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저마다 온라인에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는 시대를 펼쳐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신분 사회는 물론,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 이후에도 지식과 정보는 소수가 독점했고 보통 사람이 자신의 존재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기회는 극히 드물었다.
 

SNS, 냉가슴 뚫는 순기능 있지만
돌에 새기는 것보다 무서운 흔적

악용 땐 시공초월한 파괴적 무기
생명까지 빼앗는 가해자 될 수도

SNS시대 존경받는 어른 되려면
자기 주장 줄이고 경청·공감 필요

이런 현실과 달리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는 인간의 뇌에는 자신을 아름답게 포장해서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강렬한 ‘표현’ 욕구가 내재해 있다. 누구나 자신의 실존을 만인에게 알릴 수 있는 SNS의 등장은 인권 평등을 실현한 혁명적 기술인 셈이다. 실로 지금은 세계 각지에서 신기술에 빠르게 적응하는 청년은 물론 중년·노년 할 것 없이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SNS를 활용한다. 심지어 70대 미국 대통령도 장관 해임을 트위터로 알릴 정도다.
  
긴장·울분 완화시키는 ‘환기 요법’ 효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국 사회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본인 소식뿐 아니라 풍문을 통해 들은 온갖 사연과 고민거리,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견과 분노 등을 가리지 않고 SNS에 자유롭게 공개한다. 의학적으로 보면 나의 존재를 알리고, 본능적 공격성과 욕구 불만까지 수시로 표출함으로써 심리적 긴장과 불안을 해소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정신건강을 위한 순기능을 하는 셈이다. 남에게 표현하고 싶은 생각과 감정을 내면에 오래 묻어두면 우울증·불안증·신체화장애·화병 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혼자 삭히던 속마음을 상담자에게 마음껏 털어놓게 함으로써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주는 ‘환기(換氣) 요법’은 대표적인 정신치료법 중 하나다. 밀폐된 방에 창문을 열어 답답한 내부 공기를 내보내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양날의 검’이 존재한다. 무제한 펼쳐진 인터넷 공간을 통해 충동적 감정과 원초적 욕망까지 만인에게 공개할 경우, 일시적인 카타르시스 효과는 보지만 심각한 결과로 돌아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나만의 생각도 일단 말이나 글로 ‘공개’ 되는 순간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해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빚어내기 때문이다.
 
사실 둘만의 대화 중에도 의견 충돌로 심각한 폭력도 발생하며 평생 원수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SNS는 듣는 사람의 뇌리에만 남는 말과 달리 일단 공개되면 지구촌 누구나 실시간 공유할 수 있다. 돌에 새기는 것보다 더 무서운 흔적이 남는다. 고약한 말 한마디가 ‘칼날’이라면 잘못된 SNS 기록은 ‘핵폭탄’인 셈이다.
 
실제 SNS를 통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부당한 인신공격을 받은 꽃다운 청춘이 생명을 끊고, 문화와 국경을 뛰어넘어 집단적 반목을 초래하는 사태는 수시로 발생한다. 내 손안에서 작동하는 스마트폰도 SNS로 활용되면 시공을 초월하는 무서운 파괴력의 무기로 돌변하기 때문이다. 순간의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SNS를 남용했다가 현실적인 가해자가 될 경우, 내가 받을 심신의 상처도 매우 크다.
 
곰곰 생각해보면 자신을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 이유도 궁극적으로는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서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존재감을 과시하고 공격성을 발산하는 사람을 꺼린다. 또 달변가가 주변의 이목은 끌지만 정작 나의 벗은 내 의견을 경청해주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특히 지금처럼 자기표현이 범람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내 의견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에 대한 선호도는 더 커지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에게 털어놓는 가장 큰 목적은 상대방에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을 기대해서가 아니다. 마음속 상처나 콤플렉스, 분노 등을 충분히 발산시켜 내면을 정화하고 싶은데 있다. 내 의견에 상대방이 공감을 표시하면 나는 혼자가 아니며 함께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아 심리적 안정을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의학에서는 훌륭한 상담자가 되려면 조언을 하기보다는 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털어놓을 때까지 묵묵히 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절제 없이 내키는 대로 쏟아내는 일은 불특정 다수가 공유하는 SNS보다는 이해심 많은 주변 사람에게 하는 게 그나마 낫고,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전문상담사처럼 나와 이해관계도 없고 비밀도 지켜질 수 있는 타인이 바람직하다. 당나귀 귀를 가진 임금님의 비밀을 혼자 간직하면서 속병을 앓던 이발사가 땅에 구덩이를 판 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실컷 외친 뒤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부작용 없이 카타르시스를 경험하는 지혜로운 해결책을 제시한 셈이다.
  
잘 들어주는 말벗돼야 아름다운 노년
 
SNS 시대에 좋은 이웃, 환영받는 동료, 사랑받는 가족 구성원, 존경받는 어른이 되려면 항상 내 의견을 앞세우기보다는 상대방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인내심과 인품을 가져야 한다. 남의 말을 들어준다고 그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며, 당연히 나는 다른 견해를 가질 수 있다. 경청의 가장 큰 미덕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마음을 전달하는 데 있다.
 
만일 현재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평상시 주변 사람들과 대화의 장에서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거나 본인 주장만 하다가는 은퇴 후 외로운 노후를 보낼 위험성이 크다. 반면 젊은 사람, 지위가 낮은 사람의 고민도 진지하게 듣고 공감해 준다면 노후에도 푸근한 멘토이자 좋은 말벗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 신년을 맞아 러브에이징을 위해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라’는 옛 성현의 명언을 깊이 새겨봐야겠다.
 
황세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예방센터장
서울대 의대 졸업 후 서울대병원에서 인턴·레지던트·전임의 과정을 수료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MIT대에서 연수했다. 1994년부터 16년간 중앙일보 의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면서 ‘황세희 박사에게 물어보세요’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 몸&맘’ 등 인기 칼럼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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