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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된 중 민항기, 춘천 불시착…2만여 명 사형 ‘옌따’를 부르다

중앙선데이 2020.01.04 00:20 668호 29면 지면보기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08〉

중국민항기 납치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옌따는 3년간 계속됐다. 177만 2000여 명을 체포하고 2만4000명을 사형에 처했다. 집행도 공개했다. [사진 김명호]

중국민항기 납치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옌따는 3년간 계속됐다. 177만 2000여 명을 체포하고 2만4000명을 사형에 처했다. 집행도 공개했다. [사진 김명호]

1983년 5월 5일, 납치당한 중국민항 296호가 춘천 미군 공항에 불시착했다. 이 사건은 여러 의미가 있었다. 한·중 수교의 밑거름뿐만 아니라 중국의 치안을 바로잡는 옌따(嚴打·엄하게 때린다)의 계기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주범 쭤창런(卓長仁·탁장인)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의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문혁이 발발하자 홍위병 완장을 찼다. 글과 말을 앞세운 ‘홍위병 운동’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무투(武鬪·무장투쟁)가 시작되자 온 나라가 따라 했다. 몽둥이가 춤을 추더니 총과 수류탄이 등장하고, 심한 곳은 장갑차까지 동원했다.
  

1983년 납치 주범은 홍위병 출신
경제사범 단속에 불만 품고 범행
“비행기 납치해 대만으로 튀자”

체육학원 보위용 권총 4정 훔쳐
조종사 협박해 평양 거쳐 남쪽행
덩샤오핑 지시, 중 치안의 기틀 돼

평소 따르던 패거리 4명과 범행 저질러
 
전인대에서 옌따를 보고하는 류푸즈. [사진 김명호]

전인대에서 옌따를 보고하는 류푸즈. [사진 김명호]

공장 노동자 쭤창런은 무투가 체질에 맞았다. 타고난 조직력을 갖추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공은 컸지만, 머리에 든 게 없었다. 지식인들에게 시키던 교육을 받고 사무직으로 전직해 랴오닝성 기전설비공사(機電設備公司) 기획원 자리를 꿰찼다. 얼핏 보기엔 유배지나 다름없었지만, 랴오닝성의 차량 구매와 분배의 대권을 장악한 요직이었다. 무슨 조직이건 차량 배당을 받으려면 ‘자동차 대왕’ 쭤창런의 도움이 필요했다. 광저우(廣州)에는 바다를 통해 몰래 들여온 차량들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었다. 쭤창런은 선양과 광저우를 오가며 인맥을 쌓았다. 지방 관리들은 푼돈에 약했다.
 
1982년 3월, 성 정부가 경제사범 단속에 나섰다. 정직 처분을 받은 쭤창런은 정부(情婦)인 선양군구 부참모장의 딸 가오둥핑(高東萍·고동평)에게 불만을 털어놨다. “그간 내 돈 먹은 놈들이 더 난리를 부린다. 비행기 납치해서 대만으로 튀자.” 가오둥핑이 응하자 패거리 규합에 나섰다. 평소 형이라 부르며 따르던 4명이 동조했다. 선양체육학원보위과에 근무하는, 행실에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었다. 화류계 여성들과 한방에서 혼숙하다 들키는 바람에 공안국이 언제 잡으러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집안들은 번듯했다. 6명은 준비를 철저히 했다. 1년간 대만 방송을 열심히 듣고 항공 노선을 세밀히 연구했다. 항공기에 관한 지식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선양 경비사령부 관리원이 준 실탄 400발로 6차례 사격 연습도 했다. 체육학원에는 보위용 권총이 4정 있었다. 아무나 들어와서 돈만 내면 총 쏘는 연습하던 시절이다 보니 관리가 소홀했다. 83년 5월 4일 밤, 쭤창런 일행은 권총 4정을 확보했다. 두 정을 가오둥핑의 화장품 상자에 숨겼다.
 
한국에서 재판 받고 대만으로 추방된 탈취범 6명은 반공의사 대접을 받았다. 쌍십절 행사 귀빈석에 자리한 쭤창런(왼쪽 셋째) 일행. 왼쪽 첫째가 가오둥핑. [사진 김명호]

한국에서 재판 받고 대만으로 추방된 탈취범 6명은 반공의사 대접을 받았다. 쌍십절 행사 귀빈석에 자리한 쭤창런(왼쪽 셋째) 일행. 왼쪽 첫째가 가오둥핑. [사진 김명호]

5일 새벽 6시 30분, 잠에서 깨어난 선양체육학원 조직부장 안궈루이(安國瑞·안국서)는 평소대로 라디오부터 켰다. 뉴스를 듣던 중 책상 위에 있는 밀봉된 편지 봉투를 발견하자 저절로 손이 갔다. 아들이 부모 앞으로 남긴 내용은 간단했다. “나는 생업을 위해 먼 곳으로 떠납니다. 저를 영원히 망각하시기 바랍니다.” 안궈루이는 대경실색했다. 짚히는 바가 있었다. 원장에게 보고했다. 놀라기는 원장도 마찬가지였다. 학원으로 달려갔다. 보위가 간사에게 안궈루이의 아들이 권총을 빌려 갔다는 말 듣자 기겁했다. 허겁지겁 금고를 열었다. 권총이 한 정도 없었다. 안궈루이와 함께 기차역으로 차를 몰았다. 베이징발 열차가 떠난 직후였다.
 
10시 49분, 상하이행 중국민항 296호 항공기가 선양공항을 이륙했다. 기장 왕이셴(王儀軒·왕이헌)의 구술을 소개한다.
 
“항공기에는 승객 96명과 승무원 9명, 총 105명이 타고 있었다. 승객 중 3명은 일본인이었다. 비행은 순조로웠다. 좌석을 둘러본 승무원이 뒷자리에 낌새가 이상한 승객들이 있다고 보고했다. 눈치를 힐끔 보며 수군대는 모습이 무슨 음모 꾸미는 사람 같다는 내용이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22분이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감시를 철저히 하고, 내 명령 없이는 조종석 문을 열지 말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총성이 울렸다. 밖에서 조종석 문 때려 부수는 소리가 요란했다. 주범 쭤창런은 자신이 항공학교 출신이라며 내 머리에 총구를 들이댔다. 남조선으로 향하라고 소리를 꽥 질렀다. 나는 다롄(大連)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온갖 사회악 제거하는 것이 인도주의”
 
대만행을 요구하는 쭤창런 일행의 쾌거(?)로 타이베이에 뿌려진 호외. [사진 김명호]

대만행을 요구하는 쭤창런 일행의 쾌거(?)로 타이베이에 뿌려진 호외. [사진 김명호]

쭤창런은 항공 지식이 풍부했다. 준비했던 항공지도 꺼내 유심히 보더니 90도 방향으로 향하라며 내게 욕설을 퍼부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단둥(丹東)에 착륙하려 하자 내 목에 총구를 댔다. 비행기가 국경을 넘었다. 13시 30분 북조선 영공에 진입했다. 평양 상공에서 하강준비를 하자 어디냐고 물었다. 한청(漢城)이라고 하자 나를 죽일 기세였다. 승객의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오후 2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선양 공안국은 느려터졌다. 항공기 안에서 납치극이 한참인 11시 40분에 공항과 기차역을 봉쇄했다. 공안특경대는 296호 이륙 50분이 지나서야 선양공항에 도착했다. 류푸즈(劉復之·유복지)는 평소 중국 역사상 최고의 사법부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항공기 납치 사건에 분노했다. 공안부장으로 자리를 옮기자 덩샤오핑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7월 19일, 베이다이허에서 휴가 중인 덩샤오핑에게 역설했다. “부녀자들은 밤에 문밖을 나가지 못하고, 부모는 날뛰는 자식들을 통제 못 한 지 오래다. 공직자들은 재물에 눈이 멀고, 돈 쥔 자들은 못하는 짓이 없다. 가짜 물건 시장에 풀고, 새로 지은 집들이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풍기도 엉망이다. 이런 것들 제거하는 것이 인도주의다.” 듣기만 하던 덩샤오핑이 이를 악물었다. 옌따를 지시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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