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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아이콘·개인주의 표상·예술가의 뮤즈…‘냥이’ 전성시대

중앙선데이 2020.01.04 00:03 668호 16면 지면보기

쥐 잡는 고양이? 사람 ‘잡는’ 고양이 

강서구 개화동의 ‘고양이 정원’. [사진 박서영]

강서구 개화동의 ‘고양이 정원’. [사진 박서영]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개화동 평범한 주택가 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국내 최초 야외형 고양이 카페 ‘고양이 정원’을 찾은 사람들이다. 널찍한 정원과 실내 곳곳에서 111마리의 고양이가 어슬렁어슬렁 사람들에게 겁 없이 다가가 안긴다. 20대 여성 한연지씨는 집에서 고양이 2마리를 키우고 있지만 다른 고양이도 만나고 싶어 왔단다. “고양이는 엉뚱한 매력이 있거든요. 보고 있으면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워 힐링이 되죠. 보세요, 얼마나 귀여워요.”
 

전국 반려묘 243만 마리로 추정
SNS 귀여운 사진·영상 넘치고
신종 직업 ‘고양이 탐정’도 등장
축제·출판·웹툰 콘텐트로 인기

2년 전 “고양이와 인간의 공존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며 아버지 별장을 고양이 낙원으로 개조한 박서영 대표는 한꺼번에 100명 이상 몰린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성수기엔 500명쯤 오세요. 손님들은 고양이들이 다가와 안기는 모습을 보고 쓰다듬는 것만으로 편안함을 느끼고 가시죠.”
 
사진집 『고양이, 내 삶의 마법』 중에서. [사진 Kristina Makeeva]

사진집 『고양이, 내 삶의 마법』 중에서. [사진 Kristina Makeeva]

고양이 열풍이 분다. 10여 년 전만 해도 길고양이를 집단 살처분할 정도로 부정적 존재로 인식되던 고양이가 어느새 ‘힐링의 아이콘’이 됐다. SNS에는 귀여운 고양이 사진과 영상이 넘치고, 고양이 계정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지난해 세상을 뜬 미국의 SNS스타 ‘그럼피 캣’은 독특한 외모로 1000만 팔로워를 거느리며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에서 다양한 사업의 얼굴로 활동했고, 왁스 박물관 ‘마담 투소’에도 전시됐다.
 
반려묘도 증가 추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2017)에 따르면 전국의 반려묘는 243만 마리로 추정되는데, 개에 비해 개체수는 적지만 증가율이 높다. 최근 서울시 발표에선 2014년에 비해 개를 키우는 가구 비율은 4.0%포인트 감소한 반면 고양이는 3.6%포인트 증가했다. 양육 만족도 면에서도 개보다 고양이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화 ‘오늘도 위위’. [사진 코쿤나인]

영화 ‘오늘도 위위’. [사진 코쿤나인]

요즘 가장 핫한 품종은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 ‘질투의 화신’ 등에 나왔던 랙돌로, 외모에 따라 700만원까지 나간다. 스코티시폴드와 먼치킨은 100만~200만원 선이다. 서울 논현동의 펫샵 ‘체리캣’ 장황용 대표는 “어떤 품종이 유행하면 더 높은 퀄리티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값이 오른다”며 “랙돌은 2~3년 전엔 1000만원이 넘기도 했지만 불경기에 가격이 많이 떨어졌다”고 했다.
 
애묘 산업도 빠르게 성장중이다. 옥션에 따르면 2018년 반려견 용품 판매는 전년 대비 11% 증가한 데 비해 반려묘 용품은 24% 증가하며 전체 반려동물 
 
시장 확대를 이끌고 있다. 2017년부터 국제캣산업박람회와 케이캣페어 등 고양이 전문 박람회가 성행 중이다.  
  
연관 산업 성장 … 고양이 보험도 등장
 
영화 ‘나만 없어 고양이. [사진 라이터스]

영화 ‘나만 없어 고양이. [사진 라이터스]

반려동물을 가족 구성원으로 여기며 고품질 간식, 전용 가구는 물론 건강 상태를 체크하는 고양이 자동화장실까지 나왔다. 젊은 세대는 고양이 보험도 든다. 삼성화재 애니펫, 메리츠화재 펫퍼민트 캣보험 등은 2030의 가입율이 60% 이상이다.
 
실종 고양이를 찾아주는 ‘고양이 탐정’도 신종 직업으로 등장했다. 최근 JTBC2 예능 프로그램 ‘호구의 차트’ 조사에서 ‘불안한 미래를 책임질 떠오르는 신종직업’ 6위가 고양이 탐정이었다. 적외선 카메라·내시경 카메라 등 각종 장비를 동원한 전문적인 수사를 한다. 국내엔 20명 정도 있지만 일본은 이미 기업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슴슴 작가의 '호두, 추운 날에' [사진 이슴슴]

이슴슴 작가의 '호두, 추운 날에' [사진 이슴슴]

 
고양이를 지역 콘텐트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지난해 4월 선유도역 부근 선유마을에선 첫 ‘고양이 축제’가 열렸다. 고양이 전문잡화점 ‘선유도고양이’를 중심으로 축제를 기획하고 운영비 일체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했다. 6~8월엔 고양이를 주제로 한 ‘선유 야옹이마켓’을 꾸준히 열었다. 인근 공단지역에 정착한 젊은 예술가와 상인들이 과거 이 지역이 ‘괭이산(고양이산)’이라 불렸던 사실에 착안해 ‘고양이 마을’로 포지셔닝하려는 노력이다.
 
대학로에는 ‘고양이길’이 생겼다. 이화동 벽화거리를 따라 고양이전문서점 ‘슈뢰딩거’를 시작으로 고양이 일러스트 작가가 운영하는 ‘고양상점’, 고양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갤러리카페 ‘이화중심’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예술가들의 뮤즈로도 떴다. 자신의 고양이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혀 의인화하는 17년차 ‘고양이 집사’ 이슴슴 작가는 “함께 지낸 시간만큼 주고받은 많은 느낌을 살려 작업한다”고 했다. ‘고양상점’을 운영하는 일러스트 작가 낭낭은 ‘랜선집사’다. “부모님 때문에 못기르고 있다. 길냥이 밥을 주다가 후원 프로젝트에 참여했는데, 반응이 좋아 고양이만 그리게 됐다”고 했다. 고양이 작가들끼리 그룹전도 종종 열린다.  
 
유튜브‘무지막지家’의 한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유튜브‘무지막지家’의 한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출판·영화·웹툰 등 문화 콘텐트도 고양이 차지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제목에 ‘고양이’를 키워드로 삼은 책이 최근 3년간 578권 나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고양이 1, 2』,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수 고양이의 비밀』 등 유명 작가들도 고양이를 앞세웠고, 소설·에세이뿐 아니라 관련 미술사·전문서적까지 다양하다.
 
2018년엔 고양이 영화제가 열렸고, 지난해엔 고양이가 주인공인 영화도 2편 나왔다. 배우 선우선이 자신의 12마리 고양이와 함께 떠난 여행 영화 ‘오늘도 위위’는 잔잔한 감동과 함께 높은 평점을 받았다. ‘뽀짜툰’ ‘상상고양이’ 등 고양이 웹툰도 요일별로 포진하고 있다.
 
방송도 점령했다. 드라마와 CF에 양념처럼 등장하다가 당당히 주인공이 됐다. 2018년 시작된 EBS ‘고양이를 부탁해’는 고양이의 다양한 문제행동을 치유하며 시즌4까지 순항 중이다. 최초의 고양이 예능 ‘냐옹은 페이크다’도 5일 tvN에서 첫 방송된다.
  
고양이 영상 시청만으로 힐링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반려묘 증가의 원인은 흔히 개보다 손이 덜 가는 ‘양육 편의성’에서 답을 찾지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 채널을 통해 고양이의 매력이 알려지면서 확산됐다. 유튜브에 따르면 2018년 1~7월 사이 반려묘 관련 영상 조회수가 전년 대비 77% 증가했다. 구독자 337만명의 기업형 채널 ‘크림히어로즈’는 7마리 고양이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인기 영상의 조회수는 1500만에 달한다.
 
인디애나주립대학 미디어 스쿨에 따르면 2014년 한 해 유튜브에 올라온 고양이 동영상 200만 건이 총 26조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전체 동영상 중 고양이 영상에 붙는 댓글이 가장 많았다. 제시카 미릭 교수는 고양이 영상을 보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냈다. 7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고양이 영상을 본 후 걱정·짜증·슬픔을 덜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히끄네 집』 중에서 [사진 이신아]

『히끄네 집』 중에서 [사진 이신아]

연세대 인간행동연구소 조지선 박사는 “고양이는 날카로운 이미지로 인식되어 왔지만 최근 귀여운 동영상이 대방출되면서 호감이 급상승했다”고 분석했다. “인간은 아기처럼 작고 동그랗고 눈이 크고 뽀송뽀송한 이미지에 본능적으로 무장해제하게 설계되어 있다. 고양이도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 반응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로 1인 가구가 반려묘를 기른다는 사실이다. ‘체리캣’ 장황용 대표는 “혼자 사는 여성분이 가장 많이 찾고, 한 마리만 키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이 일일이 돌봐줘야 하는 개에 비해 고양이는 케어를 많이 하지 않아도 힐링을 주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2019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반려견이 있는 가구는 주택 형태나 가구원 수와 관계없이 비슷한 분포를 보이는 반면, 반려묘는 1인 가구와 월세 가구에서 높은 비율로 기르고 있다. ‘고독한 현대인’들에게 고양이가 가족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지선 박사도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대상을 찾는 게 인간의 보편적인 속성인데, 그런 유대감을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을 때 동물과의 관계에서 위로받게 된다”고 했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일본의 동물생태학자 야마네 아키히로 교수도 저서 『고양이 생태의 비밀』에서 사회적 변화를 지적했다. 경제성장기를 지탱하던 ‘충성’의 가치가 흔들리면서 개인주의화한 현대인들이 충직한 개보다 자유롭고 도도한 고양이의 모습에 공감한다는 것이다. 조지선 박사도 개와는 다른 색다른 관계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으로 해석했다. “‘집사’라는 아이덴티티가 트렌드를 넘어 규범이 됐다. 영화 ‘캣츠’의 ‘고양이와 친해지려면 리스펙트 하라’는 대사처럼, 사람들은 자신에게 ‘집사’의 지위를 부여하며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기의 역량을 드러낸다. 나는 충성만 원하는 게 아니라 남을 존중하고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얘기”라는 것이다.
 
미학자 진중권은  『고로 나는 존재하는 고양이』(2017)에서 숭고한 미적 존재인 고양이를 찬양하며 그에 걸맞는 집사가 되기 위해 ‘고양이성’을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랑을 바라나 굳이 구걸하지 않고, 속으로 따뜻해도 겉으로 까칠하며, 아무리 친해져도 끝내 알 수 없는 구석을 남기며, 사회 안에 살면서도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고양이성’에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 살아가는 법을 배우자는 얘기다.
 
'야옹서가' 고경원 "고양이 책으로 향후 5년은 거뜬"
고경원

고경원

16년간 기자이자 길고양이 전문 사진가로 활동하며 5권의 고양이 관련 책을 썼다. 2017년 고양이 전문 출판사 ‘야옹서가’를 차리고 7권의 책을 냈다. 야옹서가의 첫 책 『히끄네 집』은 출간 첫 주 인터넷 교보문고 1위에 오르며 총 1만 7000부가 판매됐고, 내년 일본어판도 출간 예정이다. 두 마리 고양이의 집사다.
 
요즘 고양이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 산책을 못 시켜서 그간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10년 새 블로그·SNS 등 개인채널이 발달해 고양이 집사들이 적극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고양이가 잘 보여지는 세상이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기피 동물 아니었나.
“고양이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꾸준히 활동하는 분들이 있었다. 내 경우 단체 활동까지는 못 해도 내가 잘하고 오래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고양이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길고양이 책을 내 왔다. 각자의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고양이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 같다.”
 
고양이만으로 콘텐트가 충분한가.
“주변에서는 동물 전문 출판사도 어렵다고 걱정했지만, 그간 기획했던 책만 해도 향후 5년간 걱정 없다. 나는 고양이가 행복해지는 데 도움이 되는 책에 초점을 맞춘다. 예컨대 나이든 고양이 케어와 임종을 다루는 책도 필요하다. ‘스타워즈’에 굉장히 다양한 종족이 나오듯 고양이는 종이 다를 뿐 나와 같이 살아가는 가족이고, 가족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콘텐트는 무궁무진하다.”
 
‘고양이가 사람의 삶을 마법처럼 바꿔놓는다’고 했다.
“『히끄네 집』 저자도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3포 세대 청년이었는데, 고양이를 가족으로 맞고 삶이 바뀌었다. 고양이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의무가 아니라 삶의 원동력이 된 거다. 고양이로 인한 사회적 변화도 일어날 거다. 고양이를 키우는 1인 가구는 계속 늘어날 텐데, 고독사하게 되면 고양이가 가장 걱정이다. 그런 사람들끼리 품앗이하는 사회적 연대도 점차 이뤄질 것으로 본다.”
 
유주현 기자, 김여진 인턴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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