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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재건축 호가 2억~4억 떨어지지만 급등 전셋값이 뇌관

중앙선데이 2020.01.04 00:02 668호 2면 지면보기

2020 부동산 어디로

12·16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이 나온 지 보름이 지났다. 분양가상한제 대상 지역을 확대하고, 고가주택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강화하는 한편 종부세율을 올렸다. 청약부터 대출·세금까지 모두 망라했다. 전세대출을 받은 뒤 시가 9억원이 넘는 주택을 사면 대출을 회수하는 조치도 들어갔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사는 소위 ‘갭투자’까지 틀어막은 것이다.
 

온갖 규제로 집값은 눌렀는데
잠실주공 등 호가 하락세 뚜렷
“가격 조정 당분간 이어질 듯”

서울 전세가율 50%선으로 떨어져
학군 좋은 곳은 전셋값 급등 우려

최근 10년간 통화량 2.5배 증가
아파트값 상승은 ‘화폐적 현상’

대책 발표 후 재건축 아파트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하락세를 보인다. 실거래가가 21억원을 넘었던 잠실주공5단지(전용 76㎡)는 19억원대 매물이 나왔다. 22억원을 호가하던 대치동 은마아파트(84㎡)는 19억5000만원짜리 급매물도 나왔다. 강남 아파트들도 상승세가 꺾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21억7000만원에 거래됐던 잠실엘스(84㎡)는 16일에는 1층이지만 17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호가는 2억원 정도 내렸다. 최고 31억원에 거래됐던 반포 래미안퍼스티지(84㎡)는 지난달 27일에는 실거래가가 27억원까지 낮아졌다. 하지만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고는 집주인들이 전반적으로 호가를 낮추는 분위기는 아니라는 것이 부동산 중개업체들의 이야기다.
 
대책 낼 때마다 ‘투기 수요 차단’ 강조  
 
통화주의를 집대성한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떤 경우에도 화폐적 현상이다”는 말을 남겼다. 화폐 공급량이 단기적인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실물 경제에 별 영향이 없고 인플레이션만 나타난다는 주장이다. 이 이론을 원용하면 서울의 아파트값도 화폐적 현상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통계청에 따르면 협의통화(M1)는 2009년 357조원에서 지난해 885조원으로 늘었다. 거의 2.5배가 된 셈이다. M1은 현금과 요구불예금을 합친 것이다. M1에 정기예금,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합친 광의통화(M2)는 같은 기간 1508조원에서 2874조원으로 증가했다. 서울 염리동 마포자이(85㎡) 가격은 2009년 7억원 안팎에서 최근 14억원 수준으로, 잠실엘스(85㎡)는 10억원에서 20억원으로 올랐다. 돈값이 떨어진 만큼 오른 셈이다. 문제는 2016년 상반기까지 안정적이던 아파트값이 하반기 이후 단기간에 급등했다는 점이다.
 
정부는 아파트값 상승을 돈이 풀리고 실수요가 늘었기 때문이 아니라 투기가 작용한 결과로 본다. 부동산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말이 ‘투기 수요 차단’이다. 김현미 장관은 올해 신년사에서 “부동산 투기 수요 차단, 공평 과세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12·16 대책을 시행했고, 공시가격 현실화를 본격화했다”고 밝혔다. 아파트값이 오르기 시작하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이후 8·2 대책(2017년), 9·13 대책(2018년), 12·16 대책(2019년) 등을 잇달아 내놓았다. 새 아파트를 지으면 집값이 오른다며 재건축을 막고, 양도세·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고, 대출을 조였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의도와는 반대로 흘러갔다. 2017년 임대주택등록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다가 매출이 잠기면서 아파트값이 급등했고, 9·13 대책 이후 주춤했다가 아파트 청약을 가점제 중심으로 바뀌면서 당첨 가능성이 거의 없어진 30대가 기존 아파트 매수에 나서면서 다시 올랐다. 정부는 “지난 정부의 과도한 규제완화 탓”이라는 입장이다. 진단이 다르니 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다. 대출을 막고 보유세를 올린 강력한 12·16 대책으로 아파트값 상승세는 일단 꺾일 전망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위원은 “강남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하락세가 3개월 이상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설적으로 정부의 부동산 대책은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평도 나온다. 집 가진 사람들은 집값이 올라서 좋고, 집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집 가진 사람을 적폐라고 대신 때려주니 대리만족한다. 정부는 세금이 늘어나니 즐겁다. 강남 아파트 재건축을 기다리며 다른 아파트를 한 채 더 샀다가 해마다 수천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 일부 다주택자나 청약 당첨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일부 젊은 층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숫자가 못 된다. 그저 ‘무고한 희생자(콜래트럴 데미지)’일 뿐이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제1차관은 “15억원을 넘는 고가 주택은 서울 아파트의 7분의 1 정도만 해당하고, 전국적으로는 공동 주택의 1.2%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전세 급등이나 몇 년 후 공급 부족에 따른 매매가 상승 우려를 모를 턱이 없다”며 “집으로 불로소득을 얻는 것은 안 된다는 신념이 너무 강해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알면서도 당장 정치적으로 손해볼 게 없다는 생각에 모른척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라고 말했다.
 
특목고 폐지 ‘사교육 1번지’ 수요 더 몰려  
 
12·16 대책의 불똥은 전세 시장으로 튀었다. 래미안대치팰리스(85㎡)는 전셋값이 15억원으로 6개월 만에 3억원 올랐다. 12·16 대책 이후에는 호가가 17억원까지 나왔다. 양천구 목동5단지의 경우 7억원 안팎이던 35평은 8억원, 8억5000만원 안팎이던 45평은 10억원에 매물이 나왔다. 반포 아크로리버파크와 잠실엘스 등도 최근 한 달 동안 전용 85㎡ 기준으로 1억원 가까이 전셋값이 올랐다. 양천구 W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주로 찾는 20평대는 아예 매물이 없어 거래가 안 되고, 중대형 평수도 최소 5000만원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강남과 양천 중심으로 시작된 전세 불안이 앞으로 서울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일단 전세 수요가 많다. 집값이 급등한 데다 대출은 죄고 있어 당분간 전세를 살면서 청약을 기대하거나, 아예 내 집 마련을 포기하고 전·월세로 남으려는 사람들이 늘었다. 특목고 폐지도 학군 수요를 부추긴다. 이상우 익스포넨셜 대표는 “특목고의 일반고 전환은 강남 부동산 시장에 핵폭탄급 사건”이라고 말했다. 대입 정시 확대와 특목고 폐지로 학군 좋은 이른바 ‘사교육 1번지’로 수요가 몰린다는 것이다.
 
전세가율 추이도 집값 급등이 벌어지기 전 수준으로 낮아졌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의 평균 전세가율은 53%로 2013년(52.6%) 수준에 근접했다. 고점이던 2015년(70%)에 비하면 17%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전세가율은 집값이 급등하던 2001~2006년 사이 40% 선까지 내려갔다가 집값이 안정되면서 2015년까지 꾸준히 높아졌다. 전세가율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격의 비율이다. 집값이 안정된 기간에는 높아지다가 집값이 급등하면 낮아지는 특성이 있다.
 
전셋값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집값이 내려가도 전세가율은 높아진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 실제로 잠실엘스 60㎡의 경우 전세가율이 83%로 가장 높았던 2016년 3월의 경우 전셋값 7억원에 1억3000만원만 더하면 살 수 있었지만, 집값이 20억원으로 오른 지금은 그 격차가 9억5000만원으로 벌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서울의 경우 아파트 전세가율이 40%까지 떨어지면 매매가격이 고점이라고 본다”며 “아파트값 상승세가 주춤해지는 가운데 전셋값이 올라 매매가와의 갭을 메우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 전·월세 상한제 등 추가 규제 만지작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전세가격에 과열이나 이상징후가 있는지 경계심을 갖고 있다”며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추가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장 검토하는 추가대책은 없고, 시장이 안정화될 것으로 예상하지만 필요하면 언제든지 추가대책을 내놓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추가대책은 전·월세 상승폭을 연 5%로 제한하는 상한제와 전세 기간을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갱신청구제 등이다. 얼핏 전·월세 서민을 위한 정책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집주인들은 첫 계약 때 전세값을 대폭 올리면서 결국 매매가와의 차이가 줄고, 다시 갭 투자가 늘어 집값 상승요인이 될 수 있다.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실 소속으로 종부세 계산기를 고안한 이재용 비서관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처럼 전·월세 상한제와 갱신제 역시 서민층의 표를 얻기 좋아 보이는 정책이지만, 결국 최종 부담이 서민에게 전가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세값을 잡는 데 가장 효과가 큰 정책은 전세자금 대출 규제다. 80%까지 대출이 가능해 큰 부담 없이 비싼 전세값을 감당하게 해 준다. 집을 사려는 입장에서도 LTV 규제로 은행에서 최대 집값의 40%밖에 대출이 안되지만 전세를 끼면 50~70%를 무이자로 빌리는 셈이 된다. 박근혜 정부에서 도입했지만 현 정부가 손을 댈 가능성은 크지 않다. 홍 부총리는 “자가 주택자보다 전세를 이용하는 분이 더 서민층이므로 전세가격 동향을 각별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주택 구입시처럼 일정액 이상의 전세자금 대출을 막는다면 현 정부가 지지층으로 생각하는 서민들에게 ‘지금보다 열악한 집에 가서 살라’고 강요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김영준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김창우 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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