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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하룻밤 사이 성탄 트리가 싹 치워진 일본 거리

중앙일보 2020.01.03 08: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37)

 
처음 일본에서 맞이한 연말은 무엇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크리스마스 일색이었던 거리가 하룻밤 사이에 싹 바뀌어 있는 것이 아닌가. ‘뭐지? 조금 더 크리스마스 여운에 잠겨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쩜 이렇게 갑자기 설마 야밤에 싹 치웠단 말인가?’ 알록달록한 선물 꾸러미가 있던 쇼윈도는 일본식 새해맞이 분위기로 탈바꿈해 있었다. 상점 앞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희한한 장식물이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정월 장식물인 ‘카도마쓰(門松)’라는 것이다. 깔끔하다고 해야 할지 매정하다고 해야 할지. 자고 일어나면 싹 바뀌어버리는 거리 풍경에 익숙해지는 데 몇 해 걸렸다. 
 
일본은 기독교와 천주교 신자가 적다. 십자가를 보는 일도 드물다. 일부러 찾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크리스마스는 휴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크리스마스 시즌은 들뜨게 된다. 특히 어린 아이가 있는 가정은 파티 준비로 바쁘다. 트리를 장식하고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도 쓴다. 신자들의 성탄절이 아니니 추억을 만드는 이벤트 정도라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성장해 버린 가정의 크리스마스는 조용해진다. 성장한 젊은이들은 친구와 애인과 어울리고 부부는 둘만의 시간을 가지게 된다.
 
2020 신년맞이 종이 카도마츠. 쓰레기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인쇄물로 대신하는 동네가 늘었다. [사진 양은심]

2020 신년맞이 종이 카도마츠. 쓰레기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면서 인쇄물로 대신하는 동네가 늘었다. [사진 양은심]

신을 모실 준비가 되었다는 표식이 카도마쓰이다. 굵은 대나무 3개와 싱싱한 소나무를 밧줄로 동여맨 것인데, 매화를 곁들이기도 한다. 보통 쌍으로 장식된다.

신을 모실 준비가 되었다는 표식이 카도마쓰이다. 굵은 대나무 3개와 싱싱한 소나무를 밧줄로 동여맨 것인데, 매화를 곁들이기도 한다. 보통 쌍으로 장식된다.

 
일본의 연말 일정은 크리스마스 이후에 시작된다. 12월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새해맞이 준비로 곳곳에서 대청소가 시작된다. 묵은해의 먼지를 깨끗이 털어내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크리스마스와 상관이 없는 절에서는 12월 13일이면 스님과 직원들이 총출동해 절 안 곳곳의 먼지를 털어내고 대청소를 한다. ‘스스하라이(すす払い)’라는 이 청소 풍경은 장관이어서 종종 뉴스에 소개되기도 하는데, 일반 가정의 연말 대청소 풍습의 기원이기도 하다. 대청소를 끝내고 정월장식을 한다.
 
한국의 설에 해당하는 일본의 정월 ‘쇼가쓰(正月)’는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명절이다. 새해 한 해 동안 가족의 행복을 지켜준다는 ‘신(年神様/도시가미사마)’을 맞이하고 새해를 축하한다. 대청소는 그 신을 맞이하기 위한 것으로 늦어도 12월 30일까지는 마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신을 모실 준비가 되었다는 표식이 카도마쓰다. 굵은 대나무 3개와 싱싱한 소나무를 밧줄로 동여맨 것인데, 매화를 곁들이기도 한다. 보통 쌍으로 장식된다. 연말 연시에 일본을 여행한 적이 있는 사람은 현관에 대나무와 소나무로 만든 장식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쓰레기 문제 등으로 종이에 프린트된 것을 동네별로 배부한다. 종이만으로는 섭섭하게 느끼는 사람은 개인적으로 사서 장식하기도 한다. 외국인인 나까지 따로 장식하고픈 마음이 드니 일본인에게는 더더욱 의미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나는 정월 장식 화분을 만드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도쿄도 미술관. 보통 쌍으로 장식하는 데 하나만 놓여 있었다.

도쿄도 미술관. 보통 쌍으로 장식하는 데 하나만 놓여 있었다.

미츠코시 백화점 앞.

미츠코시 백화점 앞.

 
12월 29일 일요일 이른 아침. 나는 새해맞이 준비를 마쳤을 거리에 나가 보았다. 전철을 타고 긴자(銀座)에서 내렸다. 우선 미쓰코시(三越) 백화점을 향했다. 멀리서도 정월 장식을 한 현관 모습이 보인다. 시설이 크면 장식도 크다. 소소한 장식을 한 가게들도 보인다. 그야말로 종이 한장으로 끝낸 가게도 있다. 29일까지 장식이 없는 가게들은 대부분 외국 기업이라 추측된다. 예산이 필요한 일이니 의미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쓸데없는 일로 치부될지도 모를 일이다.
 
긴자를 둘러본 후 우에노 공원으로 향했다.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이 있는 곳이다. 정월 장식을 마친 곳은 도쿄도 미술관과 우에노 동물원이었다. 박물관과 미술관 앞에는 장식이 없었다. 도쿄도 미술관은 쌍이 아닌 단 하나만 장식돼 있어 의외였다. 경비 삭감으로 간소화 경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보았다. 
 
우에노 동물원.

우에노 동물원.

카도마츠를 설치 중인 업자. 전통적인 작업을 청년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카도마츠를 설치 중인 업자. 전통적인 작업을 청년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월 장식을 설치하는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새삼 전문 업자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커다란 카도마쓰는 전문 기술이 필요하겠지만, 작은 음식점에서 아주 손쉬워 보이는 작업을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것은 의외였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작업을 하는 이가 젊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전통이 이어져가는 것일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가능한 한 전임자가 정한 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 성향이 있다. 전통적인 것은 물론 유치원 학부모회에 이르기까지 정해진 것을 바꾸는 일을 꺼린다. 전임자 또한 바뀌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새로운 일을 정할 때는 너무나도 신중한 나머지 결정이 늦다.
 
그러나 일단 정해지면 어떤가. 한 치의 의문도 없이 담담히 실행해 나간다. ‘정해진 일이니까’,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설사 의문이 생기더라도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일본의 분위기를 모르는 외국인이 아닌 이상 정해진 일은 웬만해서는 바꾸지 않는 일본인의 성향. 이 성향은 믿음이 가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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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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