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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세계경제 망칠까 우려…한국, 수출 의존 줄여야 산다"

중앙일보 2020.01.03 05:00 종합 12면 지면보기

[세계 경제석학 진단 ②]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 

세계화를 기반으로 고성장한 한국 경제에 대해 로드릭 교수는 "세계화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 하버드대]

세계화를 기반으로 고성장한 한국 경제에 대해 로드릭 교수는 "세계화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진 하버드대]

“부자 나라의 가난한 사람과 가난한 나라의 부자 중 어느 쪽이 되고 싶나?”  
 

한국 세계화로 고성장 이뤘지만
세계경제 재채기 때 먼저 감기 걸려
금융위기 겪으며 세계화 맹신 깨져
무력 압박 통한 불평등 거래 가능성

중국, 비정통적 경제체제로 성장
서구와 이질감 미·중 무역전쟁 불러
규제 줄이고 각국 자율성 가져야
세계 경제 기반 더 건전해질 것

대니 로드릭(62)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국제정치경제학과 교수가 가을 학기 첫 수업에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학생들은 대부분 후자를 고른다. 가난한 나라의 부자라면 하인을 여럿 두고 호화로운 자동차가 즐비한 저택에 사는 거물을 상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둘 중 소득은 누가 더 많을까. 통상 잘사는 나라의 하위 5%는 국민소득의 1%만을 가져간다. 가난한 나라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지만, 최상위 5%가 국민소득의 25%를 가져간다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전형적인 부국인 스위스·노르웨이 등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6만5000달러, 라이베리아 등 전형적인 빈국의 1인당 GDP는 약 1000달러다. 그렇다면 부국의 빈곤층 소득은 1만3000달러(6만5000달러x0.01x20), 빈국의 부자 소득은 5000달러(1000달러x0.25x20)로 계산된다. 스위스 빈곤층이 라이베리아 부유층보다 두세 배 소득이 많다는 얘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는 로드릭 교수는 ‘세계화 및 경제발전 이론’의 대가다. 그는 2010년 저서 『자본주의 새판짜기』(원제:The globalization paradox)에서 ‘세계화·민주주의·국민국가’의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미국 동부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루벤스타인 건물 3층 연구실에서 로드릭 교수를 만났다. 문 앞에는 그가 설립한 정책 연구소인 ‘포괄적 번영을 위한 경제학(EfIP)’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맞춰 나타난 로드릭 교수는 시종일관 진지하고 차분한 어조로 인터뷰에 응했다. 터키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그에게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인걸 아느냐’고 물으니 ‘들어본 것 같다’며 겸연쩍게 웃었다    
로드릭 교수는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세계화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며 "민주주의 국가라면, 다른 나라로부터 자국민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세계 경제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후자다"라고 말했다. [사진 하버드대]

로드릭 교수는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세계화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며 "민주주의 국가라면, 다른 나라로부터 자국민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세계 경제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후자다"라고 말했다. [사진 하버드대]

첫 수업에서 학생에게 던지는 질문이 흥미롭다.  =
“국가 내 불평등만큼 국가 간의 불평등도 중요한 이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빈국의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선진국 중산층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등 선진국에서 포퓰리즘과 민족주의가 부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내 나라만 잘 먹고 잘살게 하겠다’고 외치는 지도자를 뽑는 거다.”  
  
10년 전 이미 세계화가 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그가 벌이는 미·중 무역 전쟁도 예상했나.   =
“세계화가 절대적인 번영을 가져올 것이라는 맹신이 결국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트럼프의 존재는 생각지 못한 변수다.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 불가의 상대다. 세계 정치 경제를 망쳐버릴까 우려된다.”
 
로드릭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전쟁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는 대표 학자다. 그는 제프리 레만 뉴욕대 상하이캠퍼스 부총장과 야오 양(姚洋) 베이징대 국가발전연구원장,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 36명의 석학과 함께 미·중 무역 전쟁의 종식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지난해 10월 발표했다.  
 
세계화로 세계 경제가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고 언제부터 생각했나.   =
“1997년 책 ‘세계화가 너무 진행됐나’를 집필한 직후 한국·태국·인도네시아의 국가 경제가 외환 위기로 산산조각 났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수십년간 고성장을 거듭해 각종 금융기관에서 ‘세계화에 성공한 신흥국’으로 극찬하던 국가들이다. 당시 글로벌 투자은행은 아시아에서 급속도로 자금을 뺐고, 위기는 러시아·브라질, 심지어 아르헨티나까지 번졌다. 결국 대형 헤지펀드 롱텀캐티털매니지먼트(LTCM)가 파산하면서 미국 금융시장까지 크게 흔들렸다. 슬프게도 나는 당시 금융 시장의 위기를 전혀 짚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나를 포함한 학계에서는 아시아 국가들이 위기로 무너졌을 때, 그들이 이 세계의 준엄한 법칙에 적응할 능력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로드릭 교수는 "세계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며 "국가 차원에서 규제와 법령으로 지배하고 지원하는 국내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사진 하버드대]

로드릭 교수는 "세계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며 "국가 차원에서 규제와 법령으로 지배하고 지원하는 국내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사진 하버드대]

당시 금융 위기는 미국까지 번졌는데 왜 미 경제학계는 안일하게 반응했나.=
“그러게 말이다. 이후에도 학계는 금융 세계화가 절대적으로 좋은 일인 것 마냥 찬양했다. 맹목적인 믿음에 가까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계화에는 장점이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기업가가 자금을 모으는 데 도움을 주고, 투자자의 위험을 분산시키고, 결정적으로 현금이 부족해 여러 리스크에 노출된 개발도상국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결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미국 경제를 집어삼켰고, 금융 세계화가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때부터 세계화에 대한 맹신이 깨지기 시작했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위기가 월스트리트에서 세계 금융 도시로 그토록 쉽게 퍼진 이유는 금융 세계화로 모든 대차대조표가 한데 뒤섞였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 산업이 비로소 무너지고, 선진국의 망신살이 뻗치자 드디어 지난 30년간 자본주의의 중심에 있던 세계화가 앞으로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제기됐다.”
 
미국 경제학계에는 세계화를 지지하는 학자가 절대적으로 많은데, 이에 반대해온 이유가 뭔가.=
“세계화 자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 덕분에 선진국이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리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빈곤한 노동자가 혜택을 입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화를 떠받치는 기둥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국제 시장 자체가 매우 취약하다는 얘기다. 국가 차원에서 규제와 법령으로 지배하고 지원하는 국내 시장과는 차원이 다르다. 언제라도 갈등과 싸움이 오갈 수 있고, 무력으로 불평등한 거래가 이뤄질 수도 있다.”
 
유엔,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가 정한 원칙이 있지 않나.   =
“중국의 2001년 WTO 가입은 중국이 미국과 비슷한 경제 모델로 수렴하며, 광범위한 세계 경제 통합을 이루게 될 것이란 암묵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WTO의 설립 원칙 자체가 원래 그렇다. 불투명한 정부 개입과 산업 정책, 시장과 국유 기업에 대한 지속적인 통제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의 비정통적 경제 체제는 경제 성장을 촉진하고 빈곤을 줄이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중국이 서구와 깊은 경제 통합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지금의 미·중 무역 전쟁 같은 갈등이 벌어진 거다.”
로드릭 교수는 "세계화로 유입된 개발도상국 노동자 때문에 선진국 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이는 세계 경제가 중요 한계점을 넘었고, 정책 우선순위를 다시 논의할 차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진 하버드대]

로드릭 교수는 "세계화로 유입된 개발도상국 노동자 때문에 선진국 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됐다"며 "이는 세계 경제가 중요 한계점을 넘었고, 정책 우선순위를 다시 논의할 차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사진 하버드대]

세계 경제는 정치적 ‘트릴레마(trilemma·세 가지 정책 목표가 서로 상충해 동시에 개선할 수 없는 상황)’를 겪고 있다고 했다.  =
“그렇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세계화를 추진하려면 국민국가나 민주주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민국가와 세계화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국가와 민족자결권을 지키려면 깊은 민주주의와 깊은 세계화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세 가지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는 게 우리가 직면한 문제다.”  
 
그럼 결국 셋 중에서 두 가지를 고른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민주주의와 민족자결권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라면, 다른 나라로부터 자국민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고, 이러한 권리가 세계 경제 요구와 충돌할 때 물러서야 할 것은 세계화다.”
 
그렇다면 이제 세계화의 종말을 예상하나. =
“물론 내 주장을 듣고 나면, 세계화가 이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나는 각국의 민주주의에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세계 경제 기반을 더 건전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여기에 세계화의 궁극적인 역설이 존재한다. 규제 규범을 축소하고, 개별 국가에 자율성을 더 많이 부여하면, 더 나은 세계화를 맞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대화된(maximum) 세계화가 아니라 스마트한 세계화다.”
 
세계화가 전환점을 맞이한 이 시점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
“한국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 세계화를 기반으로 고성장해 여전히 수출 비중이 큰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 경제가 재채기할 때마다 가장 먼저 감기에 걸리는 것이다. 한국은 일단 세계화의 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기업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내수를 늘리는 게 좋을 것 같다.”    
대니 로드릭. 그래픽=신재민 기자

대니 로드릭. 그래픽=신재민 기자

케임브리지(미국)=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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