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의 팔 가진 사나이' 3년의 행복···"8월엔 아빠 됩니다"

중앙일보 2020.01.03 05:00 종합 18면 지면보기
팔 이식 수술후 결혼, 그리고 새해 2세 출산을 앞둔 손진욱씨 부부. 손으로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사진 독자]

팔 이식 수술후 결혼, 그리고 새해 2세 출산을 앞둔 손진욱씨 부부. 손으로 하트를 그려보이고 있다. [사진 독자]

"기다리던 새해가 밝았네요. 올해 제가 드디어 아빠가 됩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남의 팔'을 이식받은 손진욱(39) 씨의 2020년은 특별하다. 지난해부터 기다리던 그의 2세가 오는 8월 태어나기 때문이다. 장애인으로 살던 그가 팔 이식 수술 후 결혼에 골인했고, 이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 새해 아빠가 된다. 
 

손진욱씨 부부 오는 8월 2세 출산 예정
"이식 받은 손에 땀 점점 더 많이 나"
낚시 즐길만큼 팔 상태 정상에 가까워져
"감사하며 이웃 챙기며 행복하게 살겠다"

손진욱씨 부부가 손으로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사진 독자]

손진욱씨 부부가 손으로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사진 독자]

손씨는 2018년 가을 지인의 소개로 만나 교제해 온 여자친구와 지난해 6월 대구에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후 운수업, 서비스업 등 평범한 30대 직장인으로 생활해왔다. 그는 "장애가 있던 시절에는 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는 평범한 부부를 볼 때 제일 부러웠다"며"올해는 아빠가 되는 꿈을 이루는 해"라고 말했다.  
손씨는“팔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한 2017년 1월(수술은 2월)이 첫 번째 새 인생을 시작한 해라면 지난해 결혼이 두 번째 인생, 2020년은 2세가 태어나는 올해는 세 번째 새로운 인생"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 2015년 공장에서 일하다 사고로 왼쪽 팔을 잃었다. 의수(義手)를 끼고 생활하다 2017년 2월 대구 W병원과 영남대병원에서 뼈와 신경·근육·혈관 등이 포함된 다른 사람 팔을 이식받았다. 
 
대구 영남대학교병원에서 우상현 대구 W병원장과 의료진들이 팔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대구 영남대학교병원에서 우상현 대구 W병원장과 의료진들이 팔 이식 수술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새해가 그에게 특별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수술한 팔이 점점 더 정상인의 팔에 가까워지고 있어서다. 희망과 행복이라는 말의 뜻을 이젠 이해하겠다는 손씨는 “수술 3년 차를 맞으면서 ‘남의 팔’이 이젠 진짜 내 팔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수술 초기에는 팔과 손이 저리고 시려지는 고통을 겪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는 것 같은 정교한 움직임은 어려웠다. “왼쪽 팔이 달렸지만, 내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관련기사

수술 몇 달이 지나면서 그의 몸은 조금씩 남의 팔을 받아들였다. 5개 손가락 모두 움직일 수 있게 되고 손에 힘을 줄 수 있었다. 야구공을 쥐고 던지거나 다른 사람과 손을 맞잡고 흔들며 악수도 할 수 있었다. 손에 신경이 살아나면서 뜨거움과 차가움을 느끼고, 차량 운전과 양치질, 머리 감기 같은 일상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손에 땀도 났다. 이 덕분에 2017년 7월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경기 때는 시구를 했다. 당시 팔 이식 수술 성공 사례로 그의 시구는 국내외에 화제가 됐다. 
 
국내 첫 '팔 이식'을 받은 손진욱씨. 왼쪽 팔이 수술받은 팔이다. 김윤호 기자

국내 첫 '팔 이식'을 받은 손진욱씨. 왼쪽 팔이 수술받은 팔이다. 김윤호 기자

손진욱씨가 수술 받은 팔로 v를 그려보이고 있다. 김윤호 기자

손진욱씨가 수술 받은 팔로 v를 그려보이고 있다. 김윤호 기자

지금은 정상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손과 팔에 힘을 낼 수 있다고 한다. 수술한 손에 나던 땀은 더 많이 난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엄지를 편안하게 움직여서 숟가락으로 식사도 당연히 가능하다. 
 
 그는 "장애가 있을 때 못하던 낚시를 최근 시작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렁이 같은 미끼를 낚싯대에 끼울 때 '아 이제 왼팔이 진짜 내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팔 상태가 좋아지면서, 한 달에 한두 번 찾던 병원도 두어 달에 한 번 만 찾는다. 늘 복용하는 면역 억제제 약도 많이 줄었다. 그래서 지난해 연말엔 혼자 대구 달서구에 있는 장애인 복지시설을 몇 차례 찾아가 장애인들을 돌보고, 챙기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손씨는 “팔을 기증해준 기증자를 위해서라도, 수술을 도와준 대구시와 W병원 관계자들을 위해서라도, 새해 태어나는 2세와 부인을 위해서라도 새해 늘 이웃을 챙겨가며, 더 행복하게, 잘 살겠다"고 말했다. 

한편, 손씨 수술 성공 사례를 계기로 팔 이식 수술의 위법 논란도 정리됐다. 보건복지부가 수부(손·팔)를 ‘장기이식법’ 관리대상에 넣기로 법 개정을 추진한 결과 지난 2018년 성사된 때문이다. 팔 이식 후 치료를 위해 매월 처방받아 먹는 면역 억제제는 의료보험 적용 대상이 됐다. 그는 2018년 중순까지 면역 억제제를 먹는 데 월 100여만원을 부담했으나 의료보험 적용으로 현재는 월 17만원 정도만 낸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