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초심 잃지 않는 송강호·이병헌…내 젊은 시절 보는 듯

중앙일보 2020.01.03 00:09 종합 24면 지면보기
송강호(53)와 이병헌(50)은 오늘날 한국영화를 이끄는 최고 배우이자, 내가 가장 아끼는 후배 연기자다. 지난해 화제작 ‘기생충’과 올해 흥행작 ‘백두산’으로 각기 바쁘게 지내면서도 새해 안부를 잊지 않고 챙기는 그들의 마음씨가 고맙다.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43)
<14> 한국영화 이끄는 두 후배들

‘JSA’서 눈여겨본 송강호의 매력
2013년 이병헌 결혼식 주례 맡아
세계적 스타로 더욱 뻗어가기를

이런저런 행사 때 늘 강조하는 게 선후배 간 교류다. 2019년 한국영화 100년이 있기까지 피땀 흘려온 충무로의 원로들을 후배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1960~70년대를 주름잡은 신영균에만 머물기보다 충무로의 신구 세대를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송강호·이병헌은 그런 나의 뜻을 잘 이해해주고 있다.  
 
쑥스럽지만 나는 솔직히 그들의 팬이다. 둘이 나온 작품은 빠짐없이 보고 있다. 송강호는 신작이 나올 때면 VIP 시사회에 늘 나를 초청한다. 무대인사 때마다 “귀하신 분이 오셨다”며 소개한다. 머쓱하면서도 감사할 뿐이다.  
 
송강호를 보노라면 왠지 모르게 젊은 시절 나를 만나는 것 같다. 평범한 얼굴에서 분출하는 비범함이랄까. 표정 하나, 대사 하나에도 노력하려는 배우라는 걸 느낀다. 정이 갈 수밖에 없는 친구다.    
  
‘살인의 추억’ 본 뒤 “전화번호 좀 주시게”
 
지난해 10월 신영균의 91번째 생일에 참석한 송강호. 가운데 ‘빨간 마후라’ 인형이 보인다. 김경희 기자

지난해 10월 신영균의 91번째 생일에 참석한 송강호. 가운데 ‘빨간 마후라’ 인형이 보인다. 김경희 기자

그를 처음 눈여겨본 작품은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다. 북한군 오경필 중사를 맡았다. 남북 분단의 아픔을 그만큼 절절히 연기한 배우도 드물 것이다. 나도 김기덕 감독의 ‘남과 북’(1965)에서 사랑을 찾아 남에 내려온 북한군으로 나왔는데 그때 가슴 아픈 기억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송강호에게는 스스로 빛을 내는 스타만의 아우라가 있다. “아, 이 배우는 나중에 크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송강호와의 각별한 인연이 시작된 건 2003년 ‘살인의 추억’ 개봉 즈음이다. 한 시상식에서 그를 우연히 만났는데 반가운 마음에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강호야, 수상 축하한다. 네 전화번호 좀 주라. 앞으로 자주 보자.”
 
“제가 영광이죠. 선배님, 늘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후배들과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야 늘 있지만 나이가 들어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2015년 송강호를 포함해 박중훈·한석규·장동건·현빈 등과 저녁을 함께하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누렸다. 그는 “선배님께서 제 이름을 처음 부르셨을 때 목소리가 참 정겨웠어요”라며 내가 내민 손을 정겹게 잡았다.  
  
이병헌 동생 미스코리아 심사위원장 인연
 
2011년 6월 신영균의 서강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식에 참석한 이병헌. [연합뉴스]

2011년 6월 신영균의 서강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식에 참석한 이병헌. [연합뉴스]

이병헌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다. 96년 제40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그의 동생 이지안(본명 이은희)이 ‘진’이 됐는데 마침 그때 내가 심사위원장이었다. 그 무렵 그를 처음 만난 것 같다. 이후 고(故)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 여사의 초대로 강원도의 한 골프장을 찾았을 때도 마주친 적이 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도 한눈에 앞길이 환해 보였다.  
 
김우중 회장 집안과 이병헌의 인연도 그때 전해 들었다. 정 여사는 94년 TV에서 우연히 이병헌을 보고, 4년 전 교통사고로 먼저 세상을 뜬 장남 김선재군이 떠올랐다고 한다. 연극배우 유인촌씨 주선으로 이병헌을 만나 “양아들을 삼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병헌은 “누군가의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냐”는 친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내가 정 여사라도 같은 제안을 했을 것 같다. 이병헌은 예의 바르고 다정다감하다. 2011년 내가 서강대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그가 한창 촬영 중임에도 꽃다발을 들고 달려와 크게 감동한 적도 있다. 2013년 이병헌이 어느 날 명동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이민정과 결혼을 앞둔 때였다.
 
“평소 존경해온 선배님께서 주례를 서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허허, 내가 좋아하는 후배인데 당연히 해줘야지.”
 
나는 예정된 일정을 취소하고 기꺼이 주례를 섰다. 유동근·전인화, 임백천·김연주 부부 등 수십 차례 주례를 서봤지만 매번 처음처럼 긴장이 됐다. “결혼 생활의 비결은 없지만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마음만 진실하다면 문제될 게 없다”며 둘의 앞날을 축하한 것 같다.  
 
영화평론가 전찬일씨가 지난해 한국영화 100년을 빛낸 남성 스타를 10명을 꼽았는데 그중에 두 후배와 내가 포함됐다. 나는 ‘지는 별’이지만 지금도 무섭게 성장하는 둘을 보면 충무로의 장래가 밝은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 이병헌은 ‘지·아이·조’ ‘터미네이터’ 등 할리우드 시리즈에 출연하며 국제적 인지도를 갖춘 톱스타로 일어섰다. 한국인 처음으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시상자로 초대받을 만큼 말이다.
 
또 송강호의 ‘기생충’은 한국영화 처음으로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아카데미상 예비 후보에도 올라 있다.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곧 좋은 소식이 들려오길 고대한다.  
원로배우 신영균씨(아랫줄 왼쪽 두번째)가 2015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후배 배우들과 함께 식사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원로배우 신영균씨(아랫줄 왼쪽 두번째)가 2015년 서울 소공동의 한 호텔에서 후배 배우들과 함께 식사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20년 넘게 두 사람을 지켜봐 왔다. 연기에 대한 열정과 초심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JSA’ ‘밀정’에 이어 오랜만에 호흡을 맞춘 ‘비상선언’이 올해 개봉할 예정이라고 한다. 항공 재난을 다뤘다고 하는데 큰 기대를 건다. 내 최고작 ‘빨간 마후라’에서 목숨을 걸고 찍은 전투기 추락 장면이 새삼 떠오른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