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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로고스'로 찔렀고, 유시민은 '파토스'로 회피했다

중앙일보 2020.01.03 00:03 종합 6면 지면보기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왼쪽)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일 오후 JTBC 신년특집 토론회에서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JTBC 캡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왼쪽)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 1일 오후 JTBC 신년특집 토론회에서 ‘한국 언론, 어디에 서 있나’를 주제로 토론하고 있다. [JTBC 캡처]

어제의 동지는 어쩌다 오늘의 적이 됐을까.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고 노회찬 의원과 함께 ‘노유진’으로 불릴 만큼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이었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계기로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섰다.
 

‘옛 진보 동지들의 신년토론’ 관전기
진 “PC 반출이 증거보전?” 지적에
유 “옆에 분이 말해달라” 해명 피해

진 “유, 오픈북 발언은 대중윤리 마비”
유 “이러면 토론 어렵다” 말 돌려

이 궁금증은 지난 1일 방송된 JTBC 신년토론을 보며 해소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의 3요소로 에토스(인품)와 파토스(감성), 로고스(이성)를 제시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언제나 논리적이면 로고스만으로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에 파토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때 파토스의 영향력은 로고스보다 파괴적이며 즉각적이다.
 
적어도 이날 신년토론이나 ‘조국 사태’ 이후의 언사에서 유 이사장은 파토스를, 진 전 교수는 로고스를 주무기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 방송에서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이 ‘알릴레오’에서 말한 내용, 실제 집회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 등을 논거로 제시했다. 의견을 말한 후 사실로써 논거를 제시하는 전형적인 논증의 법칙을 따랐다.
 
그러나 유 이사장은 달랐다. 진 전 교수가 검찰 압수수색 이전 정경심 교수의 컴퓨터 반출을 놓고 유 전 이사장이 “증거 인멸이 아닌 증거 보전”이라고 말한 사실을 지적하자 “이런 것에 바로 답하면 토론이 엉망이 된다. 옆에서 보는 분들이 말해 달라”고 했다. 이어 정준희 한양대 겸임교수가 바통을 이어받아 진 전 교수에게 동양대 보도의 문제를 제기했다. 유 이사장은 방송 끝까지 진 전 교수의 위 문제제기엔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정 교수와 진 전 교수의 대화는 한동안 생산적인 토론보다는 ‘말꼬리 잡기’로 이어졌다. “동양대 관련 기성 언론의 보도 내용은 대부분 맞았다”(진중권), “최성해 총장의 말이 다 옳았느냐”(정준희), “얘기한 것 중 디테일은 틀리지만”(진중권), “다 옳았다고 하지 않았느냐”(정준희), “내가 언제 다 옳다고 했느냐”(진중권). 이렇게 두 사람은 한참 설전을 벌였다.
 
다시 진 전 교수는 유 이사장의 ‘오픈북’ 발언을 지적했다. 그러나 유 이사장은 “아들의 대리시험 의혹을 ‘오픈북 시험’이라고 표현하면서 대중들의 윤리를 마비시켰다”는 진 전 교수의 주장에 직접적 해명을 하지 않았다.
 
앞서 유 이사장은 알릴레오 방송에서 “오픈북 시험이라 어떤 자료든 참고할 수 있다, (검찰의 기소는) 아주 깜찍하다”고 발언했다.
  
유시민 “검찰 말 언제나 팩트는 아니다”
 
조국. [뉴시스]

조국. [뉴시스]

토론회에서 유 이사장은 반박 대신 “모든 정보는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이 언제나 팩트를 말하진 않는다”는 취지로 검찰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진 전 교수가 “재판에서 (검찰의 기소 내용이 맞다고) 결론 나면 그때는 사법이 썩었다고 할 것이냐”고 묻자 유 이사장은 “검찰도 썩었고 사법부도 썩었다”며 맞받았다. 아울러 “평소 내가 알던 진중권답지 않게 (논리가) 건너뛴다. 그렇게 하면 토론하기가 어렵다. 다른 분 말씀을 듣고 이어가자”며 화제를 돌렸다.
 
논점을 회피하거나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기, 또는 메시지보다 메신저를 공격하는 것은 과거의 유 이사장답지 않은 방식이다. 치밀한 논증과 논리적 언변으로 출판계는 물론 방송에서 큰 명성을 쌓은 그였다.  
 
그러나 ‘조국 사태’ 전후로 유 이사장의 언어가 달라졌다. “음모론적 선동”이라는 진 전 교수의 지적처럼 유 이사장의 말엔 사실과 의견, 진실과 믿음이 뒤섞여 있다.
 
모든 사건은 사실의 조각들로 이뤄져 있고, 이를 모아 모자이크를 맞춰 나가는 것이 진실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대중은 언론에 판타지를 원한다”는 진 전 교수의 말처럼 진실보다 ‘음모론’이 더욱 그럴듯하게 들린다. 단순 팩트를 연이어 나열하고, 이들 사이에 ‘합리적 의심’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인과관계를 도출하는 것이 ‘음모론’의 기본 프로세스다.
  
진중권 “유 이사장 언어는 선동의 언어”
 
이날 방송에서 진 전 교수가 “검찰이 압수해 증거를 왜곡할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것을 대중에게 믿게 한다, 유 이사장의 망상을 대중은 현실로 믿고 있고 구사하는 언어는 선동의 언어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선동은 파토스의 영역이다. 이를 가장 잘했던 이가 나치의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1897~1945)다. “선동은 문장 한 줄로 가능하지만 이를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때는 이미 사람들이 선동당해 있다.” 괴벨스의 말처럼 선동의 언어는 쉽고 듣기 달콤하다. 반면에 진실의 언어는 지루하고 딱딱하며 때론 거북하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란 책에는 “멋진 문장을 구사한다고 글을 잘 쓰는 게 아니다. 기술만으론 잘 쓸 수 없다. 살면서 얻은 감정과 생각이 내면에 쌓여 넘쳐흐르면 저절로 글이 된다”고 했다. 글과 말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유 이사장의 내면에 어떤 감정과 생각이 쌓였기에 그의 언어가 변한 것일까.
 
윤석만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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