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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순결은 이제 그만…성차별 교가 고치는 학교 늘어나

중앙일보 2020.01.03 00:03 종합 19면 지면보기
인천 부일여자중학교는 지난해 12월 19일 교내 춘추관 강당에서 새로운 교가 부르기 발표회를 열었다. 바꾸고 싶은 교화, 교목 선정하기 이벤트도 함께 진행됐다. [사진 부일여자중학교]

인천 부일여자중학교는 지난해 12월 19일 교내 춘추관 강당에서 새로운 교가 부르기 발표회를 열었다. 바꾸고 싶은 교화, 교목 선정하기 이벤트도 함께 진행됐다. [사진 부일여자중학교]

“행복하고 지혜로운 생각을 배워~”
 

성 역할 고정관념 강요하는 표현
인천시 교육청 권고에 48%가 수정
다른 지역 학교들도 자체적 변경
일부선 총동문회 등 반대로 무산

지난해 12월 19일 인천시 부평구 부일여자중학교 춘추관에서는 새로운 교가 부르기 발표회가 열렸다. 부일여중은 최근 교가·교훈을 대폭 손질했다. ‘단아하고 매운 절개’란 가사가 포함된 교가가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지적이 나온 뒤였다. 학교 측이 연 교가·교훈 새로 쓰기 공모전에 20편이 올라왔고 투표 등을 거쳐 1편이 선정됐다. 이 학교 2학년 김모(14)양은 “우리의 뜻을 모아 직접 만든 교가를 후배들이 이어 부른다고 생각하니 학교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는 거 같아 신기하면서도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인천시 미추홀구 인화여자고등학교도 교가 변경에 나섰다. 교가에서 ‘정숙한 어진 꽃이 향기 머금고’라는 가사가 성 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공모전을 열고 자문도 진행했다. 인화여고 관계자는 “50년 넘은 학교의 상징을 바꾸는 일이라 절차대로 신중하게 진행했고 곧 심의에 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교가에 성 역할을 강요하거나 성차별적으로 인식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된 학교들이 하나둘씩 수정에 들어가고 있다. 시대착오적 표현이란 지적이 나오면서부터 각 학교가 조치에 나선 것이다.
 
인천은 시 교육청이 직접 움직였다. 인천시 교육청은 지난해 7월부터 지역 학교 510곳의 교가 등에 성 차별적 요소가 있는지 등을 전수조사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중 처음이었다. 전문가로 구성된 컨설팅협의회가 학교별 교가·교훈 전문을 검토한 뒤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표현을 선별해 성차별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되는 학교에 수정을 권고했다.  
 
인천서 교훈·교가 바꾼 학교는

인천서 교훈·교가 바꾼 학교는

인천시 교육청에 따르면 교가 내용 수정을 권고받은 학교 65곳 중 22곳이 수정을 마쳤고 9곳은 진행 중이다. 대상 학교 중 48%가 수정에 들어갔다.
 
강원도 춘천여고는 지난해 4월 ‘성실·순결·겸양’이던 교훈을 ‘꿈을 향한 열정, 실천하는 지성’으로 바꿨다. 부산시 사직여중도 최근 ‘슬기롭고 알뜰한 참여성’이라는 교가와 교훈을 ‘슬기롭고 따뜻한 참사람’으로 교체했다. 사직여중 관계자는 “학생, 학부모, 교사 등에 사전조사를 했더니 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 변경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어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2000년 6월 교육부가 각 학교에 남녀 차별적 교훈과 교가를 바꿀 것을 권고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상당수 학교가 고치지 못했다. 강원도의 한 여고는 2013년 ‘참된 일꾼, 착한 딸, 어진 어머니’라는 교훈이 유교적 남성 중심 사회 속 여성상을 뜻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개정을 추진했지만, 총동문회가 반대해 무산됐다. 울산시 한 학교는 교가 속 ‘순결, 검소, 예절 바른 한국 여성 본이라네’라는 구절이 문제가 됐지만, 구성원의 반발로 유지하고 있다.  
 
이번에 인천시 교육청으로부터 교가·교훈을 수정을 권고받은 학교 중 일부도 수정에 들어가지 않았다. 시 교육청 관계자는 “오래된 학교일수록 전통 등을 이유로 총동문회 등이 변경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저서 『훈의 시대』로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교가·교훈 속 표현에 문제를 제기한 김민섭 작가는 “지금 바꾼 교훈과 교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 시대에 맞는 표현으로 바꿔야 한다”며 “교훈·교가 등을 변치 않는 전통보다는 동시대의 우리가 원하는 언어로 여기는 등의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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