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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만에 종량세 전환 …수제맥주 전성시대 누가 열까

중앙일보 2020.01.02 15:00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33)

2020년 맥주 업계는 50년 만에 큰 변화를 맞는다. 바로 맥주에 부과되는 세금 체계가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는 것이다.
 
종가세는 맥주의 가격에 과세하는 방식이고 종량세는 맥주의 판매량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그동안 종가세 체제에서는 출고가 1000원의 맥주에 720원의 주세가 붙었는데 종량세가 되면서 맥주 1ℓ당 830.3원의 주세를 내면 된다. 이 세율은 물가상승률에 따라 매년 조정될 예정이다.
 
맥주 주세 체계 변화로 가장 큰 가격 변화가 예상되는 시장은 수제맥주다.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 등 맥주에 붙은 세금을 모두 고려했을 때 수제맥주에 붙는 세금이 최대 30% 줄어들 전망이다.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현재 전체 맥주 시장의 1% 안팎에 불과한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계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여기서 수제맥주는 오비맥주·하이트맥주·롯데주류와 같은 국산 대기업 맥주와 이들 맥주와 경쟁하는 스텔라·하이네켄·벡스 등 해외 대기업 수입맥주를 제외한 국내외 소규모 양조장 생산 맥주를 말한다).
 
맥주 주세 체계 변화로 가장 큰 가격 변화가 예상되는 시장은 수제맥주다. 수제맥주에 붙는 세금이 최대 30% 줄어들 전망이다. 수제맥주 샘플러. [사진 flickr]

맥주 주세 체계 변화로 가장 큰 가격 변화가 예상되는 시장은 수제맥주다. 수제맥주에 붙는 세금이 최대 30% 줄어들 전망이다. 수제맥주 샘플러. [사진 flickr]

 
수제맥주 업계는 그동안 원가에 매겨지는 종가세 체계 하에서 큰 세금 부담에 시달려왔다. 또 종가세는 수제맥주의 품질 개선을 가로막는 걸림돌이기도 했다. 기본적으로 맥주에 좋은 재료를 넣을수록 세금이 크게 늘어났다. 또 감가상각비, 인건비, 월세 등이 모두 원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설비 및 인력투자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종량세 전환으로 인한 수제맥주의 가격 인하는 중형급 양조장에서 먼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중형 양조장들은 생산량이 적은 양조장과 달리 과세표준 경감의 수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종량세 전환으로 인한 가격 인하 여력이 더 크다. 실제 중형급 양조장인 제주맥주는 최근 맥주 출고가를 평균 20% 내렸다.
 
종량세 시대 초기에는 국산보다 수입 수제맥주가 초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수입맥주 중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수제맥주의 경우 국산 수제맥주와 마찬가지로 세 부담이 눈에 띄게 줄어든다. 수입 수제맥주는 국산에 비해 맥주 제조 역사가 깊고 재료를 현지해서 수급해 원가 경쟁력도 있으며 유통 기술과 노하우도 축적하고 있다. 특히 홈술·혼술 트렌드를 고려할 때 오랜 기간 유통할 수 있는 캔, 병으로 시판하는 수입 수제맥주가 초기 종량세 시장에서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대기업에서 수입하는 수제맥주를 중심으로 3캔 1만원, 4캔 1만원 마케팅이 시작됐다.
 
수입 수제맥주를 통해 소비자들의 입맛이 올라가고 좋은 맥주를 찾을 수 있는 심미안이 갖춰지는 동안 국산 수제맥주들의 질이 올라가고 캔, 병 유통 기반이 마련되면서 소비자들이 신선한 국산 수제맥주에까지 눈을 뜨게 될 것이다.
 
맥주 생산자, 도매상, 소매업자들이 세금 하락분만큼 가격을 인하할 것인가는 또다른 문제다. 또 가격이 1000원, 2000원 내려간다고 해서 당장 소비자들이 수제맥주를 집어들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제맥주 업계에 있어 맥주 종가세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다시 한 번 시장에서 수제맥주가 회자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다. 소규모 양조장들에 마케팅 여력이 생겨 각종 할인행사를 기획하고, 원가와 관계없이 좋은 재료를 넣어 더 좋은 맥주를 만들면서 시장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느냐가 종량세 전환 국면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지난 2014년 소규모 양조장 맥주의 외부유통이 허용되면서 양조장, 수제맥주 전문점, 보틀숍이 급격히 늘어났다. 미디어에서 수제맥주가 자주 언급됐고 대기업과 벤처캐피털이 2~3년 새 수백 억 원을 수제맥주 시장에 투입했다. 모두가 수제맥주 시장에 대한 희망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2017년 이후 수제맥주라는 키워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투자 건수나 금액 역시 크게 줄었다. 대규모 투자를 받았던 양조장이 문을 닫기도 하고 많은 수제맥주 전문점과 보틀숍이 사라지면서 침체된 분위기다. 수제맥주 업계가 종량세 개편이라는 불쏘시개를 간절히 바랐던 이유다.
 
자료 기획재정부. [중앙포토]

자료 기획재정부. [중앙포토]

 
사실 맥주 종량세 전환은 수제맥주 업계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맥주 대기업들이 수입 맥주와 조세 역차별을 주장하고 나오면서 맥주의 종량세 전환이 탄력을 받았다. 그동안 국산 맥주는 출고가를 과세표준으로 해 세금을 매기는 반면 수입 맥주는 수입신고가격(보험료·운임 포함 가격과 관세)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해왔다.
 
수입맥주는 국산 맥주와 달리 마케팅 비용 등은 과세 대상에 제외돼 그만큼 세금 부담을 덜 수 있다. 과세표준의 불균형으로 인해 수입맥주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으며 이런 불균형을 개선해야 국산 맥주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게 대기업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 논리가 조세당국에 받아들여지면서 주세법 개정이 가능했다.
 
실제 조세재정연구원의 종량세 도입 관련 연구 결과 역시 이런 역차별을 개선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여기에 맥주 대기업들은 밸러스트 포인트, 브루독, 구스 아일랜드 등과 같은 해외 수제맥주 역시 수입하고 있기 때문에 종량세 개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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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지혜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필진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맥주는 짝으로 쌓아놓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살고 있는 맥주 덕후.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시겠다는 사심으로 맥주 콘텐츠 기업 비플랫(Beplat)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 스타일, 한국의 수제맥주,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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