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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아버지로 태어나지 않았다, 그저 남성일 뿐

중앙일보 2020.01.02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51)

인간은 누구나 한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신화와 종교에서도 그 출발은 가족이다. [사진 pxhere]

인간은 누구나 한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신화와 종교에서도 그 출발은 가족이다. [사진 pxhere]

 
가족
배우지 않아도 우리는
아들이고 딸이 되던데
 
열 달 말미를 얻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설렘과 두려움이 씨름을 하고
죽음과 맞바꾼 아이의 울음을 듣고
돌연히 생의 모습을 맛보아
무시로
제 얼굴 내려놓을 줄 아는 어머니
선승
 
아버지로 태어나지 않아
수시로
배워야 할 걸로 가로막히는 학승
 
벽을 넘어서는 건
넝쿨처럼 가시처럼 얽혀도
여백을 끝끝내 놓치지 않는 가슴
 
해설
연말연시가 되면 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보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한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신화와 종교에서도 그 출발은 가족이다. 인간이며 신이신 예수도 구유에 누워 성가정을 통해 세상으로 들어오셨다.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 갓난아기로 태어난 건 낮아짐을 상징함과 동시에 희망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예수의 탄생일은 동짓날이다.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해가 기운을 회복하여 점차 낮이 길어지는 날이다. 그래서 동지가 낀 연말연시엔 모두 가족을 생각하게 되고 희망을 노래한다.
 
자연의 현상이든 신의 섭리라 말하든 태아를 밴 쪽이 어머니다. 인간은 체험을 통해 깨달아지는 게 있다. 어머니는 아이를 배고, 배 아파 낳는 체험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모습에 동참하게 된다. 그 체험은 나와 아기가 하나였다는 것이며 그 체험을 통해 결국 나와 타자는 하나라는 깨달음을 수긍하게 된다.
 
어머니는 아이를 배고, 배 아파 낳는 체험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모습에 동참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어머니는 아이를 배고, 배 아파 낳는 체험을 통해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의 모습에 동참하게 된다. [사진 pixabay]

 
어머니가 되는 과정은 모든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임’이란 진리를 몸소 실천하는 과정이다. 며칠 전에 입적하신 적명스님은 평소에 선의 진리에 이르는 길을 ‘기꺼이 받아들임’이라 가르쳤다. 상대가 아무리 지독한 악인이라도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 보라 했다. 내가 착해지면 그도 착해진다고 말했다.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게 깨달음이라 했다.
 
이렇게 여성은 아이를 통해 어머니가 된다. 그러나 남자는 다르다. 아버지로 태어나지 않고 남성으로 태어났을 뿐이다. 남자는 저절로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 자신과 남에게 벌이는 실수와 상처를 통해 아버지로 조금씩 성장한다. 자신이 저질러 논 실수와 상처에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이룰 때라야 비로소 아버지가 된다.
 
성경에서도 예수의 양부 요셉의 일화는 제한적이다. 그도 아버지로 태어나지 못한 셈이다. 그럼에도 꿈을 통해 어떤 사태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지녔으며, 약혼녀의 허물을 알고서도 감쌀 줄 아는 넉넉함과 생활의 고난을 묵묵히 견디면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 인물로 나타난다. 한 마디로 생의 고비를 통찰력으로 넘어서되 기꺼이 조연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대개 성경의 인물은 어떤 상징성이 있다. 구약에서 나오는 요셉은 막내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형들에게 구박을 받았다. 그러곤 계략에 걸려 구덩이 내던져져 생이별이라는 죽음을 체험한다. 대상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요셉은 이방인의 땅 이집트에서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한계를 아는 인물로 성장했다. 요셉은 꿈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통찰하였으며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다는 병적 콤플렉스를 신중함과 인내를 통해 극복할 수 있었다. 고향에 기근이 들어 이집트에 도움을 청하는 형들을 만난 요셉은 자신의 삶이 어떤 섭리의 한 과정이었다고 깨닫는다. 그러곤 형들을 용서하게 된다. 비로소 자신과도 화해를 이룩하였다.
 
가족은 받아들임의 교육 현장이다. 너무 가깝기에 상처를 입기도 쉽다. 가족에게 필요한 덕목은 여백과 온유함이다. [사진 pixabay]

가족은 받아들임의 교육 현장이다. 너무 가깝기에 상처를 입기도 쉽다. 가족에게 필요한 덕목은 여백과 온유함이다. [사진 pixabay]

 
심리학에서 요셉 콤플렉스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을 구하다가 형제들에게 버림받는 상황을 말한다. 자신의 결핍을 타자를 통해 메우려다가 실패한 ‘비교 열등감’이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요셉 콤플렉스가 있다. 성경은 그 열등감을 건강하게 해소하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것은 자기의 삶을 긴 호흡의 섭리로 보아 ‘기꺼이 받아들임’이다.
 
가족은 받아들임의 교육 현장이다. 너무 가깝기에 상처를 입기도 쉽다. 일일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지 하고 만심하다가 일을 그르치기 쉽다. 가깝기에 예의를 차리지 않다가 격의를 놓치고 만다.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다가 타인의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면서 자유를 제한한다.
 
가족에게 필요한 덕목은 여백과 온유함이다. 온유함이 무엇인가. 故 차동엽신부는 이렇게 말했다. “온유한가, 아닌가. 그건 식당에 가보면 안다. ‘뭘 드실래요?’ 할 때 ‘아무거나’하는 건 우유부단한 거다. 온유한 사람은 ‘오늘은 네가 시키는 걸 먹어볼게’라고 한다. 나의 자유의지를 양보하고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는 거다. 가장 성숙한 사랑이 뭔가. 그건 상대방에게 자유의지를 주는 거다.”
 
가족에게 사랑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고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숨 쉴 여백과 온유함일 것이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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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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