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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를 가다, 청바지에 스니커즈 신은 여자친구와

중앙일보 2020.01.02 09:20

[더,오래]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13)

 

3개월여 '오페라 산책' 칼럼을 꾸준히 보아온 열혈 독자 동화씨는 사랑과 욕망, 본능을 표현하고 있는 오페라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실제로 공연장에서 오페라를 보고 싶은 욕구도 생겼답니다. 넥타이 매고 정장으로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청바지입고 운동화 신고 편한 복장으로 가도 된다는 내용을 읽고 용기를 냈습니다. 오페라와 관련된 여러 정보를 담고 있는 동화씨의 ‘오페라 관람기’를 따라가 봅니다. 

 
칼럼을 통해 오페라에 어느정도 친숙해진 동화는 공연장에서 직접 오페라를 보고 싶어졌다. 그는 퇴근하면서 여친 오라에게 전화를 했다. 
“응, 자기야 왜? 퇴근했어?” 
그녀는 냉큼 전화를 받았다.
“응, 넌?”
“조금 남았는데, 금방 정리하고 나가야지. 근데, 왜?”
“우리 주말에 오페라 볼까?”
“오페라? 클래식도 안 친한 우리 왕자님이 웬일로?”
은근히 비꼬는 말투에 조금 빈정 상했지만 그녀가 오페라를 잘 알기에 참고 얘기했다.
“클래식은 연주 끝날 때까지 너무 엄숙하잖아. 오페라는 연기도 하고, 수시로 박수도 맘껏 칠 수 있으니 좀 더 맘 편할 것 같아서, 히히”
그녀가 동화의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 
“그렇긴 하지, 근데 너 오페라 모르잖아? 아리아를 돼지 멱따는 소리 같다고 하고…”
 
무시하는 듯한 그녀의 말에 다소 욱한 마음이 든 동화는
“야, 나도 열린음악회에서 아리아 들어봤거든? 내가 잘 모르니까 잘아는 네가 알려주면 되잖아. 아, 빨리 말해. 같이 갈거야, 안 갈거야?”
그가 맘 상한 것을 눈치 챈 오라는 그를 달래듯이 
“아, 알았어 같이 가! 내가 공연현황 살펴보고 예매해줄게”
‘역시, 우리 오라는 센스쟁이야’ 그는 기분이 금새 좋아졌다.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유쾌·상쾌하다.
공연장 앞에서 주말에 만난 오라는 진한 청바지에 빨간색 스니커즈를 신고 나왔다. 키가 그리 크지 않은데도 롱다리를 연출하는 그녀의 패션감각에 그는 늘 감탄하곤 한다. 오늘 공연은 푸치니의 〈투란도트〉라는 작품인데,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웬만한 공연은 조회할 수 있고 각종 할인도 많다고 했다. 


생전에〈투란도트〉의 아리아를 사랑한 가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사진 한형철]

생전에〈투란도트〉의 아리아를 사랑한 가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사진 한형철]

 
여유 있게 한 시간 전에 도착해서 예매한 티켓을 찾고 팜플렛도 구한 뒤 그녀와 함께 카페에 앉았다.
“오페라 공연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어…” 오라가 나의 궁금증을 채워주려는 듯 설명을 시작했다.
“유명한 아리아만 골라 노래하는 ‘갈라 콘서트’, 무대장치 없이 오케스트라와 가수가 무대 위에서 한 작품을 공연하는 ‘콘서트 오페라’. 오늘 공연은 무대장치랑 의상까지 모두 갖춘 정식 오페라야!”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잘 알아들었냐는 표정으로. 그런 그녀의 입가에 카페라테 거품이 나뭇가지 위의 눈처럼 내려앉았다.
“에구, 잘 알겠고. 근데 많이도 묻었네” 하며 그녀의 입술을 쓱 핥아 주었다.
"아, 뭐야~ 사람들도 있는데…”하며 눈을 흘기는 그녀의 볼이 발그레졌다. 그는 그런 그녀가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팜플렛을 보니 오늘 공연의 지휘자와 출연하는 가수 등 정보가 가득했다. 동화가 작품에 대해 잘 모른다면 일찍 와서 팜플렛만 보아도 되겠다고 하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그래도 미리 주인공 이름은 알아둬야 해. 안 그럼, 내용을 자막으로 보여줘도 헷갈리거든. 이름을 알면 등장인물들의 관계나 스토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아~ 그렇구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말을 이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건 오페라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를 ‘유튜브’에서 미리 들어보는 거야. 오페라 보다가 내가 들어본 노래가 나오면 엄청 반갑거든. ‘아~ 이 작품에 나오는 거였구나’하고 말이야”
 
 
“그래서 나에게 미리 ‘들어주세요, 왕자님’’을 찾아보라고 한 거였구나. 영화〈보헤미안 랩소디〉에 나왔다는 아리아!” 나는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야한 가운을 입고 헤어진 애인에게 전화하는 장면에 애절하게 흐르던 그 아리아를 기억해냈다. 가사는 몰라도,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는 선율이 귀에 남았었다.
 

“맞아. 아리아 하나만 알아도 오페라 보는 재미가 훨씬 업 되거든. 묘한 만족감도 있고”
“묘한 만족감?”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아 눈을 꿈뻑이며 물었다.
“동화씨, 사람들이 왜 비싼 외제차 타는 줄 알아? 승차감이 국산차보다 좋아서? 아니거든요~ 외제차는 ‘하차감’이 남달라서 타는거래. 차에서 내릴 때의 묘~한, 그거 있잖아!” 오라가 농담처럼 깔깔거리며 답했다.
“아~ 그렇구나!” 그도 따라 웃었다. 공연시작 10분 전에 여유 있게 좌석에 앉았다.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마라’를 불러 예능 경연대회 우승한 폴 포츠. [중앙포토]

아리아 ‘아무도 잠들지 마라’를 불러 예능 경연대회 우승한 폴 포츠. [중앙포토]

 
지휘자가 입장하고 막이 올랐다. 투란도트 공주에게 반한 칼라프 왕자가 수수께끼에 도전한다. 시녀의 희생 뒤에야 차디찬 얼음공주가 왕자의 열정적인 키스에 녹아 내리고, 결국 진정한 사랑을 이룬다는 스토리였다. 처음 보지만 중국적인 선율과 리듬, 아름다운 아리아가 제법 재미있는 공연이었다.

클래식 연주회와 달리 가수들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남자가수가 멋진 노래를 부르면 ‘부라보~’, 여자가수에게는 ‘부라바~’라고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오라가 알려줬지만, 난 쑥쓰러워서 그냥 “야호~”라고 소리쳤다. 멋진 노래였다는 환호가 가수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공연이 끝나자 전 출연진이 나와서 커튼콜(인사)을 하였다. 마지막에는 여주인공이 지휘자를 무대로 모시고 나왔는데, 세 시간 가까이 좁은 오케스트라피트에서 고생한 연주자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라는 생각이 들어 더욱 힘차게 박수를 쳤다.
공연장을 나오니 벌써 어둠이 깔려있었다. 둘은 조금 추웠지만 주변 공원의 벤치에 앉았다. 아직 오페라의 여운이 남았는지 오라가 입을 열었다.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승리를 노래하던 칼라프 왕자의 아리아, 참 시원하게 부르지?”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하녀 ‘류’를 떠올렸다.
“맞아, 왕자가 자신에게 지어준 단 한번의 미소를 가슴에 안고 죽는 마음은 어떤 건지, 으읍...” 오라의 달콤한 입술이 동화의 말을 끊었다. 그는 오라를 안고 뜨거운 키스를 나누었다. 마치 칼라프와 투란도트 처럼.
마침내 왕자의 이름을 알아 낸 공주의 마지막 노래가, 한겨울을 녹여버린 그들의 뜨거운 몸짓 위로 울려 퍼졌다.
“왕자여, 그대의 이름은 사랑!!”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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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형철 한형철 오페라 해설가 필진

[한형철의 운동화 신고 오페라 산책] 평생 다닌 직장을 명퇴하고, 100세 시대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를 고민 또 고민했다.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는 등 좌충우돌하다가,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지금은 취미였던 오페라를 해설하며 제2의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 종합예술인 오페라에는 우리네 인생의 희로애락이 담겨있다. 일체의 편견 없이 청바지 입고 오페라 산책에 나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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