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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은 택시기사 해방절?…'사납금 폐지' 첫날 현장에선

중앙일보 2020.01.02 07:00
2020년 1월 1일은 사납금이 사라진 법인택시 기사 해방절이다. 이론적으로는.
 
사납금 폐지는 '타다' 등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에 반대한 국토교통부가 ‘택시업체 이익만 보호하느냐’는 비판을 받자 내놓은 반박 논거였다. 
 
사납금은 법인택시 기사가 1일 운행당 회사에 내는 고정 금액이다. 사납금을 채운 후부터 기사의 수입이고, 채우지 못하면 급여가 삭감된다. 사납금제는 법인택시 기사를 ‘택시 노예’로 만들고 서비스 품질을 낮추는 원흉으로 지적받아 왔다. 하루 12만~15만원이 넘는 높은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기사가 과속운전을 하고 승차거부를 한다는 얘기다. 지난 8월 통과된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택시기사의 매출 전액을 회사가 수거하고 기사에게 급여를 주는 ‘전액관리제’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시행 첫날 현장은 우왕좌왕했다.   
서울 도심에서 운행 중인 택시(아래)와 ‘타다’ 차량. [뉴스1]

서울 도심에서 운행 중인 택시(아래)와 ‘타다’ 차량. [뉴스1]

 

① 택시회사 : ‘보류’ 혹은 ‘꼼수

택시회사는 이미 한 차례 꼼수를 들켰다.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이 공개한 서울 지역 택시 임금협약에 따르면 업체들은 전액관리제를 도입하며 기본급을 40만~50만원 인상하고는 사납금을 ‘기준 수입금(기준금)’으로 이름만 바꿔 하루당 2만~5만원 올렸다. 월별로 따져보면, 월급 인상액보다 기준금 인상액이 25만~30만원 더 많다. ‘기준금’을 넘긴 매출에 대해서는 60%만 기사 몫이다. 유사 사납금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지난달 국토부는 뒤늦게 업체에 공문을 보내 ‘변형된 사납금 제도 불가’를 통보했다. 1일 서울 지역 택시회사들에게 이번달 급여체계를 묻자 상당수가 “노사 협의중”이라고 답했다.
 
1일 기사들을 통해 취재한 결과 일부 법인택시는 기사에게 ‘급여체계가 미정이니 일단 매출 전액을 입금하라’고 통보했고, 일부 회사는 기사와 별도의 근로계약서를 쓰고 유사 사납금제를 운영하는 중이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② 택시 기사 : ‘수입 줄면 어쩌지’ 갸우뚱 

사납금제를 없앤다고 기사가 태업할 수는 없다. ‘택시 운행정보 관리 시스템(TIMS)’으로 개별 택시의 요금(현금 포함), 승하차, 현 위치를 회사가 실시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은 지자체 예산으로 도입해 서울·부산·대전 등의 모든 법인택시에 설치됐으며 확산 추세다.
 
관건은 현재 회사가 제시하는 방식의 전액관리제가 택시기사 살림에 도움이 되냐는 거다.  
지난달 한국노총 소속 전국택시산업노동조합 부산본부가 소속 택시기사에게 설문한 결과, 89%(4969명 중 4429명)가 ‘사납금 유지’를 택했다. 전액관리제를 택한 이는 11%에 그쳤다. 이런 식의 전액관리제를 받아들이면 기사 수입은 도리어 줄어들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1일 만난 서울의 한 택시기사는 “많이 뛰는 기사에겐 (전액관리제가) 메리트가 없다”고 했다. 다른 기사는 “차라리 사납금을 낮추고 수당을 조정하는 게 도움 된다”고 했다. 기본급이 오르면 세금과 4대 보험료 부담이 느는 것도 기사들이 우려하는 바다.
 

모빌리티 혁신의 2라운드, '기사 처우' 

지난 1~2년간 모빌리티 규제 논쟁의 쟁점은 '소비자 권익'이었다. 기존의 택시가 소비자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신규 사업자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정치권과 국토부는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소비자 만족보단)택시기사의 생존권이 더 중하다’는 주장이 힘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8년말부터 올해 5월까지 카카오 카풀과 타다에 반대하는 택시기사 4명이 분신했을 때 이는 정점에 달했다. 
 
올해 모빌리티 2라운드 키워드는 ‘기사 처우’가 될 전망이다. 플랫폼 산업이 공격받는 지점은 ‘일자리’다. 미국의 우버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플랫폼 기술'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타다의 드라이버는 개인사업자와 도급업체를 통해 파견받은 파견 근로자로 이뤄져있다. 노동계는 파견근로법을 타다가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타다 측은 "현행법상 타다는 운전자를 직접 고용할 수 없어 파견을 받거나 프리랜서를 (승객에게)알선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버나 타다 같은 기술 기업들이 혁신이란 미명으로 전통 일자리의 기반을 허문다는 비판도 여전하다. 그런데 만약 기존 사업자가 이미 ‘질낮은 일자리’만 제공하고 있다면? 비판의 날이 무뎌질 수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0년간 법인택시 감소 5%뿐인데…기사 26% 급감

최근 10년간 전국의 법인택시 기사 수는 26.3% 감소했다(2009년 13만9725명 → 2019년 10만2960명). 같은 기간 법인택시 차량 감소는 4.8%에 불과하다(9만1737대 → 8만7372대). 택시회사 차량은 남아 도는데 기사를 하겠다는 사람이 적어진 것이다. 이는 택시 기사의 열악한 처우와 노동 환경을 방증한다. 기존 택시업계의 약점이다. 이를 파고들어, 타다는 자사 홈페이지에 ‘드라이버 인터뷰’를 연재하며 이들의 높은 업무 만족도를 내세우고 있다. 
 

'국토부는 혁신 편' 입증할 시간  

국토부는 '혁신은 새로운 법 테두리 안에서도 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그 새로운 법은 승객 만족도와 10만 법인택시 기사의 처우를 혁신적으로 올릴 수 있을까? 
 
지난달 국토부 기자간담회에서 김상도 종합교통정책관은“(사납금이 폐지되면 택시업계도 이제) 쉽게 하는 사업은 없어진다”며 “이번 제도는 택시의 현실 안주가 아닌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 보호가 ‘택시회사 사장 보호’가 아님을 입증할 국토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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