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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중앙일보 논설위원,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김주영 "정부 노동정책 과속···비정규직 제로? 큰일났다 생각"

중앙일보 2020.01.02 06:44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정부정책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위상, 민주노총과의 관계, 산업현장의 노동문제 등에 대해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경록 기자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정부정책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위상, 민주노총과의 관계, 산업현장의 노동문제 등에 대해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경록 기자

한국노총의 역사는 유구하다. 남로당 계열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에 대항해 1946년 3월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대한노총)으로 출범한 이래 73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해 말 시련을 맞았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민주노총에 제1노총의 지위를 내줬다. 72년 만이다. 정부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같은 정책이 민주노총의 세를 불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국노총 내부에선 정부를 성토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김기찬의 인프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인터뷰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을 만났다. 노조조직률이 발표되기 전인 지난달 20일 집무실에서, 이어 노조조직률이 발표된 뒤 입장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27일 점심을 같이했다. 그는 이달 31일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20일 만났을 때다. 한국노총은 현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후보 시절 정책협약도 체결했다. 그 주역은 김 위원장이었다. 그런 그가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뜻밖의 얘기를 했다.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을 평가한다면.
"여러 수사(修辭)가 만들어지고, 프레임화했다. 한데 정부 정책이 제대로 굴러갔는지는 의문이다. 정책이 과속 페달을 밟아 노동존중이 흐트러지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다. 문 대통령이 집권 초 인천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했을 때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정부 지지자가 한꺼번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봤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선언 한마디로 쉽게 풀 문제가 아니어서다. 차근차근 가야 하는데 정부가 너무 앞질러 갔다. 사회적 대화로 풀어야 할 사안마다 너무 내달렸다, 최저임금도, 근로시간 단축도 그런 기류 속에 있었다. 뒤늦게 보완한다고 하니 노동계에선 '줬다 뺏는다'고 할 수밖에 없다. 기대치만 높이는 탓에 해법 찾기가 어려워졌다. 단계적으로 가야 하는데 (정부)혼자 내달리니…."
 
현 정부 출범 초 노사정 대표자회의 등을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었나. (김 위원장은 2017년 9월 노사정 대표가 참여하는 8자 대표자회의를 시작으로 3단계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그렇다. 3단계로 차근차근 풀어가자는, 과속 방지용 제안이었다. 우선 대표자회의를 열어, 안건을 추리고, 노사정이 모두 머리를 맞대 작은 것부터 합의해서 신뢰를 쌓고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보자는 뜻이었다. 노동의 문제는 먹고 사는 것과 직결된다. 그래서 풀기 어렵다. 한꺼번에 풀리지도 않는다. 현 정부가 진전된 상황을 만든 건 인정하지만 노사정이 맞물려 있다는 걸 놓치고 있다. 어느 한쪽으로 가서는 곤란하다."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사회적 대화와 가치 공감에 대해 역설했다. 김경록 기자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사회적 대화와 가치 공감에 대해 역설했다. 김경록 기자

 
재임 동안 사회적 대화의 가치를 역설했다.
"'되지도 않는 사회적 대화를 왜 하느냐'는 비아냥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투쟁보다 대화로 조금씩 양보하면 길이 보인다. 2002년 전력 민영화가 추진될 당시 대화로 전력의 공공성을 확보한 경험이 있다. 그게 답이라고 생각했다. 다 만족할 수는 없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의 트라우마가 노조에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대화하면 어용이고, 노조는 투쟁을 통해 쟁취를 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맞는 건 아니다. 그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 100년을 내다보는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를 끝내 거부했다.
"재임 중 가장 아픈 부분이다. 근로시간 단축 합의를 두고 양 노총 간 갈등도 있었다. 그들(민주노총)의 운동방식이 있는 것이고, 한국노총은 '국민과 함께'라는 우리의 정신을 지켜야 한다. 기업 단위에선 합의가 되는데, 국가 단위에선 왜 테이블에 논점을 올려놓고 논의를 못 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노사문제를 법원이나 검찰 등 사법기관으로 들고 가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규율해달라고 요청하는 노사는 정도를 벗어난 것이다. 노사문제에 대해 '법대로'라고 얘기하면 곤란하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사는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자율성에 기초해야 한다. 산업현장에도 낭만과 정(情)이 있어야 한다. 기업은 생존경쟁을 위해, 노동계는 일자리 유지를 위해 몸부림친다. 이게 과하게 충돌한다. 갈수록 노무관리가 중요해질 것이다."
 
삼성전자에 한국노총 산하 노조가 설립됐다.
"삼성전자에 노조가 설립된 걸 두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는 걸 안다. 그런 걱정은 접어도 좋다. 웃고픈 이야기지만 야식으로 통닭에 주스가 나오다가 노조가 설립된 뒤 직원의 요구를 반영해 통닭에 콜라가 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노사가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작지만 큰 걸음이다."
 
일선 산업현장에서 두 노총의 조직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노조가 새로 생기는 건 눌려 있던 요구가 분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노 경쟁은 제로섬 게임이 된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 충주에선 시급 10원 올리는 걸 두고 조합원이 노조를 갈아탄다. 이건 노조의 본래 기능과 동떨어진 것이다. 그게 '쟁취'로 포장되는 게 안타깝다. 기업 안에서 선명성 경쟁을 하면 기업도, 노동자도 모두 어려워진다. 중앙 단위에서 노사 상생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무역분쟁 때 정부도 경영계도 우왕좌왕했다. 한데 김 위원장은 일본 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連合)를 찾아갔다. 결국 '일본의 규제는 결국 양국 노동자에 피해를 준다'며 해결을 촉구하는 합의문을 채택해 세간을 놀라게 했다.
"무역분쟁은 노동자의 고용문제와 직결된다. 렌고는 정부와 교감 하에 움직이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인지 회담을 세 차례나 요청했지만 답을 하지 않더라. 그러다 극적으로 회담이 성사됐다. 국가 간 무역분쟁에 대해 당사국 노동단체가 합의했다는 건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국제노총에서도 이 점을 높이 샀다. 이런 작업은 앞으로도 이어져야 한다. 눈앞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를 봐야 한다."
 
정부가 올해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노동개혁을 화두로 꺼냈다.
"노동개혁은 대체로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형태로 가기 때문에 저항에 부딪힌다.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본다. 그보다 노사가 각자 현재 위치를 알고 협력적 모델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국가적으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 실직해도 가장으로서의 당당함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학원비 끊고, 보험과 적금을 깨고, 그래도 재취업이 안 되면 가장으로서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 그래서 극단적 선택도 나오는 것이다. 일자리를 어떻게 하면 지킬지, 설령 실직해도 신속히 재취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우선이다. 직업훈련시스템의 획기적 개조와 고용서비스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나도 자격증(프리젠테이션 전문가)을 땄는데, 이게 쓸 수 있는 자격증인지 의문이다. 이런 자격증이 많다. 결국 국민이 낸 돈(훈련비)만 낭비하는 것 아니겠는가."
 
기업 현장을 많이 다녔다.
"노조 전임자 문제와 같은 노조 운영과 관련된 문제도 파악하고, 정책으로 인한 애로 사항을 점검하는 차원이었다. 예컨대 강원도 어느 기업에선 근로시간이 단축된 뒤 일하는 시간이 줄면서 당장 임금은 떨어지고, 그렇다고 채용 여력도 없다고 노조가 하소연하더라. 이런 걸 파악하는 게 어용인가. 아니다. 없는 사람들의 곤란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노사정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경제가 어렵다. 노조가 생산성 향상에 나서는 등 노조의 협조와 역할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생산성 향상은 슬로건으로 안 된다. 기업 안에서 노사가 의견을 조율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노조가 회사를 도외시하고 내 것을 챙기겠다며 일방적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 내가 아는 어느 회사는 경영이 어려워지자 노사가 합의해서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다. 상여금도 반납하는 안을 마련했다. 대신 구조조정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이 안을 노조가 투표에 부쳤더니 100% 찬성했다. 몸담은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는 노조는 없다. 회사가 투명하게 경영사정을 알리고 심금을 터놓고 협조를 구하는 게 중요하다. 노동이사제도 그런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노조에서 추천하는 전문가를 이사로 영입한다고, 한 명이 뭘 할 수 있겠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보면 된다."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노조조직률이 발표되면서 제1노총의 지위를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27일 담담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는 "두 노총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면 공멸한다"며 한국노총의 합리적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노조조직률이 발표되면서 제1노총의 지위를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27일 담담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는 "두 노총이 선명성 경쟁을 벌이면 공멸한다"며 한국노총의 합리적 노동운동을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노조조직률이 발표된 이틀 뒤(27일) 김 위원장을 다시 만났다. 의외로 그는 담담했다.
 
제1노총 지위를 72년 만에 내려놨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제1노총이 빠져 대표성 논란마저 인다. 앞으로 노사가 어떻게 변해야 할까.
"민주노총이 없다고 경사노위를 부정하면 안 된다. 사회적 대화는 시대 소명이다.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와 사회적 책임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경영계 대표인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변화도 절실한 시점 아닌가 싶다. 현 정부 출범 초 경총이 고사 위기에 몰렸을 때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제안하면서 사회적 파트너로서의 위상을 세워줬다. 한데 그 뒤 변화가 없다. 경총 내부 문제가 복잡한 것으로 안다. 이젠 경총이 제안도 하고, 경제 주체 누구나 수용 가능한 합리적 정책도 내야 한다. 싸움의 상대로 노조를 대하면 사회적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볼 수 없고, 파트너 대접을 못 받는다."
 
가세(家勢)가 기울어도 가장은 가장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두 노총의 조직경쟁이 격화할 것이란 우려도 큰 게 사실이다.
"민주노총이 1노총이 됐다고 우리도 선명성 경쟁을 할 것으로 우려하는데, 오산이다. 그렇게 되면 공멸한다. 우리는 정책 노총으로서 국민과 함께 가는 길을 뚜벅뚜벅 갈 것이다. 그건 바뀌지 않을 것이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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