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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에 쪽지 봐라"…황교안도 몰랐던 김도읍 불출마

중앙일보 2020.01.02 05:00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최측근인 김도읍 의원(재선)이 느닷없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그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31일 저녁 기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총선 압승을 위한 당의 쇄신에 밀알이 되고자 한다"며 "(21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검사 출신이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당 간사인 김 의원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막지 못했다는 것을 불출마 이유로 들었다. 그는 "내년 총선 압승으로 (공수처법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고 했다.
 

"저녁 7시에 쪽지 봐라"…황교안도 몰랐다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1월 21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전 김도읍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지난해 11월 21일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전 김도읍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의원실 소속 보좌진도 당일 오후 5시쯤 알게 됐다고 한다. 한 보좌관이 부산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떠나는 김 의원을 배웅하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김 의원이 쪽지를 하나 건넸다고 한다. 김 의원은 보좌관에게 "저녁 7시가 되면 쪽지를 열어보라"고 당부한 뒤 "쪽지에 적힌 내용을 기자들에게 그대로 발송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후 의원실 직원들이 거듭 만류했지만 김 의원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불출마 선언이 담긴 문자는 이날 오후 7시 58분에 발송됐다.
 
김 의원은 황 대표에게도 불출마 소식을 미리 전하지 않았다. 소식을 전해 들은 황 대표는 "(불출마를) 알았으면 말릴 걸 알고 나에게 미리 말을 안 한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황 대표는 1일 기자 오찬 간담회에서 "(김 의원의 불출마를) 언제 전해 들었느냐"는 질문에 "본인의 뜻을 존중했다. (언제 들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답했다. 김 의원과 가깝게 지낸 한 초선 의원은 "소식을 듣자마자 놀라 전화도 하고 문자메시지까지 남겨 취소를 권유했지만,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 답이 없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최근 "정치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는 취지의 말을 종종 했다. 선거법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 중이던 지난달 24일 밤, 국회의사당 7층 하늘정원에서 기자와 마주친 그는 "배지를 달고서 앞만 보고 열심히 일했지만, 보람이 없다"며 "국회의원을 계속할 욕심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불출마 둘러싸고 해석 분분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 하고 있다. [뉴스1]

김도읍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추미애 법무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질의 하고 있다. [뉴스1]

김 의원은 추경호 의원과 함께 황 대표의 '쌍두마차'로 불린다. 지난해 8월 황 대표의 두 번째 비서실장을 맡았다가 넉 달이 지난 지난달 초 "황 대표의 쇄신에 보탬이 되겠다"며 다른 당직자들과 함께 일괄 사퇴했다. 김 의원은 같은 달 원내대표 경선 당시엔 투표 전날 "김선동 의원(재선)이 되어야 하지 않겠냐"며 초재선 의원한테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이에 "황심(黃心)이 김선동한테 있는 거 아니냐"는 논란을 일으켰다. 
 
김 의원의 불출마를 둘러싼 해석은 다양하다. 그가 "쇄신의 밀알이 되겠다"고 밝힌 만큼 차기 총선을 앞둔 상태에서 황 대표 운신의 폭을 더욱 넓혀준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일종의 '읍참마속'처럼, 최측근의 불출마로 '황교안식 물갈이'의 명분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불출마 선언을 한 그가 곧 창당할 비례 위성정당으로 당적을 옮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위성정당의 경우 현역 의원이 대거 포함돼야 투표란의 앞 순위에 배치될 수 있다. 반면 선거법·공수처법 처리 과정에서 원내지도부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데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기정·한영익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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