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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의 시선] 문재인·시진핑 회담이 남긴 궁금증

중앙일보 2020.01.02 00:19 종합 28면 지면보기
예영준 논설위원

예영준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난달 23일 회담 발표문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이 든 건 2017년 12월 방중 때의 발언이 기억나서였다. 당시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시 주석께서 민주적인 리더십을 제시했다”고 추켜세웠다. 아무리 외교수사라고는 해도 1인 체제를 굳혀 ‘황제’란 말을 듣는 시 주석에게 ‘민주적’이란 수식어를 붙인 것은 너무 나간 발언이었다. 이튿날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에 비유하며 “한국은 작은 나라”라고 한 건 ‘사대 발언’으로 지금도 구설에 오른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진다”는 발언은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한 것에 가깝다.
 

‘운명공동체’ 실수인가 신념인가
외교결례 불구 시진핑 방한 발표
시기 조정에 4월 총선 고려없나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표현이 있었다. 회담 말미에 했다는 “한·중은 운명공동체임을 느끼게 된다”는 발언이 그랬다. 운명공동체는 숭고한 의미를 담은 보통명사지만 시진핑과 관련되면 의미가 달라진다. 시 주석이 집권 초기부터 주창해온 운명공동체란,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혁’이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연계해 새겨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를 21세기판 조공질서의 구축을 뜻하는 말로 의심한다. 그래서 시 주석 앞에서는 극도로 조심해서 사용해야 하는 말이다. 문 대통령이 이 말을 꺼낸 진의가 ‘실수’인지 ‘신념’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홍콩·위구르는 중국의 내정”이란 발언은 진상 자체가 아직 미스터리다. 청와대는 시 주석의 설명을 듣고 “잘 들었다”고 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문 대통령은 “잘 들었다”고 할 게 아니라 홍콩·위구르 인권 침해에 대한 우려를 밝혔어야 했다.  인민일보는 지금도 발표문 전문 가운데 “한국측은 홍콩이든 위구르든 모두 중국의 내정으로 인식한다”는 부분만 고딕체로 강조해 홈페이지에 띄워 놓고 있다. “우리가 없는 말 지어냈냐”는 식이다. 다시 살펴보니 “한국은 중대한 문제에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말도 적혀 있다. 도대체 무슨 대화가 오간 것일까.
 
또 하나의 의문은 시진핑 방한 문제다. 청와대 대변인은 “문 대통령의 초청에 시 주석이 적극 검토한다고 했다”고 브리핑했다. 그런데 회담 당일 중국측 발표문에는 일체의 언급이 없었다. 그러자 청와대 관계자가 회담 이틀 뒤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시진핑 주석의 내년 상반기 방한은 확정적”이라며 “방법과 시기는 조율중”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은 사드 문제의 적절한 처리를 요구했는데 문 대통령은 한한령(限韓令) 해제는 얘기조차 못꺼냈다”는 식의 비판이 이어지자 외교결례를 무릅쓰고 아직 조율중인 사안을 누설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중국이 생각하는 시진핑 방한 시기는 4월이다. 시 주석의 일본 국빈방문이 사실상 확정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에 맞춰 한국에 오겠다는 것이다. 시 주석은 “벚꽃 필 때 와 주시면 좋겠다”는 아베 신조 총리의 초청을 흔쾌히 수락한 상태다. 그런데 한국은 3월 방한을 희망한다고 한다. 일본 방문 길에 들르는 형식의 ‘패키지 순방’으로는 성에 차지 않으니 단독 일정으로 한국에 와 달라는 것이다. 일본은 일본대로 자기 나라를 국빈 방문하는 길에 한국을 끼워 넣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변수가 있으니 바로 4월 총선이다. 시 주석이 방한하면 한한령 해제 등의 선물 보따리를 갖고 올 가능성이 있다. 총선에 올인하고 있는 정부 여당에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패키지 순방’보다 ‘단독 방한’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문제는 그것이 호락호락 이뤄질 일이 아니라는 데 있다. 3월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 등이 있어 시 주석의 일정 조정이 쉽지 않다. 더구나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한 소식통이 “중국이 단독 방한을 받아들이는 대신 무슨 반대급부를 요구할지 모른다”고 한 건 괜한 걱정이 아니다.
 
벚꽃만 꽃이던가. 필자도 시 주석이 이왕 서울에 올 거라면 도쿄 가는 길에 들르기보다는 단독 방한으로 와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6년만에 이뤄지는 방한에 총선 셈법이 끼어들면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중국 지도자의 방한이 갖는 본질적 의미를 제쳐두고 화려한 보여주기 식의 이벤트로 흐를 위험이 있다. 잿밥에 군침이 돌아도 제사를 망치면 안된다. “내치에 실패하면 선거에 지는 것으로 그치지만, 외교에 실패하면 모두에게 죽음을 가져온다”고 말한 이는 존 F 케네디였다. 선거에 지면 모든 게 끝장이라며 나라 걱정보다 표 걱정이 앞선 사람들에겐 아무 의미 없는 말로 들리겠지만.
 
예영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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