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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의 문화탐색] 1970년, 한국 디자인이 태어난 해

중앙일보 2020.01.02 00:17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새마을운동은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지방장관회의를 통해서 ‘새마을 가꾸기’를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농촌부흥을 위한 국가정책으로 시작되었다. 1970년~1971년 정부는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시행하여 전국 3만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6포를 공급하고 마을 앞길 확장, 공동 빨래터·공동 우물 설치 등 마을 공동사업을 중점적으로 실시하였다.”(국가기록원 자료)
 

50년 맞은 새마을운동
수출 늘리려 디자인 진흥
국가 주도 수출품 가꾸기
한국 모던 디자인의 출발

올해 50주년이 되는 새마을운동의 출발은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었다. 새마을운동은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서로서로 도와서 땀 흘려서 일하고”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성공한 근대화 운동’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국가에 의한 ‘위로부터의 동원’으로서 박정희 체제의 통치 전략일 뿐이라는 관점도 있다.
 
어떤 관점으로 보든 간에 새마을운동이 한국 사회의 풍경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결정적인 사건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디자인을 사회적 풍경으로 이해하는 내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없다. 사회학자 김덕영은 새마을운동이 “한국 사회의 근대적 인상을 결정적으로 특징짓는 계기”가 됐으며 “공장사회의 출현으로 인한 획일성과 표준성의 미학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화석화되고 박제화된 전통문화”를 남겼다고 지적한다.(『환원 근대』)  경제학자 우석훈은 『직선들의 대한민국』에서 이명박의 청계천에서부터 ‘직선의 미학’이 시작된다고 했지만, 나는 그 기원이 새마을운동에 있다고 본다.
 
50년 전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모던 디자인의 출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새마을운동중앙회]

50년 전 시작된 새마을운동은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변화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 모던 디자인의 출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새마을운동중앙회]

“1970년에 들어서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 상품의 고급화를 위한 디자인과 포장 개선에 대단한 관심을 표명했다. 매월 청와대 수출진흥확대회의 석상에서 포장과 디자인의 개선을 지시했을 뿐 아니라, 수시로 관계기관을 방문해 격려했다 …. 1970년 설립된 한국수출디자인센터를 방문해 찬조금을 기부하기도 했고...”(김종균, 『한국의 디자인』)
 
한국수출디자인센터는 같은 해 한국포장기술협회, 한국수출품포장센터와 통합해 한국디자인포장센터로 재출범했다. 한국디자인포장센터는 몇 차례 개편을 거쳐 현재의 한국디자인진흥원(이하 진흥원)이 됐다. 그러니까 올해는 진흥원 설립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새마을운동과 진흥원이 같은 해에 출범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위의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흥원(의 전신)은 수출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국가가 설립한 디자인 진흥기관이다. 그리고 기관의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 목적은 수출품의 디자인과 포장 개선이었다. 그 결과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디자인과 포장은 동일시되고 서로 교환될 수 있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같은 논리로 새마을운동은 마을 포장이고 디자인은 수출품 가꾸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날 디자인 개발의 주체는 주로 기업이지 국가가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디자인이라는 말에서 새마을 가꾸기 사업의 시멘트 포대나 수출품 포장용 골판지 상자를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것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지금 한국에서 1960~70년대의 가발 수출이나 병아리 감별사로 해외 취업을 하던 시절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국 디자인이 그런 것들로부터 출발한 것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일상의 풍경이라는 점에서 보면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새마을운동을 진정한 한국적 모던 디자인의 출발이라고 본다.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힌 그것은 한편으론 분명 ‘전통의 대학살’이었지만, 또 달리 보면 ‘창조를 위한 (불가피한) 파괴’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앞서 예를 든 것처럼 한국의 디자인은 국가에 의해 ‘위로부터’ 만들어진 것이었고 서구와 같이 국가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시민사회로서의 디자인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새마을운동은 내게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운동을 넘어서 하나의 미학적 운동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렇게 해서 정초된 한국 사회의 풍경을 ‘새마을 모던’, 이를 뒷받침하는 미의식을 ‘새마을 미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내가 이제껏 만난 대한민국 공무원 중에서 새마을 미학을 벗어나는 미의식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아무튼 올해는 새마을운동 50주년이자 동시에 한국 디자인이 탄생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인 것이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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