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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1920년의 100년 뒤 미래에서

중앙일보 2020.01.02 00:15 종합 28면 지면보기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지난해는 여러모로 뜻 깊은 100주년이었다. 3·1 운동 100주년이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었다. 한국영화사도 100년을 맞았다. 올해는 다르다. 창간 100주년을 맞은 두 신문사가 1920년을 기념하는 게 두드러질 뿐이다. 그해 독립군의 봉오동·청산리 승리가 있었다곤 하지만 이것이 빌미가 돼 ‘경신참변’ 혹은 ‘간도대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 광복 100주년을 맞는 2045년까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한 세기 전 회고’가 계속될 것이다.
 
세계사적으론 어땠을까. 영문 위키피디아의 연표를 살피다 눈길이 꽂힌 게 뉴욕타임스(NYT)가 낸 ‘세기의 실수’다. 100년전 그해 1월 12일 NYT 1면엔 ‘로켓으로 달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 학계에서 관심을 모은 ‘다단계, 고성능 로켓’ 원리를 소개한 뒤 이를 통한 달 탐사 가능성을 폄하한 게 골자다. 다음날엔 사설을 통해 이 로켓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다면서 이를 제안한 로버트 고다드 클라크대 교수에게 “고교 수준 (과학) 지식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조롱까지 했다. NYT는 49년 뒤인 1969년 7월17일자 지면에 “당시 실수를 후회한다”며 정정 기사를 실었다. 우주왕복선 아폴로 11호 발사 다음날이었다.
 
노트북을 열며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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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엔 ‘로켓 배송’이란 표현까지 일상화됐지만 당시만 해도 로켓 발사가 넌센스로 들렸단 얘기다. 고다드 교수는 NYT 비판에 “모든 비전은 선구자가 이뤄내기 전까진 농담거리지만 일단 실현되면 상식이 된다”고 응수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연구에 열중했다. 1926년 액체연료로 추진되는 최초의 실험로켓을 시작으로 41년까지 고다드 연구팀이 쏘아올린 로켓은 총 34개에 달했다. 아폴로 11호를 비롯한 오늘날 대형우주로켓의 ‘원조’에 해당한다. 고다드 교수가 ‘로켓의 아버지’ ‘우주시대의 개척자’로 불리는 이유다.
 
역사는 무에서 유로 점프하지 않는다. 100년 단위로 끊어 기념하는 건 후세 사람들의 편의일 뿐이다. 고다드 교수의 로켓 연구는 10대 소년 시절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우주전쟁』에서 영감을 받아 비롯됐다. 그의 비전을 끈질기게 이어간 사람들이 있어 아폴로 11호가 가능했다.
 
100년전 조선 반도에서 해방이란 ‘로켓 발사’ 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1920년에 경천동지할 일은 없었더라도 월간지 ‘개벽’ 창간 등 작고 큰 일은 숱하게 벌어졌다. 그런 비전이 쌓여 25년 뒤 광복이 가능했을 터다. 해방 100주년이 되는 2045년까지 25년간 대한민국은 어떤 비전을 뿌리내릴 수 있을까. 2120년에 돌아보는 2020년 한반도는 어떻게 기억될까.
 
강혜란 대중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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