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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가 있는 아침] 다정가 多情歌

중앙일보 2020.01.02 00:06 종합 27면 지면보기
다정가 多情歌
이조년 (1269-1343)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양 하여 잠못 이뤄 하노라
-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
 
사랑하는 마음으로 여는 새해 
은하수가 흐르는 자정 무렵, 달빛에 비친 배꽃이 희다. 목에서 피가 나도록 슬피 우는 두견새가 나의 이 한 가닥 연심(戀心)을 알겠느냐마는 이렇게 잠 못 들어 하니 다정도 병인가 한다.
 
고려 충혜왕 때의 문신 이조년(李兆年)이 쓴 연시다. 시조의 초창기 때 사대부가 이런 사랑의 시를 썼다는 것이 놀랍다. 그야말로 연애시의 백미(白眉)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안향(安珦)의 제자로 벼슬이 예문관대제학에 이르렀던 그는 충혜왕의 황음(荒淫)을 여러 차례 충간하다 왕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사직한 강직한 선비였다. 이 시조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성주(星州)에서 만년을 보낼 때 임금의 일을 걱정하는 심정을 읊은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했던 시절, 고려 중기의 호족이었던 이장경(李長庚)은 아들들의 장수를 빌며 이름을 백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이라고 지었는데 다섯 아들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올랐다. 형제가 길을 가다 황금 두 덩이를 주웠으나 의가 상할까 봐 강에 던졌다는 ‘의좋은 형제’는 억년과 조년의 이야기로 전한다.
 
새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열어갔으면······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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