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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look] “북 사실상 모라토리엄 파기…북·미관계 롤러코스터 가능성”

중앙일보 2020.01.02 00:04 종합 2면 지면보기
새해 벽두에 보도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보고는 현 정세에 대한 북한의 관점과 향후 대응을 헤아릴 유용한 근거가 되고 있다. 눈에 띄는 메시지는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단에 매여 있을 근거가 없다는 말이다. 표현이 다소 모호하지만 그동안의 모라토리엄을 파기하겠다는 말에 다름이 아니다.
 

위성락이 본 북한 당 전원회의 보고
김정은 “미래 안전 포기 못 해”
머지않아 도발 실제행동 나올 듯

톱다운방식 최후 담판은 열어놔
협상·대결 중첩된 2020년 될 듯

한국, 북 강경론 감안해 노선 조정
미국과 정책조율 전면 강화해야

위성락. [뉴시스]

위성락. [뉴시스]

이렇게 해석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언급이 나오는 전후 맥락과 논리의 전개 때문이다. 김정은은 미국이 북한의 핵과 ICBM 시험 유예에 대해 군사훈련, 첨단무기 도입, 제재 추가로 응답했다며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그리고는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지속하는 판에 현재의 경제와 복락을 위해 미래 안전을 포기할 수 없고, 제재 해제 따위에 목매 주저할 필요도 없으니 적대시 정책이 철회될 때까지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그 맥락에서 조만간 새 전략무기를 보여주겠다고 확언했다. 김정은은 이것을 충격적 실제 행동이라고 부르고 이를 예고했다. 이처럼 정치하게 앞뒤가 연결된 논리로 결론에 접근하고 있으므로 달리 해석할 여지가 적다.
 
둘째, 보고를 관통하는 정면 돌파 메시지 때문이다. 김정은은 정치·경제·안보 등 모든 전선에 걸쳐 외부의 적대적 환경을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런 김정은이 모라토리엄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도발로 가는 새로운 길을 밝힌 것이고 실제 행동은 머지않아 나온다고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물론 김정은은 억지력 강화의 폭과 심도가 미국의 입장에 따라 조정된다고 하여 미국과의 대화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또 미국을 맹비난하면서도 트럼프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미 대통령이 직접 중지하겠다고 공약한 군사훈련이 실시됐다고 지적해 트럼프와 군사훈련을 실시한 주체를 분리 대응하는 인상도 주고 있다.  
 
단 미국이 시간을 벌기 위해 대화를 악용하는 것은 불허한다고 함으로써 앞으로 종래와 같은 대화에는 불응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뒤집어 보면 트럼프가 새롭게 나오면 정상회담을 통한 최후 담판을 할 생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조야는 김정은이 도발을 예고했다고 볼 것이다. 앞으로 미국 정부와 의회를 중심으로 부정적 여론이 더 커지고 도발에 대한 대응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또 모라토리엄은 그간 트럼프가 업적으로 과시해 온 것이므로 이의 파기는 트럼프에게 악재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행동을 막는 노력을 강화하면서 막후에서 접촉을 시도할 것이다. 북한은 적대시 정책 철폐를 요구하면서 응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실제 행동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미국은 유엔 안보리 등을 통해 제재를 추가할 것이다. 이것은 다시금 북한으로 하여금 또 다른 도발을 고려하게 할 것이다. 상황은 단기적으로 악화할 것이다.
 
그러나 중기적으로 보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다. 첫째, 상황이 악순환으로 치달아 군사적 충돌을 포함한 큰 위기가 도래하는 시나리오다. 둘째, 북·미가 협상을 재개하는 시나리오인데, 북한으로서 협상은 정상회담을 한다는 전제에서만 고려 가능할 것이다. 대선을 앞둔 트럼프도 정상회담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다시 북·미 정상이 만나서 일정한 타결을 이루는 시나리오와 정상회담이 결렬되는 시나리오로 나뉜다.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북한은 2017년식 도발을 통해 협상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견인하려 할 것이다. 2020년 상황은 지난 2년과 달리 협상과 대결이 중첩되는 롤러코스터가 될 소지가 크다. 이 과정은 시점상 미국 대선과 맞물릴 터인데, 그러다가 협상은 어떤 악재만 불거지면 좌초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군사적 위기나 북·미 정상회담 결렬 시나리오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정상회담에서 무원칙한 타결이 이뤄져 우리의 핵심 이익이 손상되는 시나리오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사태가 그리로 갈 개연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협상이 복원돼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고, 거기서 좋은 내용의 타결이 이뤄지는 것일 터다. 그러나 그것은 개연성이 적고 어려운 길이다.
  
험난한 정세, 우리 대처가 중요한 시점
 
이 길을 찾아 들어가려면 우선 도발이라는 북한의 새로운 정책 방향을 감안해 우리의 기존 자세를 조정해야 한다. 그것을 기초로 미국과의 정책 조율을 전면 강화해야 한다. 그런 이후에야 북·미 정상회담을 고려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불확실성을 안은 채 우리의 운명을 북·미 협상에 내맡기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의 보고는 올 한 해가 험난할 것임을 보여준다. 우리의 대처가 중요한 시점이다. 관련해 떠오르는 경구가 있다. ‘파국으로 가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많은 이가 간다. 살아나갈 문은 좁고 그 길은 협착해 가는 이가 적다.’ 우리의 선택지는 어렵더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일 것이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외교통상부 북미국장,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거쳐 주러시아 대사를 역임했다. 2차 북핵 위기가 발발한 2003년 북미국장으로서 북핵 업무를 담당했고, 2009년 3월부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으로 북핵 문제를 지휘했다.

 
위성락 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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