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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사관 피습 충격…공수부대 4000명 투입 대기령

중앙일보 2020.01.02 00:03 종합 8면 지면보기
지난 달 31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미 대사관 인근 전진기지에서 미군 병사들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달 31일(현지시간) 이라크 바그다드 미 대사관 인근 전진기지에서 미군 병사들이 방어 태세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 이란 간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중동 정세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외교 과제에 직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라크 내 친이란파와 충돌 격화
미국, 대사관에 아파치 띄워 경계
트럼프 “이란 책임, 큰 대가 치를 것”
이란 “미군이 이라크인 25명 살해”

시작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군이 주둔한 이라크 군 기지에 대한 로켓포 공격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 민간인 1명이 숨지고, 미군 4명이 다쳤다. 미국은 공격의 배후로 이란을 지목했다. 미국은 보복 차원에서 지난달 29일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조직인 카다이브 헤즈볼라(KH)의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KH 측은 공습으로 25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미국은 KH를 ‘이란의 대리군’이라고 불러 왔다. 이란 외무부는 “이라크 영토와 KH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명백한 테러리즘”이라며 “미국은 이라크의 자주성과 주권, 영토적 통합을 존중하며 내정간섭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위대, 대사관 외벽·초소에 불 질러
 
같은 날 바그다드 미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친이란 민병대 폭격에 항의하는 이라크 시위대. [AP=연합뉴스]

같은 날 바그다드 미 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친이란 민병대 폭격에 항의하는 이라크 시위대. [AP=연합뉴스]

미군의 공습 직후 이라크 내 친이란 세력이 반격했다. 지난달 31일 친이란 시위대 수천 명이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미국대사관을 포위한 채 “미국 반대” “트럼프 반대” “미국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수백 명은 대사관 외벽과 감시초소에 불을 지르고, 차량 출입문과 감시 카메라를 부쉈다. 일부는 내부 진입까지 시도했지만 미군과 보안요원들이 최루탄과 섬광탄을 쏘며 대응해 대사관 본관엔 들어가지 못했다. 미국은 추가 습격에 대비해 아파치 헬기 2대를 보내 대사관 상공을 비행하게 했다. 또 대사관 내부로 해병대 100명을 투입했다.
 
미국대사관은 경비가 삼엄한 ‘그린존’ 내에 있지만, 이날 시위대는 별다른 제지 없이 그린존 안으로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라크 군과 경찰이 시위대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바그다드 미 대사관이 시위대의 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위는 이틀째인 1일에도 벌어졌다. 대사관 앞에서 밤을 새웠던 친이란 시위대는 날이 밝자 대사관 벽을 타고 진입을 시도하며 대사관 안쪽으로 돌을 던지고 경비 초소 등에 불을 질렀다. 시위대 일부는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대사관 인근 주차장과 공터에 텐트를 치고 간이 화장실까지 설치했다.
 
미국은 중동에 병력 750명을 추가 파병하기로 결정하는 등 강경대응에 나섰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성명에서 “미 육군 82공수사단 신속대응부대(IRF) 750명의 배치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바그다드에서 목격했듯 미군과 우리 시설에 대한 위협 수위가 높아진 데 따른 예방적인 조치”라며 “정부는 전 세계 어디에서든 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번에 파병하는 750명은 쿠웨이트 등 이라크 인근 국가나 지역에 배치할 예정이다. 이라크 상황이 악화할 경우 신속히 투입하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제82 공수사단은 긴급 파병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최소 500명이 이미 쿠웨이트로 이동 중이라고 미국 폭스뉴스가 전했다. 폭스뉴스는 미 대사관이 습격당한 후 제82 공수사단 내 4000명 규모 여단의 낙하산부대원이 수일 내에 투입될 수 있도록 군장을 챙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군은 현재 이라크에 약 5000명, 중동 전역에선 약 6만 명이 주둔하고 있다. 폭스뉴스는 지난해 5월부터 이란의 위협이 증가하면서 중동에 파병된 미군은 1만4000명 정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미 ‘제2의 벵가지 사태 막아라’ 강경
 
미국이 강경대응을 하는 건 ‘제2의 벵가지 사태’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2012년 리비아 동부 벵가지에서 무장 시위대가 ‘무슬림 모독’을 이유로 미국 영사관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공격으로 리비아 주재 미국대사와 직원 3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참사’로 여겨졌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기도 했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는 ‘벵가지 사태’로 클린턴 후보를 맹공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강력히 규탄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트위터에서 “이란은 우리의 시설에서 발생한 인명 손실이나 발생한 피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매우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 이것은 경고가 아니라 협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라크가 (미국) 대사관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군을 사용하길 기대하고 있고, 그렇게 알렸다”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CBS 인터뷰에서 친이란 시위대의 미 대사관 공습에 대해 “이란이 지원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또 “이라크 지도부에 이라크 내 미국 시설을 안전하게 지켜달라고 요청했다”며 “미 대사관은 안전하다. 절대로 대피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란은 이런 의혹을 부인하며 미국을 비판했다. 이날 압바스 무사비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은 적어도 25명의 이라크인을 야만적으로 살해한 것에 반대하는 이라크 국민의 항의를 이란에 돌리는 놀라운 대담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트럼프에 맞트윗 “당신은 아무것도 못해”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판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트위터 글.

트럼프 미 대통령을 비판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트위터 글.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트윗을 올렸다.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관이 피격당한 책임이 이란에 있다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을 리트윗하면서 반박 글을 달았다. 하메네이는 “이 사람(that guy)이 바그다드 사건의 책임이 이란에 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고 운을 뗀 뒤 “첫째, 당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조롱했다. 이어 “둘째, 그럴 리 없겠지만 당신이 논리적이라면 당신들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저지른 범죄를 보라. 그 때문에 여러 나라가 미국을 증오한다”고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가 직접 트럼프 비판에 나선 건 이례적이다. 미국과 이란 관계가 감정적으로도 악화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신혜연 기자 shin.hyeyeon@joongang.co.kr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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