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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식아동이 VIP…현재의 너도 미래의 너도 행복하길”

중앙일보 2020.01.02 00:03 종합 14면 지면보기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는 결식아동들을 VIP라 칭하며 밥값을 받지 않고 있다. 그가 도구, 식재료와 함께 누웠다. 장진영 기자

파스타집을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는 결식아동들을 VIP라 칭하며 밥값을 받지 않고 있다. 그가 도구, 식재료와 함께 누웠다. 장진영 기자

‘눈치 보지 않고 들어오기, 금액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말하기, 먹고 나갈 때 미소 한 번 짓기.’ 서울 마포구 파스타 식당 ‘진짜파스타’가 발급하는 ‘VIP 카드’ 소지자가 지켜야 할 규칙이다. 물론 음식 값은 무료고, 매일 와도 괜찮다.
 

‘진짜파스타’ 오인태 대표 새해 소망
아이가 미소만 지어주면 식사 공짜
“밥 굶는 애 있냐는 말에 화나 시작
감사편지가 보물 1호, 금고에 보관”

이 식당 주인장 오인태(35) 대표가 모시는 ‘VIP’는 결식아동이다. 그의 프로젝트는 지난 여름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를 모았다. “아동 급식을 지원하는 꿈나무 카드를 받으려면 별도 단말기를 설치해야 하고 서류·정산 절차도 불편하더라고요.”
 
그가 아이들에게 무료식사용 VIP 카드를 만들어 준 이유라고 지난달 26일 중앙일보에 밝혔다. 모양은 일반 손님들에게 제공되는 쿠폰과 같다. (서울시는 지난 8월 꿈나무 카드를 일반 체크카드로 바꿨다.)
 
“요즘도 밥 굶는 애들이 있냐란 말을 듣고, 화가 나 시작했어요.” 오 대표는 청소년기 컵라면과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한 때가 있었다. “그 냄새만 맡아도 속이 좋지 않아요. 지금 아이들이 제 어렸을 때 처럼 사는 걸 보는 게 싫었습니다.” 오 대표는 이를 ‘착한 분노’라 했다. 4개월 준비 끝에 지난 6월 본격적인 급식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진짜 먹어도 되는 거예요?”라고 물으며 자꾸 눈치를 봤다. “애들한테 들어보니 바쁜 시간엔 오지 말라는 식당들도 있다더군요. 꿈나무 카드 그 자체가 ‘낙인 효과’이고요. 그래서 손님용 쿠폰과 모양이 같은 VIP 카드를 만들어줬어요.”
 
밥값은 미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오 대표는 지금까지 식당을 이용한 아이들의 수를 세어보진 않았단다. “두 시간 반 거리에서 온 아이가 있었어요. 파스타 하나 먹으려고요. 너무 늦게 시작해 미안했습니다.” 그의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는 다른 지역으로도 퍼졌다. 음식점, 학원, 미용실 등 다양한 업종의 449곳이 동참하고 있다. 조용히 뜻을 함께하는 가게도 100여 곳이라고 한다.
 
오 대표의 프로젝트가 알려진 뒤 ‘사장님 혼내주기’ 이벤트가 SNS상에서 시작됐다. 손님들이 몰려가 계산할 시간 없이 해주자는 거다. 오 대표는 식대 이상의 금액을 내는 이들이 많아 500원 동전용 모금함을 만들었다. “지폐를 접어 모금함에 넣거나 비행기로 접어 카운터로 날리는 분들도 있어요.”  
 
아이들을 위한 물품도 쏟아졌다. 일부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물론, 주부들이 ‘우리 아이 것 사면서 하나 더 샀다’며 학용품, 신발 등을 보내왔다. 받은 물품은 후원단체를 통해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비영리 사단법인을 준비중인 오 대표는 투명하게 운영할 준비가 되면 그때 금액 후원을 받겠다고 한다. “돈이 많아서 그러냐. 정치적 행보 아니냐는 오해도 받아요. 하루 매출이 5만원 이하인 날도 많았고, 지금 신혼집도 반지하예요. 정치같은 건 관심도 없고요.”
 
오 대표의 보물 1호는 자신을 삼촌이라 불러주는 아이들의 감사 편지란다. “편지는 금고에 보관하고 있어요. 7월엔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편지를 보내 격려해 줬어요.” 오 대표의 새해 소망은 VIP 친구들의 행복이다. “이모, 삼촌이 더 노력해 더 많은 곳에서 더 자주 너희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할게. 현재의 너도 미래의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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