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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등에 칩 심고 결제하는 나라 스웨덴, 돌연 "현금 지키자" 왜

중앙일보 2020.01.02 00:02 경제 1면 지면보기
미국 주요 도시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쇼핑객을 위해 모바일로 구세군 자선냄비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주요 도시는 현금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 쇼핑객을 위해 모바일로 구세군 자선냄비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현금 없는 사회’는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웨덴에서는 지갑을 몸에 지니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는 이들이 있다. 엄지와 검지 사이의 손등 표면에 마이크로칩을 심은 수천명의 사람들이다. 물건을 살 때, 음식값을 지불할 때 또는 열차에서 검표를 받을 때 디지털 리더기에 손등을 대면 자동으로 결제된다. 칩에 각종 결제 정보가 담겨 있어 현금은 물론 신용카드·스마트폰도 필요 없다는 얘기다.
 

손에 칩 심어 자동결제하는 나라
교회헌금, 구걸까지 모바일로

노년층·빈곤층 경제활동에 제약
“ATM 찾아 64㎞…수백만명 고통”
시민단체 “사기·해킹 위협도 불안”

스웨덴은 이처럼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의 선두를 달리는 국가다. 하지만 디지털 사용에 제한이 있는 취약계층의 현금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현금을 지키려는 이들의 반격(fightback)이 시작되고 있다고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핀테크 발전으로 빠르게 현금 없는 사회로 다가가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일 텔레그래프·데일리메일·파이낸셜타임즈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2023년 현금 없는 사회’를 목표로 세운 스웨덴에서는 소매점이 현금 결제를 거부할 수 있고, 대중교통의 현금 결제를 중단했으며, 성당·교회 헌금이나 길거리 구걸도 각종 모바일 결제로 이뤄진다. 스웨덴의 현금 사용률은 1.4%(2016년 기준)에 불과하고, 전체 1600개 은행 지점 가운데 900곳은 현금을 아예 취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현금 이외에 다른 지불 수단을 쓰기 어려운 고령층·저소득층은 경제활동에 제약을 받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빈곤층이나 중고등학생은 기초 자본과 신용이 부족해 신용카드 등을 만들 수 없다. 간편 결제에 이용하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의 구매도 쉽지 않다.
 
스웨덴에서는 손등에 심은 마이크로칩으로 각종 결제가 가능하다. [AP=연합뉴스]

스웨덴에서는 손등에 심은 마이크로칩으로 각종 결제가 가능하다. [AP=연합뉴스]

노인들은 모바일 결제 같은 디지털 방식의 결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 스웨덴 연금생활자협회에 따르면 14만명의 고령층이 여전히 현금만을 사용하고 있으며, 100만명 이상은 현금통용이 어려워지는 것에 불편을 겪고 있다 특히 시골 지역은 통신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이 많다. 현금 없는 사회의 진전에 따라 디지털 금융 격차가 심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소비자단체 ‘위치?’의 제니 로스는 “스웨덴이 빠르게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면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현금 사용 권한을 잃고, 일상생활에서 고통을 겪고 있다”고 짚었다.
 
주요 국가 현금 사용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주요 국가 현금 사용률.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는 비단 취약계층만의 얘기가 아니다. 쿵칼호텔 등 유명 호텔에서는 현금만 가지고 있는 투숙객이 바에서 결제하지 못해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 유럽의회 부의장을 역임한 얀 앤더슨(73)은 “스웨덴 남서부 헬싱보리에서 돈을 찾으려 했더니, 64㎞나 떨어진 말뫼로 가라 했다”며 “현금자동입출금기도 계속 사라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 사각지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현금을 지켜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움직임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들의 우려는 단순히 디지털화에서 밀려난다는 것만이 아니다. 정보기술(IT)의 결함에 따른 사기·해킹 등의 위협에 대해서도 불안을 느낀다. 예컨대 디지털화한 지불 시스템은 조그만 빈틈이 생겨도 대형 금융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나 정전이 일어나 통신시설과 컴퓨터가 멈추게 되면 결제수단이 먹통이 되면서 나라의 금융거래가 한꺼번에 중단되는 심각한 위기를 초래한다.
 
현금 없는 사회 ‘빅브라더’ 걱정 … 사생활 보호대책 필요 
 
시민단체 ‘현금 반란’의 비요른 에릭손 대표는 “점점 많은 스웨덴 사람들이 (현금 없는 사회에) 회의적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많은 젊은이가 국가의 사생활 침해 같은 ‘빅브라더’를 걱정하면서 다시 현금을 사용하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금 없는 사회가 자칫 개개인의 돈 흐름을 감시·통제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스웨덴의 이런 움직임은 ‘현금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영국·프랑스·벨기에 등 다른 유럽 국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바일 결제나 신용 카드 사용이 보편화한 한국도 마찬가지다.
 
국내 최대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는 현금을 받지 않는 매장을 대폭 넓혀나가는 중이다. 2018년 4월 3곳에 불과하던 현금 없는 매장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전체 매장의 절반이 넘는 810곳으로 늘었다. ‘고객이 현금 결제를 원하면 현금을 받고 있다’는 게 스타벅스의 설명이지만 일부 소비자들은 난색을 보인다. 일부 교회에서는 신용카드나 모바일뱅킹으로 헌금을 받기도 한다. 예전보다 거부감은 줄었지만 ‘헌금을 낼 때의 경건한 마음을 담을 수 없다’는 비판도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현금사용률은 2017년 기준 23.3%로, 현재는 이보다 훨씬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현금 없는 사회는 장점이 많다. 잔돈을 계산하거나 돈을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투명한 과세가 가능하다. 정책적으로도 유연한 통화정책을 펼 수 있고 효과도 확실하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과 교수는 “동전의 양면처럼 ‘현금 없는 사회’가 가져다주는 편리함 이면에는 그림자가 있다”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보편적인 지급결제수단에 대한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사전 대비책이 허술하다면 ‘현금 없는 사회’로 가면서 나타나는 부작용은 커질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손해용 경제에디터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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