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고대, 추위가 피운 얼음꽃 판타지

중앙일보 2019.12.31 13:00

[더,오래] 주기중의 오빠네 사진관(13)

사진1 울산바위. [사진 주기중]

사진1 울산바위. [사진 주기중]

사진2 울산바위 상고대.

사진2 울산바위 상고대.

 
겨울 이른 아침입니다. 미시령 옛길에서 설악산 울산바위를 봤습니다. 밤새 눈이 내린 걸까요. 산 정상 부분이 눈가루를 뒤집어 쓴 듯 하얗게 변했습니다. 곳곳에 잔설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눈은 아닙니다. 망원렌즈로 바위 아랫부분을 찍어봤습니다. 낙엽수의 마른 나무 가지가 하얀색 페인트를 칠한 크리스마스 트리 같습니다.
 
상고대가 핀 울산바위 모습입니다. 상고대는 나무나 풀에 내려 눈처럼 된 서리를 뜻하는 순 우리말입니다. 한자어로는 나무에 엉긴 얼음이라고 해서 수빙(樹氷)이라고 합니다. 기상학자들은 안개가 얼어서 된 결정이라는 뜻으로 ‘무빙(霧氷)’ 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진3 덕유산.

사진3 덕유산.

사진4 덕유산.

사진4 덕유산.

사진5 덕유산.

사진5 덕유산.

 
상고대는 추워야 피는 ‘얼음꽃’ 입니다. 일교차가 크고, 습도가 높고, 추운 날 이른 아침에 자주 나타납니다. 공기 중의 습기가 풀이나 나뭇가지, 바위에 얼어붙어 얼음 결정이 생깁니다. 특히 전날 비나 눈이 오고 난 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거나 안개가 끼면 상고대가 생길 확률이 높아집니다. 상고대는 해가 뜨면 이내 녹아 없어집니다. 그러나 상고대 위에 눈이 내리거나 강추위가 계속되면 바람결을 따라 침처럼 뾰족하게 자라기도 합니다.
 
덕유산과 소백산은 상고대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상고대는 눈꽃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맑고 투명한 빛을 자랑합니다.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한 산길로 들어서면 영화 ‘겨울왕국’ 같은 판타지에 빠져듭니다. 파란 하늘과 하얀 나뭇가지가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상고대가 가시처럼 돋아 있는 순백의 고사목은 추사의 세한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사진3-5는 덕유산에서 촬영한 겨울 풍경입니다.
 
사진6 소양강 상고대.

사진6 소양강 상고대.

사진7 화천강 상고대.

사진7 화천강 상고대.

사진8 소양강 상고대.

사진8 소양강 상고대.

사진9 소양강 상고대.

사진10 소양강 상고대.

사진10 소양강 상고대.

 
상고대는 춥고, 물이 많은 곳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 소양호와 의암호가 있는 춘천, 파로호와 화천강을 끼고 있는 화천도 겨울 상고대로 유명합니다. 춘천과 화천은 날씨가 춥기로도 이름 난 곳입니다. 영하 10도 이하로 강추위가 닥치면 일교차로 인해 강과 호수에 물안개가 피어 오릅니다. 이 물안개가 물버들이나 키작은 관목, 풀 등에 얼어 붙어 상고대를 만듭니다.
 
강이나 호수 주변에서 보는 상고대는 물안개와 동시에 나타납니다. 물안개가 심한 날은 노천 온천 같이 김이 솟아 오릅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는 물안개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하얀 나무와 키 작은 관목이 몽환적인 겨울풍경을 연출합니다. 강가에 우거진 숲은 동화 속 화원이 됩니다. 상고대는 물과 바람, 추위가 만든 자연의 예술품입니다.
 
색도 시시각각 변합니다. 해가 뜨기 전에는 푸른 빛이 돕니다. 해가 뜰 무렵이면 분홍빛이나 살구빛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절정의 순간은 짧습니다. 물가에서 피는 상고대는 해가 뜨고 나면 이내 녹아 사라집니다. 신비한 겨울 판타지를 보여주던 겨울강도 황량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사진 6-10은 춘천과 화천 일대에서 찍은 겨울강 상고대가 핀 풍경입니다.
 
올 겨울은 포근한 날씨로 인해 상고대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상학자들은 상고대가 생기는 최적의 조건을 10도 이상의 높은 일교차와 함께 온도 영하 6도 이하, 습도 90% 이상, 풍속 3m 정도라고 말합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상고대를 볼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후손들은 아름답고, 신비로운 상고대를 사진으로만 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주기중 주기중 아주특별한사진교실 대표 필진

[주기중의 오빠네 사진관] '찍는 건 니 맘, 보는 건 내 맘' 이라지만 사진은 찍는 이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매체다. 중앙일보 기자로 필드를 누볐던 필자가 일반적인 사진의 속살은 물론 사진 잘 찍는 법, 촬영 현장 에피소드 등 삶 속의 사진 이야기를 소개한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