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함께하는 세상] “길동무로 42.195km 함께 달리는 ‘빨간 끈’의 기적 믿어요”

중앙일보 2019.12.31 05:00 종합 24면 지면보기
지난 11월에 열린 'JTBC 서울마라톤' 풀코스 완주 후 시각장애인 홍은녀(앞줄 오른쪽 둘째) 선수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장태기(오른쪽)씨. [사진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지난 11월에 열린 'JTBC 서울마라톤' 풀코스 완주 후 시각장애인 홍은녀(앞줄 오른쪽 둘째) 선수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장태기(오른쪽)씨. [사진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

“손목에 묶은 빨간 끈 하나에 의지해 두 사람이 42.195km를 달려갑니다. 제게 운명을 맡긴 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입니다. 처음엔 호흡도 어렵고, 발이 엉켜 종종 다치기도 했어요. 중요한 건 ‘내 기록을 세우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긴 거리 함께 달려줄 ‘길동무’가 되겠다는 마음이죠.”

가이드러너 자원봉사자 장태기씨
2년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도와
JTBC 마라톤 풀코스 완주 기록도
요즘도 남산서 매주 13km씩 훈련
"손목 빨간 끈 하나에 의지한 두 사람
함께 가면 멀리간다 말 의미 알게돼"

 
지난 21일 서울 남산 북측순환로에서 만난 장태기(28)씨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해군 중위로 복무하고 있는 그는, 2년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를 돕는 가이드러너(동반주자)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월엔 시각장애인 홍은녀씨(사회복지사)와 함께 출전한 ‘JTBC 서울마라톤’에서 4시간 18분 40초 풀코스 완주 기록도 세웠다. 그는 “이 대회에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이 스타트라인 맨 앞에서 먼저 출발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게 감동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의 가이드러너 도전기는 지난달 12일 ‘2019 사회복지 자원봉사 따뜻한 이야기 공모전’에서 보건복지부장관상(최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1일 서울 남산 북측순환로에서 장태기씨(왼쪽)가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VMK) 회원들과 마라톤 훈련을 하고 있다. 노유진 연구위원

지난 21일 서울 남산 북측순환로에서 장태기씨(왼쪽)가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VMK) 회원들과 마라톤 훈련을 하고 있다. 노유진 연구위원

 
장씨가 취미 삼아 마라톤을 시작한 건 2012년부터다. 100회 이상 크고 작은 대회에 출전하던 중 2년 전 출전했던 한 대회에서 우연히 시각장애인 선수와 함께 뛰는 가이드러너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그는 “주황색 조끼를 맞춰 입은 두 사람이 서로의 손목에 감겨있는 빨간 끈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지금은 두 사람이 발걸음과 호흡을 맞추며 함께 달리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즐겁다”고 했다. 매주 토요일 오전, 남산 산책로 달리기 트랙은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클럽(VMK) 회원과 가이드러너 자원봉사자들의 전용훈련장으로 변신한다. 한겨울에도 매주 약 40여명이 2인 1조가 되어 남산 13km를 달린다.  

고2 때부터 197번 헌혈한 '헌혈왕' 

가이드러너(동반주자)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서로의 손목을 끈으로 묶고 달린다. 노유진 연구위원

가이드러너(동반주자)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서로의 손목을 끈으로 묶고 달린다. 노유진 연구위원

그는 헌혈왕이기도 하다. 고2 때부터 시작한 헌혈이 197회에 이른다. 지난 4월에는 60대 급성백혈병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도 기증했다. "헌혈하기 위해 더 열심히 마라톤 훈련을 하게 되어 오히려 더 건강해졌다"며 "헌혈과 시각장애인에 대해 궁금해하는 지인이 늘어나면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내년 5월 전역을 앞둔 그는 10월에 열리는 ‘제40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동반주자 출전을 목표로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장씨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가이드러너로 활동하면서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됐다”며 “누구나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는데, 나처럼 한 발자국만 더 용기를 내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노유진 시민사회환경연구소 연구위원 roh.youjean@joongang.co.kr
 

위 배너를 누르시면 '함께하는 세상' 기사목록으로 이동합니다. https://news.joins.com/issue/10956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