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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국론 분열보다 무서운 인구 감소

중앙일보 2019.12.31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공명지조(共命之鳥)’. 교수신문이 전국 교수 1046명에게 물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四字成語)다. 문자대로 하면 ‘같은 운명을 가진 새’란 뜻이다. 공명지조는 불교 경전 아미타경에 나오는 머리가 둘 달린 새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몸에 좋은 과일을 먹은 한 머리를 시기한 다른 머리가 덥석 독이 든 과일을 먹는 바람에 새는 죽고 만다. 서로 갈라져 죽어라 싸우는 한국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선정한 사자성어라는 게 교수신문의 설명이다.
 

현실이 된 인구 자연증가율 0%
현재·미래 세대 공멸 막으려면
한국 사회 지혜와 역량 결집해
총인구 유지에 총력 기울여야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서로 다른 의견의 대립과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로 인한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슬기롭고 평화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 지도자의 ‘통합자’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나라다운 나라’를 바라는 시민적 염원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통합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다. 그러나 ‘조국 사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대로 문 대통령은 갈라진 민심을 다독여 통합하기보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확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 자신을 지지하는 한쪽 진영의 논리와 이익에만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그 탓에 하나로 모아도 모자랄 국민 역량을 분산하고 낭비했다. 공명지조는 그에 대한 실망감의 표현일 것이다.
 
오늘 하루가 지나면 경자(庚子)년 새해가 밝지만, 희망과 기대를 말하기엔 앞이 너무 어둡다. 4월 총선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이 갑자기 나아질 가능성도 없다. 한반도 정세도 불안하다. 북한은 성탄 선물 대신 새해 선물로 한반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을지 모른다. 강대국 간 고래 싸움의 파고가 국제정치와 경제에 밀려오면 우리는 더욱 어려운 처지가 될 수밖에 없다.
 
어렵지 않은 때는 없었다. 당장 큰일 날 것 같은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숱한 도전을 이겨내고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이고, 전면적인 도전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인구 감소다. 인구 감소는 지금까지 우리가 겪었던 그 어떤 문제와도 차원이 다른 심각하고 중차대한 도전이다.
 
얼마 전 경남 통영에 놀러 갔다가 한려수도의 그림 같은 풍광에 반해 배를 타고 섬 한 곳을 찾았다. 7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학림도다. 선착장에 내리면 2층짜리 번듯한 초등학교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학생은 단 한 명. 이 학생이 졸업하면 학교는 텅 비게 된다. 젊은이들은 다 육지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다 보니 인구는 줄고, 아이들 울음소리는 끊어졌다. 학생 부족에 따른 폐교는 전국의 농촌과 산촌, 어촌에서 나타나고 있는 공통적 현상이다.
 
일본의 인구는 2007년부터 줄어들기 시작해 올 한 해 51만2000명이 감소했다. 포항시 인구가 통째로 사라진 셈이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한국의 인구 자연증가율은 0%를 기록했다. 출생아 수와 사망자 수가 각각 2만5000명 선으로 거의 같았다. 가임여성의 평생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에서 일본은 1.4명이지만, 한국은 0.9명 대로 세계에서 가장 낮다.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되면 그 속도는 일본보다 더 가파를 수밖에 없다.
 
인구 감소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는 징표다. 학교를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고, 취업을 해도 미래가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집값 폭등 탓에 내 집 마련은 요원한 꿈이다. 당연히 젊은이들은 결혼을 늦추거나 포기한다. 결혼을 하더라도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입시경쟁까지 생각하면 제대로 키울 자신도 없다. 그러니 임신을 꺼리거나 미루게 된다. 기대수명의 증가로 노인 인구는 갈수록 늘어나는 반면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든다. 소비에서 생산, 유통까지 전 분야에 걸쳐 경제 활동이 침체되고 축소된다. 교육과 국방도 영향을 받는다. 사회적 활력이 떨어지면서 사회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인구 감소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심대한 도전이다.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싸우는 국론 분열이나 갈등보다 더 무섭고 심각한 문제다. 현실이 된 인구 감소는 우리 사회를 조용하고 서서히, 그러나 결정적으로 파괴할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폭탄의 뇌관을 제거하는 데 우리 사회가 가진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저출산 대책에 143조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세계 최저 출산율이 보여주듯 상황은 오히려 악화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스템과 인식의 개선이다. 국가와 민간이 협력해 누구나 아이를 낳으면 걱정 없이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결혼해야만 출산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 확대와 적극적인 외국인 이민 정책도 필요하다. 인구 유지는 국민통합보다 중요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당장 어렵고 힘들다고 미루고 방치하면 우리 사회는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다 같이 죽는 공명지조가 될 수 있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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