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소문 포럼] ‘고구마 경제’ 참 마이 묵었다

중앙일보 2019.12.31 00:19 종합 30면 지면보기
서경호 경제에디터

서경호 경제에디터

‘고구마 경제’라고 할 만큼 참으로 답답한 한 해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을 정점으로 경기는 하강국면으로 돌아섰는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나 획일적인 주 52시간제 시행 등 경제에 부담되는 정책을 눈치 없이 쏟아부었으니 할 말 다했다.
 

실질성장률보다 낮은 명목성장률
올해 체감경기 더 나빴던 이유
‘깨알 방어’‘깨알 자랑’ 이젠 그만

올해 경제성장률은 1%대 추락을 걱정할 정도로 내려앉았고, 증시는 글로벌 시장 분위기와 딴판으로 게걸음을 쳤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미국 증시 시가총액은 올 들어 26일까지 28.2% 뛰었고, 중국도 34.7% 늘어났다. 한국은 고작 3.6% 증가에 그쳤다.
 
정부는 일본·중국보다 낫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내세우며 경제파탄론을 잠재우려 애쓰지만 안타깝다. 국가신용등급은 높은데 증시는 죽 쑤고 있는 현실은 우리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여실히 보여준다. ‘주식회사 한국’이 부도가 나서 돈 떼일 염려는 당분간 없겠지만 앞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성을 확신할 수는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본다. 물가에 부담을 주지 않고 성장할 수 있는 최대치인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암울한 현실과도 맥이 닿아있다.
 
서소문 포럼 12/31

서소문 포럼 12/31

특히 올해 체감 경기가 더 힘들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럴 만도 하다. 최근 기획재정부는 올해 실질성장률 전망치를 2.0%로 낮추면서 종합물가라고 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를 연간 -0.8%로 예상했다. GDP 디플레이터가 마이너스였던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2%)과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던 2006년(-0.2%)뿐이다. 따라서 올해 실질성장률에 물가를 반영한 명목(경상)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 1.2%였다. 우리나라 명목성장률이 1%대 밑으로 떨어진 것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처음이다.
 
명목성장률이 실질성장률보다 낮은 건 매우 이례적이다. 경제 주체들이 실생활에서 마주치는 건 물가가 반영된 명목의 세계다. 열심히 일하고 뛰었는데 벌이는 시원찮고, 공장 열심히 돌리고 판매도 그런대로 된 것 같은데 매출은 예전만 못한 것도 크게 보면 이런 이유가 있어서다. 체감 경제가 신문에 나오는 성장률 수치만도 못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당신이 특별나게 비관적이어서가 아니다. 실질보다 못한 명목성장률이라니, 정책당국자로선 면목 없는 일이다. 정책 비판에 발끈해 ‘깨알 방어’에 나서는 것도, 다소 개선된 일부 통계치에 반색하며 ‘깨알 자랑’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정부는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나아져 2.4% 성장할 것으로 낙관한다. 다른 기관들은 대체로 이보다 낮지만 올해보다 약간 나은 2% 수준을 예상한다. 수출에 민감한 우리 경제의 취약 포인트였던 미·중 무역분쟁과 이에 따른 글로벌 교역 둔화 등의 대외요인이 다소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죽 쒔던 올해 경제에 따른 기저효과도 일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경기가 바닥을 치고 반등하더라도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직후와 같이 탄력 있는 성장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내년엔 ‘고구마 경제’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순 없을까. 결국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민간의 활력이 살아나는 게 핵심이다. 어제 보도된 경제단체장들의 신년사와 간담회 발언에는 가슴 먹먹하게 하는 숱한 ‘고구마’가 있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국회의 입법 미비, 공무원의 소극적 행정, 기득권 집단, 융복합사업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했다. 해외에선 만개하고 있는 공유경제를 우리는 경험하지 못하고 인터넷과 신문으로만 배운다며 이는 눈 가리고 미래를 보는 것과 같다고 한탄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정부 정책 기조를 기업의 활력 높이는 쪽으로 전환하고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은 “경제가 다시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 하는 기로에 있다”며 사회 전반에 기업가 정신을 살리자고 주문했다.
 
경제단체장의 하소연에서 절박한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박용만 회장이 다시는 없어야 할 ‘일 안 하는 국회’로 비판한 20대 국회는 데이터 3법과 탄력근로제 보완 입법 등 방치된 경제 입법부터 서둘러야 한다.
 
“현 정권의 정책은 친(親)기업, 반(反)기업이 아니고 무(無)기업”이라고 했던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의 쓴소리가 오래 회자됐다. 내년 경자년 (庚子年)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그래야 답답한 속 시원하게 뚫어주는 ‘사이다 경제’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냉수나 한 잔 마셔야 할 것 같다.
 
서경호 경제에디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