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당 “의원직 총사퇴”…제1 야당으로는 10년 만에 결의

중앙일보 2019.12.31 00:05 종합 3면 지면보기
문희상 국회의장(가운데)이 30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4차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의장석으로 향하는 도중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경록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가운데)이 30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4차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를 진행하기 위해 의장석으로 향하는 도중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항의를 받고 있다.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경록 기자

범여(汎與)의 벽은 높았다. 10일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부터 완력을 과시했던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 당권파·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는 30일 그 정점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 원하는 시간에 본회의를 열었고, 원하는 방식으로 표결했다. 자유한국당은 속수무책이었다.
  

공수처법 28분 만에 속전속결
한국당 무기명 투표 부결에 퇴장
4월 패스트트랙 충돌 수사에 발목
추가 격돌 부담 … 무기력한 대응
가결 뒤 민주당 포옹, 한국당 애국가
조국 “눈물 핑 돌 정도로 기쁘다”

문 의장, 국회 경위 호위 속 의장석에
 
이날 본회의는 오후 6시로 예고됐다. 한국당에선 홍남기 경제부총리 탄핵소추안 표결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반발했다. 처리 시한이 오후 5시40분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에 이은 두 번째 무산이었다. 한국당에선 “세 번째 탄핵소추안을 내겠다”고 했다.
 
오후 6시가 되자 한국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문 정권, 범죄은폐처=공수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연단 주변을 점거했다. 32분 뒤 문희상 국회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당 의원들은 “문희상 사퇴. 독재 타도”를 외쳤다. 심재철 원내대표와 김태흠 의원이 문 의장 앞을 가로막았지만 순식간에 국회 경위들에게 제압됐다. 문 의장은 1분 만에 의장석에 앉았고, 회의는 오후 6시34분 개의됐다. 입장부터 회의가 열리기까지 2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먼저 투표 방식에 대한 표결에 들어갔다. 한국당은 무기명 투표를 요구했다. 범여 의원들 가운데에서도 공수처 법안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걸 염두에 뒀다. 한국당 의원들도 오랜만에 투표에 참여했다. 범여가 응할 리 없었다. 287명 중 155명이 반대 버튼을 눌렀고, 한국당 의원들은 퇴장했다. “민주주의는 죽었다” “다 해처먹어” “나라도 팔아먹어라” “아들 공천만 되면 다 팔아먹지”라는 야유만 회의장을 채웠을 뿐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사실상 몸싸움을 금지하고 있는 데다 4월 패스트트랙 지정 때 충돌로 한국당 의원 다수가 수사 대상이라 추가 격돌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이후 본회의장은 ‘평화’로웠다. 일반 안건은 재석 과반수 출석, 출석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 한국당 의원들의 부재는 곧 본회의장에서 투표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범여란 의미다. 법안 통과가 기정사실화된 순간이었다.
 
한국당 의원들이 30일 공수처법 표결방법 변경의 건이 부결되자 퇴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한국당 의원들이 30일 공수처법 표결방법 변경의 건이 부결되자 퇴장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관련기사

공수처 법안 중엔 나중에 제출된 권은희 바른미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수정안부터 표결했다. 범여의 공수처 법안의 독소조항을 완화한 내용이다. 173명 중 152명이 반대했다. 범여의 윤소하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올랐고 177명 중 160명이 찬성했다. 시계는 7시2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개의로부터 28분이 소요됐을 뿐이다.
 
법안 통과 순간 민주당과 한국당의 표정은 정반대였다. 법안이 통과된 직후 민주당 의원들은 서로 어깨를 토닥이거나 포옹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 순간 한국당 의원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로텐더홀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고 있었다. 주광덕 의원은 눈물을 훔쳤다. 심재철 원내대표는 “북한 보위부, 나치 게슈타포 같은 괴물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권의 비리은폐처’ ‘친문 범죄 보호처’란 표현도 썼다. “한국당은 위헌이 분명한 공수처법에 대해 즉각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목숨 걸고 막는다고? 다 한강 가라”
 
같은 시각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되돌릴 수 없는 검찰 개혁의 제도화가 차례차례 이뤄지고 있기에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기쁘다”고 썼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목숨 걸고 막는다고 수차례 공언하더니 무기력하게 모두 줘버리고 이젠 어떻게 할 거냐”라며 “야당의 존재가치가 없다면 오늘 밤이라도 모두 한강으로 가라”고 질타했다.
 
결국 이날 오후 9시50분 3시간여 의총을 마친 후 심재철 원내대표는 의원직 총사퇴의 뜻을 밝혔다. “예산안 불법 날치기와 선거법 불법 날치기에 이어 세 번째 날치기에 의원들 모두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며 “의원직 사퇴를 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고 전했다.
 
제1 야당의 의원직 총사퇴는 2009년 미디어법 처리 때 이후 10년 만이다.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의원 80여명이 의원직 사퇴서를 냈다.  
 
이에 앞서 범여는 표 단속을 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 바른미래당 김관영 전 원내대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 평화당 조배숙 원내대표, 대안신당 장병완 의원은 이날 오후 6시 본회의를 앞두고 회동해 공조를 재확인했다. 실제 공수처법 찬성표(160명)는 사흘 전 선거법 개정안 찬성표(156명)보다 네 표 많았다. ‘4+1’ 공조 균열을 우려한 민주당이 군소 정당 대표들과 ‘농어촌 지역구 보장’ 등을 약속한 결과다. 김관영 의원은 “공직선거법 제25조 제2항을 존중해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도록 권고의견을 제시한다”고 공개했다. 군소 정당 의원들이 주로 통폐합 대상인 호남 농어촌에 지역구를 둔 점을 민주당이 파고든 것이다.
 
한국당은 본회의를 앞두고 의총을 열었다. 황교안 대표는 “연말 의회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은 일련의 폭거는 공수처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정권을 보위할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을 만드는 데 예산안도, 선거제도도 모두 희생양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선거법과 마찬가지로 공수처법도 ‘4+1’의 불법 밀실 야합을 거치면서 더 철저히 개악이 됐다”며 “공수처 수사 검사나 수사관 자격도 대폭 완화해 좌파 운동권 진입로까지 더 넓게 터줬다”고 비판했다.
 
한영익·김기정 기자 hanyi@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