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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남매의 난’ 이어 ‘모자의 난’…한진가 상처뿐인 봉합

중앙일보 2019.12.31 00:03 경제 2면 지면보기
이명희, 조현아, 조현민, 조원태(왼쪽부터)

이명희, 조현아, 조현민, 조원태(왼쪽부터)

‘남매의 난’에서 ‘모자의 난’으로까지 번진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갈등과 관련해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공동으로 사과문을 내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의 힘겨루기가 일단락됐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성탄절 불미스러운 일 깊이 사죄”
이명희·조원태 여론 악화에 사과

“가족 화합 유훈 지킬 것” 했지만
경영권 분쟁 수습될지는 미지수

강성부펀드 어느 편도 안들 가능성
국민연금은 경영간섭 더 커질 듯

이 고문과 조 회장은 30일 공동명의의 사과문을 내고 “지난 크리스마스에 이 고문 집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깊이 사죄드린다”며 “조 회장은 어머니인 이 고문께 곧바로 깊이 사죄를 하였고 이명희 고문은 이를 진심으로 수용했다”고 밝혔다.
 
재계와 대한항공 등에 따르면 앞서 조 회장은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이 고문의 자택을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가 이 고문과 크게 말다툼을 벌였다. 조 회장이 화를 내며 자리를 뜨는 과정에서 거실에 있던 화병 등이 깨지고 이 고문 등이 팔에 상처를 입었다. 현장에는 조현민 한진칼 전무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이날 이 고문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반기’를 묵인해준 것 아니냐는 일부 언론보도를  언급하며 어머니에게 불만을 제기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재계에서 떠돌던 이 고문의 ‘큰딸 지지’ 입장이 사실로 입증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결국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남매간 갈등이 총수 일가 전체로 번졌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이 고문과 조 회장은 사과문에서 “저희 모자는 앞으로도 가족 간의 화합을 통해 고 조양호 회장님의 유훈을 지켜나가겠다”고 했다. “가족들과 잘 협력해서 사이좋게 이끌어 나가라”는 게 고 조양호 회장의 유훈이었다. 한진그룹 측은 이에 대해 “조 회장이 소동 당시 이 고문에 즉시 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과문은 조 회장과 이 고문 양측의 의견조율이 된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한진칼 지분구조. 그래픽=신재민 기자

한진칼 지분구조. 그래픽=신재민 기자

이들이 전격 사과문을 발표한 것은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것에 부담감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두 자매의 이른바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 등에 대한 공분이 가라앉지 않은 가운데, 이번 사건까지 터지며 여론은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특히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재선임이 결정된다. 출석 주주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할 경우 연임에 실패, 그룹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다.
 
현재 조 회장(6.52%), 조 전 부사장(6.49%), 조 한진칼 전무(6.47%), 이 고문(5.31%) 등 총수 일가의 지분을 모두 다 확보한다 해도 경영권의 자력 방어는 쉽지 않다. 총수 일가를 둘러싼 여론 악화는 주요 기관투자자는 물론 개인투자자 등의 이탈을 부추겨 안정적 경영권 확보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한진의 경영권을 위협해온 행동주의 토종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펀드)는 최근 1년 새 한진칼 지분을 10.81%에서 17.29%까지 확보하면서 세를 키웠다.  
 
다만 전문가들은 KCGI와 조현아 전 부사장이 손을 맞잡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CGI가갑질문화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했는데 갑질 논란의 중앙에 있는 사람과 손잡는다면 주주들에게 명분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KCGI가 조원태·조현아 두 사람 싸움에서 한쪽 편에 붙기보다는 각자 별개의 길을 가는 1:1:1(조원태:조현아:KCGI) 구도로 갈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델타항공(10%)과 반도건설(6.28%)은 누구의 편인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정연승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확인하기가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모친인 이 고문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막내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지분이 어디로 가느냐”라고 말했다. 이상헌 연구원은 “조 전 부사장이 모친과 여동생(조현민 전무)과 힘을 합하면 조원태 회장 연임을 저지는 할 수 있겠지만, 3명의 세력으로 회장 추대는 어려울 텐데 거기서 얻을 것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최근 ‘적극적 주주활동 지침’ 가이드라인을 확정한 국민연금이 이번 주주총회에서 총수 일가의 도덕성 논란, 경영권 분쟁 등에 반발하며 목소리를 확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진칼 4.11%, ㈜한진 7.54% 등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도 고 조 회장의 이사직 연임안에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결론적으로 여론 악화와 더불어 총수 일가의 경영권에 대한 위협이 커지자 ‘사과문’을 내고 상황 수습에 나섰다는 것이다. 사과문에 대한 진정성에 대해 여전히 ‘물음표’가 붙는 배경이다.
 
이번 사과문으로 총수 일가 내 갈등이 봉합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23일 “조원태 대표이사가 공동 경영의 유훈과 달리 한진그룹을 운영해 왔고, 지금도 가족 간의 협의에 무성의와 지연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선제공격에 나선 바 있다. 최근 정기 임원 인사에서 조 회장이 조 전 부사장의 측근을 교체했고, 상속세 납부 부담이 큰 조 전 부사장의 경영 복귀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여전히 갈등 요소다.
 
한진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사생활 보호가 철저한 대기업 총수 일가에서 가족 간 분쟁 내용이 거의 실시간으로 밖으로 알려지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며 “그만큼 가족 간 갈등의 골이 깊다는 얘기며, 확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3남매가 끝내 갈라서 한진그룹과 항공은 조 회장이, 호텔·레저사업은 조 전 부사장이, 저비용항공사(LCC)는 조현민 전무가 맡는 계열 분리로 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한진그룹은 창업자 고 조중훈 회장이 지난 2002년 별세 후 한진가는 ‘형제의 난’을 겪다가 항공·중공업·해운·금융 부문으로 사실상 계열 분리가 됐다. 하지만 고 조 회장이 생전 지주회사인 한진칼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구조를 확고히 해놨다는 점에서 계열 분리로 갈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 더 많다.
 
곽재민·추인영·문현경 기자 jmkw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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