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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재수 권하는 사회

중앙일보 2019.12.30 00:33 종합 32면 지면보기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교육 분야를 취재하다보니 자녀 교육에 관련한 정보나 의견을 구하는 지인들의 전화를 종종 받게 된다. 이런 상담 요청엔 나름의 ‘주기’가 있다. 3·4월엔 갓 입학한 초등학생의 학교 적응, 5월엔 집단 따돌림, 9월부터는 중3의 고교 선택에 대한 물음이 많다.
 
이런 주기 중 하나가 변했다. 대입 재수 얘기다. 올해는 수능(11월 14일) 직후부터 “이 성적이면 재수해도 되겠나” “재수학원을 추천할 수 있냐”는 고3 부모의 전화가 왔다. 몇 년 전만 해도 정시 원서 접수 이후인 12월말에야 오던 전화다.
 
실제로 올해 재수학원엔 대학의 정시 모집 전부터 고3과 부모가 몰렸다. 전국에서 10여 개의 재수학원을 운영하는 한 대형업체 관계자는 “지난해 재수종합반 등록률이 10년 새 최고였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빨리 찼다”고 전했다. 상위권 학생이 몰리는 강남의 재수선행반(1월 개강)은 2~3주전 사실상 마감됐다.
 
‘학령인구 감소→대입 수험생 급감→재수생 감소(대입 경쟁 완화)’를 내다봤던 교육당국·학원가 등의 예상이 빗나간 셈이다. 재수생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올해 수능 응시자(48만4737명)는 지난해보다 5만명 줄었지만, 재수생(13만6972명)은 5000명 이상 늘었다. 올해 재수생은 수능 응시자가 55만명이던 2017 대입(재수생 12만명)보다 많다.
 
노트북을 열며 12/30

노트북을 열며 12/30

왜 그럴까. 일차적인 원인은 학생부종합전형(학종)과 수능으로 이원화된 대입 지형이다. 학종은 재학생, 수능은 재수생에 유리하다는 게 입시 상식이다. 게다가 교육부가 ‘서울 주요 대학’의 정시 확대를 공언한 터라, 재수의 위험 부담도 그만큼 줄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대입 제도 밖에 있다. 일찌감치 재수를 결정한 부모들이 기자에게 밝힌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올해 성적으론 ‘인(in) 서울’이 어렵기 때문” 아니면 “어떻게든 의대에 보내고 싶어서”였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취업난, 좁혀지지 않는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에 ‘S·K·Y(서울·고려·연세대)’나 ‘의·치·한·약’에 매달리는 경향이 한층 심해졌단 얘기다.
 
지난달말 교육부의 대입 개편안이 확정됐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논란에 대통령이 나서 “교육 공정성 강화”를 지시했고, 결국 일년 만에 대입이 재수정됐다. “초등·중학교의 사교육을 잡기 위해” 자사고·외고도 폐지키로 했다.
 
하지만 대입 정시 비중이 늘고 자사고가 사라진다 한들,  ‘재수를 권하는 사회’가 그대로라면 학생과 부모를 멍들게 하는 입시 경쟁이 얼마나 누그러질까. 입시 과열은 결국 학교 밖의 세상에서 풀어야 할 문제다.
 
천인성 사회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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