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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수처 법안은 폐기돼야 마땅하다

중앙일보 2019.12.30 00:29 종합 34면 지면보기
민주당이 오늘 임시국회를 열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에 대한 표결처리를 강행키로 했다고 한다. 지난주 제1 야당을 제외한 채 선거법을 통과시킨 데 이어 또다시 아집과 오기로 자신들의 주장만 관철하려 한다는 비판을 자초한 것이다.
 

권한 남용 땐 법치·민주주의 가치 훼손
살아있는 권력 수사가 본래 입법 취지

민변 출신의 초선인 박주민 의원이 주도하고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발의한 공수처법 수정안은 당리당략에 따라 조악하게 만든 악법에 불과하다. 민주당과 범여권 군소정당으로 구성된 ‘4+1 협의체’가 선거법 통과를 위해 패키지로 묶은 것이다. ‘과연 이들이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가치를 지킬 생각이 있는 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17년 전인 노무현 정부 때 처음 발의된 이 법안은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선 고위 공직자 비리를 별도로 수사하는 독립된 수사기관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비롯됐다. 수사기관끼리 경쟁과 보완장치를 통해 국가 부패지수를 낮추고 국제사회에서의 신인도를 높이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수정안은 본말이 전도된 채 검찰 개혁을 명분으로 권력을 보호하겠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요구로 임명된 ‘우리 윤석열 검찰총장’이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를 시작으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감찰 무마, 우리들병원 특혜대출 의혹 등으로 칼날을 겨누자 다급하게 견제에 들어간 것이다.
 
정부 출범과 함께 이뤄진 조선시대 사화(士禍) 수준의 적폐청산 때 전직 장군과 검사, 변호사 등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영장 기각으로 강압수사 논란이 있었지만, 여권에선 검찰 개혁이란 말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수정안 발의의 배경엔 청와대 등 권력층에 대한 검찰 조사를 막고, 차기 정부 출범 이후에도 사정(司正) 수사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수사 도중 고위 공직자 비리가 발견되면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고,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조항은 뭘 의미하나. 조국 사건을 포함해 ‘3대 게이트’ 사건은 모두 검찰이 수사할 수 없게 하는 구조다. 본래 법안과는 달리 국회 동의 없이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고, 검사와 수사관들이 각각 9년과 12년 동안 근무할 수 있게 한 것은 자신들만의 진지(陣地)를 구축하겠다는 속셈이 있는 것 아닌가. 공수처를 강행하면 민변을 위한 또 하나의 일자리 만들기가 이뤄지는 것이란 비판에서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관들에 대한 기소는 가능케 하고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은 속 빠져나가는 것은 얌체 짓이나 다름없다.
 
수정안에 대한 비난 여론이 계속되자 권은희 의원이 또 다른 수정안을 냈지만, 근본적으로 큰 차이는 없다. 수사 이첩 요구 조건을 완화하고, 직원들의 임기를 줄인다고 검찰 개혁이 이뤄질까.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한국당은 물론 선거법 통과에 매달렸던 친여 성향의 군소 정당들도 이 법안의 본래 취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 줄 것을 촉구한다. 우리의 헌법정신은 자유민주적 통치구조의 기본 이념과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과잉 입법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한 민주적 통제의 필요성이 중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괴물 사정기관을 만드는 공수처 법안은 폐기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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