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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연금 독립성 없이 기업 경영엔 간섭하겠다는 건가

중앙일보 2019.12.30 00:29 종합 34면 지면보기
국민연금이 경영계 반발에도 불구하고 경영 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확정했다. 횡령·배임·사익편취 등으로 기업 가치가 추락했다고 판단되면 국민연금이 투자 기업의 정관 변경, 이사 해임 등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튼 셈이다. 지난달 가이드라인 시안이 발표됐을 때 재계의 반대에 부닥쳐 일부 내용이 보완됐다고는 하나 큰 틀에서 바뀐 것은 없었다.
 
국민연금의 자의적 잣대와 판단으로 기업 경영권이 위협받게 됐다는 재계 반발을 기우라고만 할 수는 없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유죄 확정 단계가 아닌 수사·조사 단계에서 이사 해임을 추진하는 등 경영 개입 강도를 한층 높였다는 점이다. ‘합리적이지 않은 배당’이나 ‘적정하지 않은 임원 보수 한도’를 개입 대상으로 삼은 것도 모호한 측면이 있다.
 
기업 경영진이 주주에게 책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일부 기업에서 일고 있는 오너 일가를 둘러싼 잡음을 보면 더욱 그렇다. ‘오너 리스크’를 견제함으로써 장기 수익률을 높이겠다는 가이드라인의 취지가 전혀 일리가 없다고 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를 생각하면 이런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는 정치적 중립성과 투자 전문성 측면에서 신뢰가 부족하다.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는 20인으로 구성된 기금운영위원회다. 당연직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장관 외 정부 인사가 5명이나 된다. 사용자단체와 가입자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된 나머지 구성원도 전문성과 중립성에서 의심을 사고 있다. 우리 국민연금의 최근 10년 평균 수익률은 투자 전문가가 의사 결정의 중심에 있는 캐나다 국민연금(CPP)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민연금이 정치적 목적에 이용됐다는 논란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배구조는 현 정부 들어 그대로 이어졌다.
 
현재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은 전체 상장사의 40%에 가깝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 개입의 길을 자꾸 넓히다 보니 ‘연금 사회주의’ ‘기업 옥죄기’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활발한 투자와 이를 기반으로 한 성장 추구는 어려워진다. 내년 주총 시즌 전 이런 우려를 반영한 보완장치가 마련돼 기업의 경영권 불안을 덜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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