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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의 퍼스펙티브] 고삐 풀린 국가의 빚, 스위스식 제동 장치 시급하다

중앙일보 2019.12.30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국가 채무 이대로는 안 된다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민주 국가에서는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 때문에 국가 지출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유권자들이 세금 인상을 싫어하기 때문에 재정 적자가 발생하고 국가 채무는 늘어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뷰캐넌은 이런 경향을 ‘적자 속 민주주의’(democracy in deficit)라고 했다. 그는 헌법에 엄격한 재정 원칙을 규정하여 정치인을 통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오늘의 국가 채무는 내일의 세금’ 경고 명심해야
채무제동장치로 재정 남발에 제동 걸지 않으면
‘포용국가’ 내건 문재인 정부가 ‘착취국가’ 문 열 수도
베네수엘라·그리스 경제 파탄, 우리 일이 될 수 있어

실제 헌법에 재정 운영 원칙을 규정하여 국가 채무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독일 등 다른 나라에 채무 관리 모델을 제공하는 있는 나라로 스위스를 들 수 있다. 스위스는 1958년부터 연방헌법에 재정 적자의 감축을 요구하는 규정을 두어 채무 증가를 억제했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 경제 성장이 둔화하고 연금 등으로 지출이 증가하면서 연방 채무는 90년 380억 프랑에서 98년 1100억 프랑으로 3배 가까이 급증하였다. 헌법의 느슨한 재정 원칙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의회가 한도를 넘는 지출 정책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에 스위스에서는 보다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채무제동장치(Schuldbremse)를 연방헌법에 도입하게 되었다(제126조). 2001년 6월 22일 연방의회는 채무제동장치를 도입하는 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2001년 12월 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84.7%와 26개 주(칸톤)가 모두 찬성했다. 채무제동장치는 이때 사용된 국민투표 안건의 제목에서 유래한다. 채무제동장치는 2003년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헌법에 채무제동장치 도입한 스위스
 
스위스 채무제동장치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내용으로 이뤄진다. 첫째, 연방은 지출과 수입의 균형을 지속해서 유지해야 한다(균형 예산의 원칙). 둘째, 지출 총액의 최고 한도는 경제 상황을 고려하여 예상 수입 총액에 맞추어야 한다(지출 상한액의 제한). 셋째, 특별한 재정 수요가 있는 경우에는 연방의회가 특별 정족수로 의결하여 지출 상한액을 인상할 수 있다(예외의 인정). 넷째, 수입 총액을 넘는 지출 초과액은 후속 연도에 상환돼야 한다(제재 메커니즘). 다섯째, 구체적인 것은 법률로 정한다(입법 의무). 스위스의 채무제동장치는 지출 상한선을 엄격하게 규정하는데 특징이 있다. 예외조항을 두어 재정 탄력성을 인정하지만, 초과 지출에 대한 제재 조항을 두어 강력한 통제를 함으로써 채무제동장치의 실효성을 보장한다.
 
스위스 연방헌법의 재정통제장치는 연방정부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지방정부(칸톤)에는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엄격한 채무제동장치를 칸톤 헌법에 도입했다. 이러한 칸톤의 자발적인 재정제동장치 도입은 스위스의 채무 증가를 억제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일정한 금액을 초과하는 지출에 대해서는 주민투표로 주민들이 거부할 수 있도록 하여 지방정부의 채무를 통제하는데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재정주민투표).
 
스위스의 채무제동장치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효력을 발생한 헌법상의 채무제동장치 덕분에 2006년에 균형 예산이 완전히 실현되고 연방의 채무 비율은 감소하기 시작했다. 채무제동장치는 스위스가 재정 위기와 경제 위기를 무난히 극복하는 데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상당히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채무제동장치는 엄격하게 준수되었을 뿐만 아니라 초과 달성되었다. 2006년과 2007년의 경제 성장과 2010년의 신속한 재정 위기 극복도 영향을 미쳤다. 2005년도에 1300억 프랑으로 최고 수준에 달한 연방 채무는 지속해서 감소하여 2018년에는 1000억 프랑 이하로 떨어졌다. 스위스 전체의 채무 비율은 48%에서 30%로 낮아졌다.
  
너무 빠른 국가채무 증가 속도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스위스의 채무제동장치는 스위스 국내의 채무를 획기적으로 감축하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전파됐다. 스위스가 국가 채무를 갚으려고 노력하는 동안 유럽의 다른 나라들은 채무를 늘려갔다. 2008년 재정 위기가 시작되면서 많은 나라는 세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막대한 채무를 갚는 것이 어렵게 됐다. 중앙은행과 정부는 은행과 국민 경제의 마비 상태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더 많은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었다.
 
2006년 독일의 채무는 거의 2조60억 유로에 달했다. 2010년 채무 비율이 82.5%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연방정부는 채무제동장치를 헌법에 도입하기로 했다. 스위스의 채무제동장치에 큰 영향을 받았다. 2009년에 연방하원과 연방상원은 모두 3분의 2 이상의 의원이 찬성하여 채무제동장치를 도입하는 헌법개정안을 확정했다(제109조 제3항). 2011년 회계연도부터 채무제동장치가 적용됐다.
 
독일의 채무제동장치는 연방과 주가 채무에 의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균형 예산을 이루도록 요구한다. 주 정부의 신규 채무는 경기 변동과 상관없이 구조적으로 금지하고, 연방에 대해서는 채무에 의한 재정 충당을 최대한 명목국민소득 대비 0.35%로 제한한다. 자연재해나 경제 위기에는 예외를 허용하지만, 상환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경기 주기적인 균형 재정을 일정한 방식으로 허용함으로써 자동으로 안정을 보장한다. 대다수의 주 헌법에도 채무제동장치가 도입됐다.
 
2009년에 독일이 채무제동장치를 도입한 이래 스페인·이탈리아·불가리아 등 유럽 국가들이 뒤따르고 있다. 2012년 새로 체결된 재정협약에 따라 17개의 유로 국가들은 채무제동장치를 헌법적 수준으로 규정할 의무를 부담하게 됐다.
 
우리나라에서 역대 정부는 국가 채무를 엄격하게 억제해 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하여 국가채무비율이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에 국가채무비율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복지 정책을 확대하고 정책 실패를 국가 재정으로 덮는 확대재정정책을 채택하면서 국가 재정에 적신호가 켜졌다. 국가의 수입이 국가의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는 재정 적자가 예상되고 국가 채무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국가 채무 10년 만에 두 배 늘어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국가 채무는 735조원에 이른다. 10년 전(2009년)보다 두 배나 늘었다. 9년 뒤인 2028년에는 국가 채무가 1490조원을 넘어 다시 두 배로 급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에 우리나라만 국가채무비율을 40% 이하로 유지해야 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역대 정부에서 불문율로 지켜왔던 국가 채무의 마지노선마저 무너지려 한다.
 
애덤 스미스와 더불어 고전 경제학을 대표하는 리카르도는 “오늘의 국가 채무는 내일의 세금이다”라고 경고했다. 독일의 납세자연맹이 정치인에게 보내는 경고로 자주 사용하는 문구가 됐다. 현세대의 복지 지출을 충당하기 위한 국가 채무는 다음 세대의 세금 부담이 된다. 엄격하고 실효성 있는 채무제동장치를 시급하게 도입하여 방만한 국가 재정 운영에 빗장을 걸지 않으면 ‘포용 국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가 미래 세대의 등골을 휘게 하는 ‘착취 국가’의 문을 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와 그리스의 경제 파탄이 남의 나라 일로 보이지 않는다.
 
키워드
적자 속 민주주의(democracy in deficit)
198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이 주창한 용어. 민주 국가에서 정부는 미래의 인플레이션을 무릅쓰고라도 당장 유권자들의 인기를 끌 수 있다면 돈을 기꺼이 푸는 경향이 있다. 미국·일본·독일 등 주요 국가들이 만성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이유도 민주정치 제도의 문제점 때문이라고 뷰캐넌은 설명한다.


확대재정정책
경기가 나쁠 때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적게 부과하여 경기 회복을 꾀하는 재정정책. 경기 부양을 위한 또 다른 정책에는 금리 인하, 통화량 증가 등을 통해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확대통화정책이 있다. 반대로 경기가 과열됐을 때는 긴축재정정책 또는 긴축통화정책으로 경기를 진정시킨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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