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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초등생까지 연단서 “검찰개혁”…광장 1년 내내 둘로 쪼개져

중앙일보 2019.12.30 00:03 종합 12면 지면보기
주말인 28일에도 보수·진보 집회가 서울에서 각각 열렸다.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서초달빛집회 참가자들이 조국수호·검찰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주말인 28일에도 보수·진보 집회가 서울에서 각각 열렸다.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서초달빛집회 참가자들이 조국수호·검찰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도심은 올해의 마지막 주말까지도 둘로 쪼개졌다. 28일 오후 서초동에선 ‘달빛집회’ 참가자들이 법원의 ‘조국 구속영장 기각’ 사실을 놓고 ‘우리가 이겼다’고 외쳤다. 같은 시각 광화문에선 10여개 보수단체가 “영장을 재청구하라”며 가두 행진을 벌였다. 집회가 무르익자 이들은 각각 ‘검찰 개혁’과 ‘정권 퇴진’을 부르짖었다.
 

마지막 주말까지 보수·진보 집회
4·19, 월드컵 땐 민주화·통합 광장
2019년엔 진영 논리가 갈등 조장

시민 목소리 다양한데 선동에 묻혀
“제도로 갈등 푸는 대의민주 강화를”

서초동 집회 연단에 오른 한 초등생은 “이번에 학교에서 주는 표창장을 받아도 되는지 엄마에게 물었더니 받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며 “엄마가 매주 서초동에서 검찰개혁을 외쳤기 때문에 상을 받으면 검찰 조사를 받을 수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검찰이 왜 죄 없는 사람을 가두는지 알 수 없다, 떳떳하게 표창장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광화문 집회에 남편 및 두 아이와 함께 나왔다는 30대 여성은 “이대로 가면 아이들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 작은 힘이라도 실어주고 싶었다”며 “문재인 정권의 입맛에 맞게 독재 정치가 이뤄지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옆에 앉은 5살, 6살 난 아이들을 바라보며 “국민의 힘이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데려왔다”고 설명했다.
 
2019년 대한민국의 광장이 둘로 나뉜 이유는 뭘까. 그 동안 한국인에게 광장은 의미가 각별했다. 1960년 4·19 혁명과 2002년 월드컵 응원처럼 광장은 민주화와 통합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대립과 분열, 갈등과 혼란의 기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9일 ‘김대중 전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주년 학술회의’ 강연에서 “두 집회 군중들 사이의 진리는 결코 같지 않다. 정치 갈등이 격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말인 28일에도 보수·진보 집회가 서울에서 각각 열렸다.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주말인 28일에도 보수·진보 집회가 서울에서 각각 열렸다. 문재인하야범국민투쟁본부 주최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의 지적처럼 서로 다른 의견은 토론을 통해 합의가 가능하지만, 서로 다른 진리는 양립할 수 없다. 단편적인 사실의 조각이 모여 진실이 되고, 진실을 믿고 추종하면 진리가 된다.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도 마찬가지다. 각자 생각하는 사실과 믿고 싶은 진리가 다르다. 그 때문에 애초부터 이성적 대화는 불가능하다. 2019년의 광장이 이전과 가장 다른 지점이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의 광장엔 다수가 동의하는 실체적 진실과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가치의 방향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87년 6월 항쟁도 학생운동 세력이 주축이 됐지만 넥타이 부대와 같은 다수의 중산층이 참여했기 때문에 민주화를 이끌어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촛불시위도 국정농단이라는 공통된 진실을 접한 시민들이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방향성을 갖고 거리로 나왔다.
 
그러나 올해 두 개의 집회는 다르다. 이른바 ‘조국 사태’로 촉발된 2019년의 광장엔 다수가 동의하는 실체적 진실도, 미래를 향한 발전적 가치도 찾기 힘들다. “합리적인 명분과 논리보다는 ‘세 대결’과 진영 논리에 치중해 있기”(김중백 교수) 때문이다. 지난 9월 28일 서초동에서 열린 첫 번째 ‘조국 수호’ 집회에선 주최 측 추산 200만 명이 참가했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 10월 3일 광화문에선 ‘조국 반대’ 집회에 300만 명이 참여했다며 맞불을 놨다.
 
집단행동은 온라인 광장인 포털에서도 치열했다. 8월 27일 오전 검찰이 ‘조국 관련 기관을 압수수색 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조국 힘내세요’가 실검 1위에 올랐고, 이에 질세라 반대 진영의 ‘조국사퇴하세요’가 2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2019년의 온·오프라인 광장은 심각한 진영 논리로 물들었다. 정치와 시민사회가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을 이루지 못하고, 정치에서 촉발된 진영 논리가 시민사회까지 장악해 ‘수직계열화’ 했다.
 
윤성이 한국정치학회장(경희대 교수)은 이를 ‘편향성의 동원’으로 설명한다. “시민들의 다양한 이익과 갈등을 대의해야할 정치가 자신에게 정략적으로 유리한 이슈를 내세워 갈등을 조장하고 지지자를 동원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다양한데 정치엔 오직 2개의 진영 논리만 있다”고 지적했다.
 
‘편향성의 동원’은 주로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작동한다. 그런 의미에서 적폐·친일 논쟁도 과거의 색깔론·지역주의와 포장만 다를 뿐 본질은 비슷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법안을 반대하면 적폐이며 외교 문제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면 친일·토착왜구로 몰리는 상황이 대표적이다.
 
진보 진영의 대표논객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28일 페이스북에 “친문 세력은 ‘구속=유죄, 불구속=무죄’라는 이상한 등식을 내세워 여론몰이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선동에는 항상 논리적 오류가 사용된다. 걱정스러운 것은 청와대마저 똑같은 프레임으로 세계를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중백 교수는 대안으로 “다양성이 존중받는 열린사회”와 함께 “시민의 이익과 갈등이 제도 정치로 수렴될 수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강화”를 제시했다. 최장집 교수도 “다원적 통치체제로서 대의민주주의 대신 직접민주주의를 진정한 민주주의로 이해하고, 모든 인민을 다수 인민의 ‘총의(總意)’에 복종하도록 강제하는 틀은 전체주의와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보 vs 보수’ ‘개혁  vs  수구’처럼  확실한 구분과 치열한 투쟁을 지향하는 것은 칼 슈미트와 접맥된다”고 밝혔다. 슈미트는 독일 나치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학자다.
 
편향성의 동원(mobilization of bias)
샤츠슈나이더(Shattschneider)가 정리한 이 현상은 정치 엘리트가 자신에게 유리한 시민 동원 구도를 만들기 위해 인위적으로 갈등구조를 만들어 내거나 다른 갈등구조를 억압·은폐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갈등이 더욱 부풀려지거나 축소돼 특정 갈등구조가 부각된다.
 
윤석만 사회에디터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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