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윌리엄·해리 “우리도 아팠어요, 마음 상처 편히 말하세요”

중앙일보 2019.12.30 00:03 종합 14면 지면보기
“수백만명이 정신건강 문제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황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될 새로운 방법이 있다.”
 

마음의 병 우울증 ③<끝>
우울증 편견 깨는 해외 셀럽들
왕자 부부, 마음 병 해결 홍보 나서
영국 “로열패밀리가 경험 공유
우울증 터놓고 얘기하게 만들어”

머라이어 캐리, 드웨인 존슨도 고백
“사람 안 가리는 병, 공개하고 치료를”

지난 10월 7일 프라임타임(황금시간대)인 오후 9시쯤 영국의 ITV, Channel 4, Sky 등에 이런 메시지가 담긴 3분짜리 영상이 방송됐다. 우울증이나 수면장애 등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가 새로 선보인 온라인 플랫폼 ‘에브리 마인드 매터스’(Every Mind Matters)를 홍보하는 것이다. 영상이 주목을 받은 건 목소리 주인공 때문이었다. 왕실의 젊은 4인방인 윌리엄 왕세손 부부와 해리 왕자 부부가 총출동해 내레이션에 참여했다. 이 영상에서 이들 부부는 정신질환자가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웹사이트에 접속해 도움을 받아라고 강조한다.
 
“정신질환 공개 꺼리는 분위기 달라져”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유명인사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고백하고 치료를 권하는 데 적극적이다. 사진은 윌리엄 왕세손·해리 왕자 부부등 영국 왕실 가족들. [AP=연합뉴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유명인사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고백하고 치료를 권하는 데 적극적이다. 사진은 윌리엄 왕세손·해리 왕자 부부등 영국 왕실 가족들. [AP=연합뉴스]

영국은 이렇게 왕실이 나서 정신 건강 관련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인다. 정신질환은 누구나 있을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왕실까지 뛰어든 건 영국에서 정신 건강 문제가 그만큼 주요한 사회 이슈로 부상해서다. 최근 영국 공중보건국(PHE)이 3000명 넘는 성인을 조사한 결과 10명 중 8명(83%)은 지난 1년간 불안·스트레스·수면장애 등 정신 질환 초기 징후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6명 중 1명은 항우울제를 먹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영국에서 정신 건강 문제로 한해 쓰는 돈은 1000억 파운드(약 152조원)에 달한다.
 
왕실은 가족의 경험을 대중에 공개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없애는 데 힘을 보탠다. 해리 왕자는 어려서 어머니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잃은 후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201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당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목적이 “정신질환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의 형 윌리엄 왕세손은 지난 5월 영국 BBC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모친과의 사별 당시 아픔을 고백하면서 정신적 상처를 편하게 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윌리엄은 “영국인은 자신의 감정을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매우 힘들 때조차도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데, 때때로 (얘기하는 게)필요하다”고 말했다. 형제는 어린 시절 아픔을 바탕으로 정신건강 문제에 지속해 관심을 기울이며 여러 활동을 해왔다. 2016년엔 개개인의 정신적 상처를 더 솔직하게 털어놓도록 장려하는 ‘헤드 투게더’(Heads Together) 캠페인을 벌였다. 극단선택 충동, 학대, 괴롭힘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원하는 24시간 문자 기반 서비스인 ‘샤우트’(Shout)가 출범하기까지 형제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유명인사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고백하고 치료를 권하는 데 적극적이다. 사진은 미국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 [AP=연합뉴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유명인사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고백하고 치료를 권하는 데 적극적이다. 사진은 미국 팝스타 머라이어 캐리. [AP=연합뉴스]

미국에서도 셀럽(유명인)의 자기 고백이 이어진다. 지난해 팝스타 머리이어 캐리는 미국 생활연예 매체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오래 전부터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털어놨다. 캐리는 “2001년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신경쇠약으로 병원에 입원한 직후였다”라고 말했다. 그간 인터뷰에서 이를 밝히지 않은 건 “모든 걸 잃을까봐 너무 무서워서였다”라고 덧붙였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유명인사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고백하고 치료를 권하는 데 적극적이다. 사진은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 배우 드웨인 존슨. [로이터=연합뉴스]

미국과 영국 등 해외의 유명인사들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고백하고 치료를 권하는 데 적극적이다. 사진은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 배우 드웨인 존슨. [로이터=연합뉴스]

프로레슬링 선수 출신 배우 드웨인 존슨도 지난해 소셜미디어(SNS)에 "우울증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병을 공개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라.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며 투병 중인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말했다. 수영황제 마이클 펠프스는 지난해 한 포럼에서 “선수 시절 우울증을 앓은 사실을 공개한 뒤 내 삶이 어느 때보다 경쾌해졌다. 정신질환 환자 가족의 공감 편지와 지지가 금메달보다 훨씬 더 큰 기쁨과 감격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AP통신은 이런 사례를 들면서 “최근 몇 년간 정신질환을 둘러싼 오명이 줄면서 연예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이 건강문제를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출하는 게 새 규범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일반인이 존경하는 스타의 말 공감 커” 
 
셀럽의 고백은 편견을 깨는 첫걸음이다. 영국 기자 제인 메릭은 해리 왕자가 정신과 치료 경험을 고백한 뒤 CNN에 기고한 글에서 “불안과 우울증 등 정신 건강 문제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에게 가장 힘든 도전 중 하나는 공개적으로 그걸 얘기하는 것”이라며 “여전히 많은 이에게 금기사항이다. 사생활을 왕관의 보석처럼 철저히 지키는 로열패밀리 멤버에게 이례적인 일이다. 해리는 왕실뿐 아니라 사회가 정신건강을 논의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고 썼다.

관련기사

 
브루스 샤바즈 미국자살예방재단(AFSP) 공공정책 위원은 “유명인들이 공개적으로 ‘내가 예전에 정신건강 문제를 앓았고 치료받았다’고 공공연하게 얘기해주는 활동이 중요하다”며 “일반인이 ‘내가 존경하는 사람, 되고 싶은 사람도 그런 일을 겪었구나’를 알게 되면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려도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정부뿐 아니라 민간이 나서 우울증 인식 개선에 힘 쏟고 있다. 국제구호 NGO인 ‘기아대책’과 롯데백화점이 2017년부터 하고 있는 ‘리조이스’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