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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 ‘으르렁’ 러블리즈 ‘아츄’…가사가 입에 착착 붙나요

중앙일보 2019.12.30 00:03 종합 25면 지면보기
2012년부터 170여곡에 노랫말을 붙인 작사가 서지음. ’작사가는 이미 완성된 곡에 숨을 불어 넣는 사람“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12년부터 170여곡에 노랫말을 붙인 작사가 서지음. ’작사가는 이미 완성된 곡에 숨을 불어 넣는 사람“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좀처럼 흘려 들을 수 없는 노랫말이 있다. 이를테면 “나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 대”라고 외치는 엑소의 ‘으르렁’이나 “Ah Choo 널 보면 재채기가 나올 것 같아”라고 살랑대는 러블리즈의 ‘아츄’ 같은. 듣는 순간 귓가에 꽂혀서 입가에 맴도는 가사를 흥얼거리다 보면 종종 서지음(본명 서정화·33)이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올 초 가온차트 뮤직어워즈에서 ‘올해의 작사가상’을 받은 그는 현재 아이돌 산업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사가다.
 

아이돌 전문 작사가 서지음씨
첫 에세이 『낭만이 나를 …』 펴내
“단어를 블럭처럼 갖고 놀아요”

이달 중순 출간된 첫 에세이 『낭만이 나를 죽일 거예요』(위즈덤하우스)는 그의 독특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비밀통로다. “물가에 가면 돌 줍는 것을 좋아하고(…)일상에서는 글씨 줍는 것을 좋아한다”는 그녀가 평소에 어떻게 글감을 수집하고, 다듬어왔는지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오지love도 있다”(‘5G럽’)나 “여기에 미아는 없는데 미어른은 천지다”(‘미(迷)어른’) 같은 토막글에서도 묘한 운율이 느껴진다. 아직 가사가 되지 않았을 뿐 언제고 멜로디를 만나 불려질 준비가 돼 있는 덕분이다.
 
서울 서소문에서 만난 서지음 작사가는 “초등학생 때부터 동시 쓰는 걸 좋아했다”며 “평소 친구를 만나거나 TV를 볼 때도 어느 한 곳에는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있는 편”이라고 말했다. “항상 낚을 준비를 해 놔야 새로운 낱말이 걸린다”면서다.
 
그에게 가사는 “엉뚱한 상상이 모두 가능하고 동화 속 환상이 일상이 되는” 세상이다. 그래선지 오마이걸의 ‘유성’, 엑소의 ‘월광’, 효린&창모의 ‘블루 문’ 등 유독 몽환적인 노랫말이 많은 편이다.
 
남다른 상상력이 그의 원천이긴 하지만 작사를 할 때는 ▶나는 누구인가 ▶듣는 사람은 누구인가 ▶무슨 상황에 있는가 등 세 가지를 염두에 둬야 한다고 밝혔다. “완벽하게 그 사람이 되어 말할 수 있어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탓이다. 그는 “처음 작업하는 팀의 경우 그동안 발표한 노래나 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찾아보기도 한다”며 “몬스타엑스처럼 랩 가사는 직접 쓰는 팀도 많기 때문에 멤버별 캐릭터도 파악해두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2012년 하동균의 ‘가슴 한쪽’으로 시작해 170여곡을 작사한 그의 히트 비결은 의외로 단순했다. 각 기획사나 작곡가로부터 가이드 보컬이 녹음된 파일을 잘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답은 그 속에 다 숨겨져 있어요. 작곡가의 의도도, 곡의 컬러도 그 안에 있으니 그걸 잘 읽어내야 해요. 소녀시대 태티서의 ‘트윙클’이나 레드벨벳의 ‘덤덤’은 아예 그 부분에 그 단어가 들어가 있었죠.”
 
그는 한글을 ‘애착블럭’처럼 가지고 노는 걸 즐긴다. 음절을 하나씩 쪼개고, 뒤집고, 붙이다 보면 새로운 단어가 탄생한다는 것이다. ‘과일바구니’라는 글에서 빨강·보라·파랑색으로 쓰여진 ‘감사과’를 예로 들었다. “감사와 사과, 두 단어 모두 ‘사’자가 들어가잖아요. 그럼 교집합은 두 가지 색깔이 더해졌을 때 나오는 보라색으로 보이는 거죠. 이상한가요. 하하.” 이야기하다가도 이따금 멈출 때면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단어의 분열과 조합이 일어나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작사가로서 이루고 싶은 다음 목표는 뭘까. 그는 필명처럼 “꾸준히 짓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음악이나 문학 전공자도 아닌 제가 실용음악학원 작사 과정을 듣다가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운이 좋았다고밖에 할 수 없죠. 지금은 아이돌 작업을 많이 하긴 하지만 언젠가 이선희, 아이유 같은 분들과 작업할 기회도 오지 않을까요. 목소리만으로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려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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