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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명 스님 떠난 봉암사…그곳엔 불자도 ‘수장’도 없었다

중앙일보 2019.12.30 00:03 종합 25면 지면보기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은 생전에 ’행복하자고,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한다“며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주인으로 선다“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은 생전에 ’행복하자고,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한다“며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때 주인으로 선다“고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경북 문경의 봉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단에서 37년 전에 ‘종립특별선원’으로 지정됐다. 수행 스님의 참선을 위한 수도도량이다. 부처님오신날에만 일반인 출입을 허락한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다. 1947년 성철·청담·자운·월산·혜암·성수·법전 스님 등이 “부처님 법대로만 살자!”며 봉암사에서 결사를 했다. 이를 계기로 독신 출가승이 중심이 된 조계종단이 우뚝 서게 됐다. 스님 사이에서 ‘봉암사에서 한 철(동안거 또는 하안거) 났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며 제대로 수행했음을 인정한다.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다비식
조실 거부하고 11년 빈자리 둔 채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 매진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임을 보는 것”
진정한 사랑 화두 남기고 떠나

28일 봉암사에서 적명 스님의 다비식이 열렸다. 적명 스님은 봉암사의 수좌다. 봉암사의 최고 지도자는 ‘조실’이다. 그런데 봉암사에는 조실이 없다. 11년 전에 봉암사 대중이 적명 스님을 조실로 추대했다. 그러나 적명 스님이 “나는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며 거절했고 지금도 공석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큰 용기’다. 만약 조계종단에 ‘깨달음을 이룬 큰 스승’이 없다면 종정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둘 수 있을까. 그런 ‘빈자리’를 되새기며 모든 수행자가 절치부심하면서 수행할 수 있을까. 조계종단에 과연 그만큼의 ‘큰 용기’가 있을까. 아니면 법에 대한 안목보다 원로 스님들의 ‘투표’와 ‘밀어주기’로 수장의 자리를 뽑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명 스님의 입적은 급작스러웠다. 올해 80세, 법납은 60세다. 적명 스님은 후배 도반들과 함께 봉암사 선방에서 동안거를 나고 있었다. 안거는 여름과 겨울 석 달씩 산문 출입을 하지 않고 선방에서 참선에만 매진하는 불교 수행을 일컫는다. 적명 스님은 지난 24일 동료 수행자들과 희양산에 올랐다.
 
희양산에는 마애불이 있다. 암벽 계곡의 바위에 새겨진 고려 말 양식의 불상이다. 적명 스님은 그 마애불 뒤에 있는 관음봉을 보고파 했다. 그래서 “천천히 가겠다. 먼저들 올라가시라” 하고선 홀로 갔다. “오랜만에 가보고 싶은 곳을 간다”며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적명 스님은 높은 곳에서 발을 헛디뎌 실족사한 것으로 보인다.
 
28일 적명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됐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는 외침과 함께 장작더미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사진 봉암사]

28일 적명 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됐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하는 외침과 함께 장작더미에서 불길이 솟아올랐다. [사진 봉암사]

적명 스님은 평소 수행의 이유를 명쾌하게 말했다. “행복하자고, 영원히 행복하자고 수행한다.” 그랬다. 90일간 선방에 갇혀서 대중과 함께 50분 좌선하고 10분간 포행(걸으면서 하는 참선)하는 안거는 적명 스님에게 ‘행복을 좇아가는 행복한 일’이었다. 그것도 잠시 맛보고 사라지는 ‘소멸의 행복’이 아니라, 눈을 떠도 서 있고 눈을 감아도 서 있는 ‘영원한 행복’ 말이다.
 
적명 스님은  ‘기꺼이 받아들임’을 강조했다. 그게 임제 선사가 설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를 가든지 주인이 되면 서있는 그곳이 진리가 되리라)’의 요지라고 했다. “삶이 죽도록 힘들다고 해서 절대 포기하면 안 된다. 그렇게 끊으려고 해도 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업장(業障, 우리가 지은 업으로 인한 장애) 때문에 결국 다시 태어나 고통을 반복해야 한다.” 그런 상황의 처방전을 내놓았다. “상대가 지독한 악인이라 해도 소중한 인연으로 여겨보라. 따뜻한 말 한마디부터 해보라. 내가 착해지면 그도 착해진다.”
 
어땠을까. 적명 스님이 급작스레 닥쳐올 죽음을 알았다면 기꺼이 받아들였을까. 그렇게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기꺼이 주인으로 섰을까. 적명 스님의 입적은 우리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진다. 갑작스런 고통, 갑작스런 슬픔, 갑작스런 죽음 앞에서 우리는 과연 ‘주인’으로 설 수 있을까. 28일 오전 영결식에서 적명 스님의 법문 중에서 골수를 담은 대목이 소개됐다.
 
“일상과 수행이 다르지 않다”


“철저히 각성하라
각성이 곧 변혁이고
변혁이 곧 기회이다”


“중도의 깨달음은 사랑이다
진정한 사랑이다”
“중도는 사랑입니다. 깨달음은 일체가 자기 아님이 없음을 보는 것입니다. 남이 바로 자기자신이며 자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는 사람이 깨달은 사람입니다. 중생이 불행하면 자신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중도의 깨달음은 사랑,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어서 전국선원수좌회 대표 영진 스님이 ‘적명 대종사 행장’을 낭독했다. “26세에 토굴에서 보조국사 지눌의 『절요』를 읽다가 ‘수행을 하려면 모름지기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는 대목을 읽고 마음에 크게 느껴 무(無)자 화두를 들기 시작했다”는 내용과 “28세에 해인사로 가서 1967년 해인총림이 개설되자 50대 방장 성철 스님이 방장에 추대되어 선풍이 일기 시작하자 가행정진한 이래 평생 선방을 떠나지 않았다”는 대목이 적명 스님 수행의 큰 줄기를 응축해서 보여주었다.
 
장의위원장을 맡은 대원 스님은 영결사에서 물음을 던졌다.
 
“부처님과 조사도 이와 같이 가셨고, 범부와 성인도 이와 같이 가셨으며 오늘 적명 대종사께서도 이와 같이 가셨습니다. 그러나 올 때도 온 바가 없고, 갈 때도 간 바가 없다고 하니 금일 대종사께서는 지금 목전에 있습니까? 없습니까?”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의정 스님은 조사(弔詞)에서 “불꽃같이 치열했던 수좌 본연의 모습도 모자라, 마지막 탈신의 순간마저도 사무치게 ‘제행무상 생사대사(諸行無常 生事大事)’의 도리를 일깨워 주시니 이 경계가 경사(慶事)입니까, 조사(弔事)입니까”라며 추도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라는 외침과 함께 불길이 타올랐다. 출가자와 재가자 대중은 침묵했다. 그 위로 적명 스님이 평소에 던지던 법문이 불꽃이 되어 사방으로 튀었다.
 
“일상과 수행이 다르지 않다!”
 
“철저히 각성하라. 각성이 곧 변혁이고, 변혁이 곧 기회이다!”
 
백성호 종교전문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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