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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군더더기를 비우는 시간

중앙일보 2019.12.30 00:02 경제 4면 지면보기
“배낭 안을 비워야 안에 뭘 넣을지 알게 되는 거 같아!” 이맘때쯤 생각나는 영화 대사다. 한 해를 마무리할 때가 되면 삶의 군더더기에 짓눌려 길을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시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동력을 얻으려면 먼저 비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말과 글도 다르지 않다. 아무런 뜻도 더해 주지 못하는 군더더기를 덜어 내면 글이 명확해지고 힘이 붙는다.
 
“오늘 수술이 예정된 상태라 향후 일정은 불투명한 상황이다”의 경우 ‘불투명하다’로 끝맺어도 충분하다. “오늘 수술이 잡혀 있어 향후 일정은 불투명하다”로 바꾸면 더 낫다. 상황·상태·형편·실정 등의 말이 끝부분에 들어갈 때 대부분 군더더기인 경우가 많다.
 
“피해자들이 집단소송 움직임도 보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에서도 상투적 어구인 “귀추가 주목된다”는 아무런 의미를 보태지 않는다. “~소송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로 끝맺는 게 낫다.
 
“그는 표결을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하는 길에 기자들에게 ‘슬프다’는 개인적인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에서 ‘개인적인’이란 단어는 굳이 필요 없다. ‘소감’ 자체가 마음에 느낀 바를 나타내는 사적인 것이므로 빼도 된다.
 
“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조사하기로 했다” “그림이 도난당한 것인지의 여부도 확인하기 어렵다”에선 ‘여부’가 사족이다. “보안법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조사하기로 했다” “그림이 도난당한 것인지도 확인하기 어렵다”로 써야 한다. ‘-ㄴ지’ ‘-ㄹ지’ 등의 어미가 둘 또는 여럿 가운데 어느 것인지 의문을 가지거나 추측함을 나타내므로 그 뒤의 ‘여부’는 필요 없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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