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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청년 마일스의 북한 사랑···고무보트 타고 압록강 건넜다

중앙일보 2019.12.28 05:00
마일스가 2015년 불법 입북을 계획하며 고무보트 도색을 하고 있는 과정을 셀프 촬영한 것. [NK뉴스 채드 오캐럴 제공]

마일스가 2015년 불법 입북을 계획하며 고무보트 도색을 하고 있는 과정을 셀프 촬영한 것. [NK뉴스 채드 오캐럴 제공]

 
미국 청년 마일스가 북·중 접경지역인 중국 단둥(丹東)의 압록강호텔에 도착한 건 2015년 8월 13일. 체크인 직후 그는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준비해온 검은색 고무보트와 유성매직을 꺼냈다. 보트에 인쇄돼있는 영어 브랜드 로고와 컬러링을 매직으로 지우고, 대신 한글로 ‘은혜’와 ‘화평’을 써넣었다. 이 보트를 타고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북한을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가 NK뉴스에 밝힌 이유였다.  
 
영어권 북한 전문 온라인 매체인 NK뉴스는 24일(현지시간) 마일스의 이야기를 단독 보도했다. 마일스는 NK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얼굴도 공개했지만 성(姓)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가족에게 혹시 해가 갈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이유다. 중앙일보는 채드 오캐럴 NK뉴스 대표를 통해 마일스의 사진 게재 허가를 받았다.    
 
마일스가 밀입북 전 압록강 상황을 살피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그가 도강을 위해 준비한 고무보트. 한글로 '은혜'와 '화평(평화)'를 새겼다. [NK뉴스 채드 오캐럴 제공]

마일스가 밀입북 전 압록강 상황을 살피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그가 도강을 위해 준비한 고무보트. 한글로 '은혜'와 '화평(평화)'를 새겼다. [NK뉴스 채드 오캐럴 제공]

 
마일스의 북한 사랑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는 NK뉴스에 첫 북한 방문은 2014년이었다고 소개했다. 북·중 접경 지역인 나선시에서 9개월간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NK뉴스는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나진·선봉을 경제개발 특구로 지정한 것을 고려하면 외자 유치를 위한 활동 지원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마일스는 당시 나선시의 북한 주민들과도 위화감 없이 잘 어울렸다. 당시 그가 찍었던 사진 중엔 ‘닫긴 옷’을 입고 주민들과 함께 환히 웃는 모습도 있다. 닫긴 옷은 단추가 다섯 개 달린 인민복 예복의 일종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착용했던 옷이다.  
 
마일스는 9개월 후 북한을 떠났지만 관광객으로 자주 북한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NK뉴스에 “9개월 동안 북한에서 지내면서 현지 주민에게 큰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관광객으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그는 현지 당국 관계자에게 “북한에 영구 거주하고 싶다”는 뜻을 피력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관계 당국은 그를 평양으로 보냈고, 고위급과의 만남도 주선했다.  
 
마일스가 2014년 북한 나선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NK뉴스 채드 오캐럴 제공]

마일스가 2014년 북한 나선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NK뉴스 채드 오캐럴 제공]

 
문제는 그때 생겼다. 그의 몸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던 것. 그가 인생의 큰 결정을 앞두고 갑자기 몸이 아팠던 것인지 꾀병이 난 것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컨디션 난조로 북한 고위급과의 만남에 참석하지 못했고, 북한에서 곧 추방됐다. 일종의 괘씸죄였다.  
 
이후 그의 북한행은 난관에 봉착했다. 여행사들은 갑자기 그의 예약을 받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밀입북을 준비했고, 압록강호텔에 그렇게 체크인을 했다.  
 
압록강 도강(渡江)을 위한 계획도 치밀하게 준비했다. 압록강 인근을 답사하며 최단시간 가장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지점을 찾았다. 모든 과정은 사진으로 남겼고, 중국 현지폰을 이용해 클라우드에 저장했다. 압록강 도강에 성공한 직후, 여전히 연결이 양호했던 중국 현지폰을 통해 트윗까지 올렸다. “방금 반대편(북한)에 도착. 아름답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자비와 사랑이다. 일단 지금은 즐거운 나의 집.” 트위터 계정 이름도 ‘북한의 친구(Friend of DPRK)’였다.    
 
마일스가 2015년 압록강을 건너 밀입북한 뒤 올린 트윗. "방금 반대편(북한)에 도착. 아름답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자비와 사랑이다. 일단 지금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썼다. 트위터 계정도 '북한의 친구'라고 명명했다. [트위터]

마일스가 2015년 압록강을 건너 밀입북한 뒤 올린 트윗. "방금 반대편(북한)에 도착. 아름답다. 이제 내게 필요한 건 자비와 사랑이다. 일단 지금은 즐거운 나의 집"이라고 썼다. 트위터 계정도 '북한의 친구'라고 명명했다. [트위터]

 
그의 고무보트 밀입북은 성공했고, 그는 바로 북한의 신의주 압록호텔로 끌려갔다고 한다. 그는 NK뉴스에 “강도 높은(intense) 조사를 받았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선처를 호소하는 편지도 썼다”고 말했다. 9주 간 조사를 받은 뒤 그는 10월에 풀려나 추방됐다.  
 
마일스의 북한에 대한 애정은 특이한 사례다. 그와 또래인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마일스의 밀입국 약 2년 뒤인 2017년 방북 과정에서 체포돼 고문을 받은 뒤 결국 사망했다.
 
마일스를 놓고 미국 국무부도 고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국무부는 NK뉴스의 관련 질의엔 “미국 국민의 안전에 관련된 사항으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으나 마일스가 제공한 e메일 사본 등에 따르면 국무부는 계속 마일스의 가족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그의 상태를 확인했다.  
 
마일스는 여전히 방북을 꿈꾼다고 한다. NK뉴스가 기사와 함께 공개한 팟캐스트에서 그는 “난 여전히 북한을 사랑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에게 전할 메시지도 있으니 다시 북한에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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