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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소박맞은 신부가 구렁이로 변한 사연

중앙일보 2019.12.27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옛이야기(49)

 
아주 오래 전엔 혼례를 마친 뒤에야 서로 얼굴을 봤다는 신랑,신부가 많았다. 첫날밤 신부 얼굴을 처음 본 신랑이 놀라서 도망가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이유다. [사진 pixabay]

아주 오래 전엔 혼례를 마친 뒤에야 서로 얼굴을 봤다는 신랑,신부가 많았다. 첫날밤 신부 얼굴을 처음 본 신랑이 놀라서 도망가는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이유다. [사진 pixabay]

 
몇 년 전, 결혼식을 올린 지 하루 만에 신랑이 신부를 사기죄로 고소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신랑 눈에 신부는 매우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였기에 결혼도 결심한 것이었는데, 결혼식 다음 날 아침에 처음으로 신부의 민낯을 마주했을 때, 신랑은 집에 도둑이 침입한 줄 알았다고 한다. 놀란 신랑은 사기죄로 신부를 고소하면서 정신적 피해 보상까지 청구했다.
 
무엇이 그리도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일까. 화장으로 얼굴을 덮으면서 진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신랑을 속인 것이 되는 걸까. 화장을 지우고 보니 생각만큼 예쁘지 않은 것이 그렇게도 실망스러운 일이 되는 것일까.
 
예전 시대에는 집안끼리 혼사를 정하고 신랑 신부는 혼례를 마친 뒤 첫날밤에야 서로 얼굴을 보기도 했기에,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첫날밤 신부 얼굴을 처음 본 신랑이 놀라서 도망가는 것이다.
 
한 남자가 장가를 갔는데 첫날밤 처음 얼굴을 본 신부가 너무 박색이었다. 놀란 신랑은 그 자리에서 도망 나와, 그 이후로는 처가에 발길을 끊었다. 홀로 방에 남은 신부는 그만 원혼이 되어 형상이 변해가기 시작했다. 발끝부터 차츰차츰 구렁이로 변해간 신부의 몸은 짚동같이 커져서 방 한가득 들어찰 정도가 됐다. 구렁이가 요동칠 때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놀랄 지경이라 철망을 쳐서 가둬놓았는데, 그 뒤부터는 구렁이가 밤마다 산이 찢어질 듯 천둥 치는 소리로 울어댔다.
 
도망간 신랑은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길에 그 마을을 지나게 되었고, 비를 피하려 주막에 들렀다가 구렁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전후 사정을 다 알게 된 신랑은 옛 신부 집에 찾아갔다. 장인은 “그 짐승이 해치기라도 하면 어쩌느냐”며 말렸지만 신랑은 기어이 신부가 있던 방에 들어갔다. 온몸이 구렁이로 변한 채 얼굴만 남아 있던 신부는 신랑을 보자 눈물을 흘리며 “당신 왔으면 내 곁에서 하루 저녁 자고 가시오” 했다. 신랑이 그날 밤 신부와 함께 자고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신부는 구렁이 허물을 말끔하게 벗고 제 모습을 찾았다.
 
첫날밤 신랑이 도망가는 데에는 이유도 다양해 여러 각편이 있다. 위 이야기처럼 신부가 너무 못생겨서 도망치기도 하고, 방문에 나무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고 신부에게 딴 남자가 있다고 생각해서 도망치기도 한다. 신부에게 딴 남자가 있다는 오해는 계모 모함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아무튼 결혼 첫날밤 신랑들은 도망을 가버린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신부가 순결하지 못하거나 단지 못생겼기 때문에.
 
예전 시대에는 집안끼리 혼사를 정하고 신랑 신부는 혼례를 마친 뒤 첫날밤에야 서로 얼굴을 보기도 했기에,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중앙포토]

예전 시대에는 집안끼리 혼사를 정하고 신랑 신부는 혼례를 마친 뒤 첫날밤에야 서로 얼굴을 보기도 했기에, 우리에게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중앙포토]

 

순결한 신부에 대한 강박

상황 파악을 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자신이 상상하거나 믿었던 모습에서 벗어나면 견디지 못하는 태도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신부의 맨얼굴을 보고 놀라는 마음, 혹시 딴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심지어 그 딴 남자가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등의 저 깊은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남녀 모두에게 공히 자리 잡고 있는 순백의 드레스와 면사포가 갖는 ‘순결한 신부’에 대한 강박일 수 있겠다. 그 안에는 ‘신부는 순결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대원칙이 도사린다. 그러나 이것은 순백의 껍질 안에 감추어진 검은 욕망이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식 때 입은 새하얀 웨딩드레스는 기독교적 가치 안에서 철저하게 가정에 복무하는 성실하고 순종적인 여성, 아내의 역할을 담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세상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로부터 순백의 웨딩드레스 전통이 비롯됐다. 백색의 순결함은 때 묻지 않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곁에 있는 다른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여성에게 전통적으로 요구되는, 가족을 위한 성실한 희생 봉사의 정신을 드러내는 데에 순백의 웨딩드레스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겠다.
 
웨딩드레스의 흰색은 때 묻지 않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곁에 있는 다른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진 pixabay]

웨딩드레스의 흰색은 때 묻지 않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곁에 있는 다른 색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사진 pixabay]

 
우리의 전통으로 보자면, 조선 시대에 왕실에서나 입던 원삼과 활옷이 시대 흐름에 따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허용되기 시작했다. 혼례 때만이라도 화려함을 추구할 수 있다는 허용이다. 즉 생애 최고로 화려한 복식으로 치장함으로써 가치를 갖는 것이 혼례복이다. 연지, 곤지, 족두리와 원삼, 활옷, 도투락댕기의 화려함은 서민에게도 일생에 한 번 허용되는 사치이자 혼례의 신성함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신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사모관대로 의관을 정제하고 최대한 예를 갖추어 식을 거행해야 했다.
 
외신이 전한 신부를 고소한 신랑이나, 이야기 속 신부에게 소박을 놓은 신랑이나, 이들에겐 신부가 일생을 함께할 동반자이기 이전에 ‘데리고 살 예쁜 여자’였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는 순백이 상징하듯 순결해야 하고, 거짓 없이 깨끗하고 예뻐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가정을 위해 충실하게 복무하는 아내, 엄마, 주부가 될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결국 신부를 구렁이로 변하게 했다. 여성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도 그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했을 때 구렁이 형상은 발밑에서부터 차오르는 것이다. 구렁이가 된 여성이 토해내는 귀곡성은 혼자만의 슬픔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온 마을을 두려움에 떨게 한다. 이게 핵심이다. 남성에 의해 타자화된 여성은 세상을 병들게 하는 존재가 된다. 오히려 받아들여지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에 두려운 존재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모두가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순결하고 아름다운 신부’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미모나 순종적인 태도, 가정에 헌신하는 자세 등이 여성의 미덕은 아니다.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연구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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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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