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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대학 발 사회혁신 2

중앙일보 2019.12.27 00:35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기업과 사회가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창출하는 공유가치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이 새로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소비자의 수요에 맞추어 보다 좋은 제품을 보다 싼 가격에 공급하기만 하면 되었던 시절이 있었다면, 기업수익을 자선과 기부의 형태로 사회에 환원하는 전통적인 CSR 시대를 넘어, 비즈니스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창조적이고 혁신적으로 해결함으로써 기업과 사회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공동의 가치를 창출하는 CSV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사회적 가치 창출을 새로운 경영 패러다임으로 내건 SK 기업의 광고 문구는 이를 기업과 사회가 ‘짝’을 이뤄 함께 성장하며 서로를 ‘업(UP)’할 수 있다고 표현한다. 간단한 예로, 환경친화적 제품을 개발·생산하여 매출과 환경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대학과 지역의 연계를 통한
공유가치창출(CSV) 이 급부상
지역참여형 교육 혁신을 통한
대학 발 사회혁신 모색할 때

대학을 논하면서 기업 얘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대학의 사회적 책임 논의에서도 CSV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학의 사회적 책임은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큰 틀에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성과 품성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고 세계적 수준의 연구성과를 창출하여 국가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하는 게 대학의 궁극적인 사회적 책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입학생 선발 과정에서 공정한 기회와 다양성을 확보하고, 대학의 교수와 직원 임용에 있어 여성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며, 대학 운영에 있어 환경, 인권, 노동 관행, 민주적 거버넌스 등 제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대학의 사회적 책임이다. 대학의 각종 자원봉사 활동과 지역사회를 위한 평생교육 또한 대학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방법의 일환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기업의 CSV에 비견되는 대학의 CSV 모델에 주목한다. 소위 ‘상아탑(ivory tower)’ 모델과 대조되는 대학의 ‘사회적 참여(civic engagement)’ 모델이라 할 수 있다. 대학이 지역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사회와 자원과 가치를 공유함으로써 한편으로 교육·연구의 혁신이 가능하고 다른 한편 지역사회의 혁신 또한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혁신을 통한 지역사회의 혁신을 말한다.
 
필자는 지난 4월 18일 자 ‘중앙시평’에서 이를 ‘대학 발(發) 사회혁신’이라 명한 바 있다. 지역참여형 수업 프로젝트를 통해 교육과 연구의 수월성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학생들을 사회적 가치에 민감한 공적·민주적 리더로 양성하고, 나아가 지역의 발전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필자의 이번 학기 수업도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도와 관악구 주민자치회를 대상으로 지역참여형 교육을 시행했다. 이어 출판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참여 관찰 및 사례연구를 수행하면서, 관악구민을 위한 서울시 주민참여예산 제안서를 실제 작성하여 제출하는 식으로 진행하였다.
 
최근 필자는 서울대학교 곳곳에서 수많은 참여형 교육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 본부 차원에서 ‘글로벌사회공헌단’이 주도하는 사회공헌형 교과목이 매년 40여 개 개설되고, 사회공헌교수협의회가 조직한 교수 사회공헌 박람회에 115개에 이르는 포스터 전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필자가 속한 사회과학대뿐 아니라 의대·공대를 위시하여 여러 단과 대학(원) 수준에서 다양한 지역참여형·사회문제해결형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다. 관악구와 서울대 간 관학 협력사업 중 법대의 프로보노 법률 서비스와 경영대의 소상공인 경영 컨설팅 프로그램이 귀에 들어왔다. 비록 지역참여형 교육을 기치로 내세운 건 아니지만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도 눈에 띄었다.
 
조만간 기초적인 조사에 착수할 예정이지만, 전국적으로 여러 다른 대학에서도 이러한 지역사회 참여형 교육을 이미 시도하고 있거나 아마 최소한 상당한 관심을 보이리라 생각한다. 포항의 포스텍 인문사회학부도 공대생들을 위한 지역사회 참여형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이러한 혁신적 대학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 수요 또한 광역지자체, 기초지자체, 공공기관, 기업 포함 다양하게 존재한다. 국제적인 흐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적으로 선도적인 주요 대학일수록 대학 지속기능보고서를 작성·공개하는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영국의 ‘타임스 고등교육(The Times Higher Education)’은 기존 수월성 위주의 세계대학 순위에 더해 대학의 사회적 영향력을 평가하는 ‘세계대학 영향력 순위(University Impact Rankings)’를 발표했다.
 
이쯤 되면 중앙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정책적 지원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난 칼럼에서도 제안했지만, 각 지역 거점대학을 혁신 플랫폼으로 키워 ‘대학 발(發) 사회혁신’ 생태계를 전국적으로 조성하는 방안이 있다. 영국이 이미 실험한 방식이기도 하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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