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용호의 직격인터뷰] 풀무원·필리버스터 만든 원혜영, 70세 맞아 '웰다잉' 이끈다

중앙일보 2019.12.27 00:14 종합 28면 지면보기

총선 불출마하고 ‘웰다잉’ 운동으로 가는 원혜영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사실 70대는 70대에 맞는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며 ’나이가 먹는다는 거는 생활의 무게, 생활의 짐을 덜어 놓는 과정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원혜영 민주당 의원은 ’사실 70대는 70대에 맞는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며 ’나이가 먹는다는 거는 생활의 무게, 생활의 짐을 덜어 놓는 과정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원혜영(5선·68)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또 한번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30세에 풀무원 식품을 창업했다. 7년간 운영해 100억 매출을 달성한 후 정치에 뛰어들었다. 고 제정구 의원,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 등과 한겨레민주당을 창당해 13대(1988년) 총선에 나섰다 낙선했다. 1992년 민주당으로 출마해 배지를 단다. 정치인으로 30여년을 보냈다. 그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70세부터는 새 인생을 살겠다”고 했다. “즐거운 인생을 위해서”라며. 그가 마지막으로 뛰어들 분야는 ‘웰다잉’(well- dying)이다. 그와 지난 19일과 24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두 차례 만나 인터뷰를 했다. 그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참 복이 많은 정치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겸양을 떨려는 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생각이 항상 든다”고 했다.
 

풀무원 창업, 30년 정치 활동 접고
웰다잉 문화운동으로 봉사 인생
정치는 양극화, 권위·영향력 잃어
여야 관계도 오그라들어 안타까워

불출마 결심은 오래된 걸로 아는데.
“20대 총선을 준비하면서였다. 이번 국회를 끝으로 정치활동을 정리해야겠다 생각했다. 특별히 큰 원칙이 있는 건 아니고…. 20대 국회가 끝나면 70살이 되는구나. 그럼 30년이 되는데 마무리할 때라 생각을 한 거다.”
 
은퇴하긴 이르다고들 하지 않나.
“70살부터 그래도 한 10년, 욕심내면 10여년은 제2의 인생을 좀 더 여유 있게, 뭐랄까 즐겁게, 또 재미있게 생활할 몫도 남아있는 거 아니냐. 그러니 정치를 더 하다 보면 그걸로 끝낼 수밖에 없는데, 그게 너무 좀 아깝다. 나이 70살이면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딱 좋은 나이 아니냐. 사실 70대는 70대에게 맞는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역기를 들어도 30대에 들던 역기의 무게를 지금 들겠다면 무리다. 나이가 먹는다는 거는 생활의 무게, 생활의 짐을 덜어 놓는 과정이 아닌가.”
 
새로운 출발이 쉽지만을 않을텐데.
“하던 걸 그만두고 새로운 걸 하면 항상 쉽지 않은데…. 그런 점에서 보통 사업하다 망하면 그만두고 정치도 떨어져 그만두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런 점에서 사업하다 그만둬 봤으니 내가 훈련된 건지도 모르겠다.”
 
정치하면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개헌을 통해 협치를 제도화할 수 있도록 권력구조를 개편하고, 선거제도는 국민 표의 등가성을 최대한 확보하고, 정치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어우러졌을 때 정치 개혁의 기틀이 완성된다고 봐왔다.”
 
1971년 10월, 원혜영 의원은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징집을 당했다.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부대에 배치됐을 때의 모습. 오른쪽 맨 위가 원 의원.

1971년 10월, 원혜영 의원은 학생운동을 하다 강제징집을 당했다. 강원도 철원의 최전방부대에 배치됐을 때의 모습. 오른쪽 맨 위가 원 의원.

안타까운 게 그게 하나만은 아닐 텐데.
“국회에서 30년 동안 일하면서 정리된 생각은 국민은 일하는 국회를 원한다. 이를 실현하는 요체는 단순하다. 헌법과 법에 정해진 국회 운영에 대한 기본, 그 원칙만 지키면 된다. 국회가 성과를 내는 일은 정쟁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기껏 의원들 뽑아 놓으면 임기가 시작되고도 개원 협상을 한답시고 몇 달을 끈다. 굉장히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국회는 한 달에 두 번 이상 법안을 심사하도록 돼 있는데, 여야 간의 대립이 있으면 보이콧을 하거나 그런 일이 없는데도 슬그머니 여야가 합의를 또 안 한다. 정말 국민한테 죄송스러운 일이다. 기본적으로 국회의 의사일정은 정치적 협상의 대상으로 하지 말고, 당연히 의원으로서 회의 규정은 다 준수를 해야 한다.”
 
연말 국회도 그렇지만 정치가 갈수록 타협과 협상이 없어지고 있다.
“이 양극화가 경제적인 측면이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꼭 진보·보수로만 얘기할 거는 아니고 더 편향돼 가는 것 같다. 미국 정치 원로들도 미국 의회가 종족 간의 전쟁터로 전락해가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우려를 얘기한다. 참 걱정이다. 사회 변화가 너무나 전면적이고 빠르고 강해서 그럴수록 정치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치는 정반대로 훨씬 더 권위와 영향력을 스스로 잃어가고 있다.”
 
예전의 여야 관계와 지금은 어떤가.
“점점 정치가 좀 오그라드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정치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국회선진화법이 생기기 전 몸싸움 없는 국회를 만들자는 요구가 강했고 나 스스로도 그런 각성 하에서, ‘더는 국민을 실망하게 하는 몸싸움 장소로 국회를 전락시키지 말자. 그래서 그 대안으로 필리버스터를 전면 도입하자’고 생각했다. 제가 설득해서 당론으로 채택한 게 선진화법이었다. 몸싸움 대신 말로 싸워라. 소수세력이 자기네 주장을 국민에게 알릴 기회를 충분히 주자는 거였다. 가결을 위한 조건 60%와 필리버스터가 선진화법의 양대 축이다. 그걸 만든 게 기억에 남는다.” (※원 의원은 2012년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 온건파 의원들과 선진화법을 만들어낸 주역으로 꼽힌다)
 
원혜영 의원이 부천시장이었던 2002년, 정치적 동지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돼 주최한 한 행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원혜영 의원실]

원혜영 의원이 부천시장이었던 2002년, 정치적 동지였던 고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의 대선후보가 돼 주최한 한 행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원혜영 의원실]

기억나는 성과라면.
“의원직 못지않게 부천시장으로 일한 게 훨씬 재미있고, 보람 있고, 성과를 많이 냈다. 대표적인 게 버스도착시간 안내시스템이다. 전국과 전 세계에 IT 기술을 기반으로 다 구현되고 있다. 그걸 전국에서 최초로 전면 도입해서 실행한 데가 부천시다.”
 
몇 년도죠.
“2001년에 했고, 서울이 2006년에 전면 도입해 전국으로 퍼졌다. 나로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게 행정 서비스의 영역을 부단히 깨려고 했다. 첨단 기술 기반의 버스 정보 시스템을 개발한다고 했더니 ‘이게 시가 할 일이냐’며 공무원들이 황당해하더라고. 그러는 걸 설득해냈다.”
 
총선 이후의 계획은.
“최근 열심히 한 게 IP(intellectual property), 즉 지식재산권 소송에서 대한민국을 허브 국가로 만들자는 거였고, 또 하나는 웰다잉 문화조성 사업이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안 하면 병원이 처벌받아서, 전혀 회생 가능성이 없는 사람도 연명해서 인공호흡기를 끼우고 심폐소생술을 한다. 그래서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걸 법제화했다. 연명의료기본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웰다잉은 시민들 전체의 문제로 생활 문화 운동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내가 민간인이 돼 할 일이 웰다잉 운동이다.”
 
어떻게 할 계획인가.
“지금 5만명 이상이 연명 의료에 대한 자기 결정으로 연명 의료를 안 받을 수 있게 됐고,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서약한 사람들이 지금 30만명이 넘어섰다. 법제화는 됐으니 시민들의 생활문화, 사회문화 운동으로 확산시키고 싶다. 또 평생 모은 재산을 내가 죽을 때 어떻게 정리하느냐도 중요하다. 그런 결정이 없으면 법의 기준으로 집행되는 건데 참 안타깝고, 참 아름답지 못한 일이다. 이런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자원봉사 차원에서 웰다잉에 관련된 강연, 상담 같은 걸 할 생각이다. 지금 참여하고 있는 단체는 웰다잉 시민운동이다. 거기서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봉사할 생각이다.”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
“벌써 5년 됐나, 의료계 인사들로부터 무의미한 연명 치료 때문에 많은 분이 고통을 당한다는 하소연을 듣고 이렇게 중요한 일이 있었나 싶었다.”
 
정치 그만둔다고 하니까 생각나는 분은.
“돌아가신 아버님이 내가 정치할 때 걱정하셨던 생각이 난다. 두 가지를 물으셨다. ‘정치하면 금전의 유혹에 휩쓸리기가 쉬울 텐데, 그거 안 할 수 있냐’ 그래서 ‘제가 풀무원 사업 잘되는데 왜 거기서 손을 떼고 정치에 나가겠습니까. 전혀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근데 두 번째 질문은 아주 어려웠다.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게 할 수 있냐’ 그래서 (웃으며) ‘그건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약속드릴 수 없지만, 사람의 기준으로는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말씀드렸다. 또 한 분은 김대중 대통령인데 2004년 부천시장을 마치고 다시 국회에 왔을 때 칭찬을 해주셨다. ‘아 자네는 사업도 잘했고, 시장도 잘했고, 그러니까 정치도 잘할 거야’라고. 그 기억이 난다.”  
 
웰다잉(Well-Dying)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평안한 삶의 마무리를 일컫는 말이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일이나 생전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는 일 등이 웰다잉의 영역에 속한다. 잘 먹고 잘사는 웰빙만이 아니라 행복한 죽음 역시 중요한 일이다.

 
신용호 논설위원
 
※김혜린 인턴기자가 인터뷰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