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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 이회창·김덕룡과 ‘문예련’ 창립, 그때 국회엔 낭만이 있었다

중앙일보 2019.12.27 00:05 종합 14면 지면보기
신영균씨 부부(오른쪽)가 1996년 9월 정동극장에서 김종필 전 총리 부부와 함께 판소리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신영균씨 부부(오른쪽)가 1996년 9월 정동극장에서 김종필 전 총리 부부와 함께 판소리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요즘 국회에서 정치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싸우기만 하는 것 같아요. 이제는 좀 우수한 국회의원을 격려하자는 뜻에서 ‘헌정대상’을 만들었습니다.”
 

빨간 마후라, 후회 없이 살았다 - 제132화(7641)
<12> YS 권유로 1996년 정계 입문

15·16대 의원 지내며 예술 확산 꿈
여야 대선주자들 대거 연구회 참여
창립총회 땐 최진실도 자리 빛내
정쟁만 하는 요즘 정치 보면 갑갑

지난 16일 국회 헌정회에서 열린 헌정대상선정위원회 위촉장 수여식에서 한 말이다. 헌정회는 전·현직 국회의원 모임이다. 나는 ‘제1회 대한민국 헌정대상’ 심사위원장을 맡게 됐다. 20대 의원과 전국의 시장·군수 등의 공적을 심사해 내년 상반기에 시상할 예정이다.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맡을 자격이 있나 싶어 몇 번이나 고사했지만 헌정회 측의 삼고초려에 결국 수락했다.
 
국회를 다시 찾은 건 3년여 만이었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 회장이던 1996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YS)의 제안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2004년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영화예술계 관련 업무나 사업에 몰두하며 바쁘게 지냈다. 대통령 취임식 때나 2015년 YS 영결식 등 중요한 행사에는 참석했지만 헌정회 일정이나 15·16대 국회의원 모임 등에는 거의 얼굴을 비치지 못했다.
 
“오랜만에 나오시니 인기가 좋네.”(유흥수 전 주일대사, 12·14·15·16대 의원)
 
“전 어릴 때부터 너무나 팬이었어요. ‘남기고 싶은 이야기’ 1화부터 쭉 잘 읽고 있습니다.”(안명옥 전 국립중앙의료원장, 17대 의원)
 
최근 헌정대상 심사위원장으로 국회 찾아 
 
지난 16일 신씨가 제1회 국회 헌정대상 심사위원장에 위촉된 모습. [사진 헌정회]

지난 16일 신씨가 제1회 국회 헌정대상 심사위원장에 위촉된 모습. [사진 헌정회]

동료·선후배 의원의 덕담과 기념사진 요청에 머쓱해졌다.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신낙균 의원도 오랜만에 만났다.
 
“두 사람은 ‘오누이’나 마찬가지야. 이름도 한 글자만 빼고 똑같아, 허허.”(유경현 헌정회장, 10·11·12대 의원)
 
유 회장 말대로 우리는 오누이라 불릴 만큼 가깝게 지냈다. 15대 국회에서 나는 신한국당, 신 의원은 새정치국민회의 소속이었다. 97년 대선을 거치면서 여야가 바뀌었지만, 나는 야당 의원이 돼서도 문화예술계를 위한 일이라면 화끈하게 협력했다. 내가 국회의원을 할 때만 해도 여의도 정치에는 낭만이 있었다. 특정 현안이나 정책·법안·예산을 두고 치열하게 싸우더라도 지나친 비방이나 인신공격은 삼가려고 했다. 내 인생철학도 그랬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신영균이 누구 뒷말하는 걸 들어본 사람 있느냐”고 너스레를 떨곤 한다.
 
그런데 이날 찾은 국회 풍경은 어딘가 좀 낯설었다. 그저 오랜만이라서는 아니었다. 국회에 들어설 때부터 국회 담장을 따라 쳐놓은 경찰버스 바리케이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공수처법(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선거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국회에서 열린 날이었다.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해야 할 국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국회의원 숫자를 몇 개 늘리고 줄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나라의 경제와 안보가 아니던가. 국민이 안심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여야 할 것 없이 애국심으로 정치를 해줬으면 한다.
 
나는 문화에도 여야가 없길 바랐다. 96년 국회에 들어오자마자 가장 공을 들인 프로젝트는 문화 예술을 통한 여야 화합의 장을 많이 마련하는 일이었다. 문화예술 활성화 없이는 21세기 선진국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이를 국회 차원에서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고자 ‘국회 문화예술연구회’를 설립했다.
 
과거엔 여야 싸워도 인신공격은 안 해 
 
연구회

연구회

그해 6월 15일 연구회는 정회원 20명과 준회원 등 64명 규모로 출범했다. 이회창·김덕룡·최형우·김상현 등 당시 여야의 대권 잠룡으로 불리던 중진급 의원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가수 출신 국회의원 1호인 최희준 의원, 소설 인간시장으로 유명한 김홍신 의원, 작가 출신인 김한길 의원 등 문화예술 관련 의원들도 힘을 보탰다. 특히 창립총회 날에는 당시 인기 배우 최진실씨와 김무생씨도 와서 자리를 빛내주었다.
 
“최진실씨, 국회에 문화예술연구회가 새로 생기는데 와서 힘 좀 실어줘요.”
 
“선생님, 꼭 갈게요. 앞으로도 도울 게 있으면 제가 적극 돕겠습니다.”
 
이제는 고인이 된 두 사람에게 다시 한번 그때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최진실씨는 정말 예의바르고 야무진 후배 배우였다. 김무생씨도 나와 참 많은 작품을 하며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지난해 김씨의 아들 주혁씨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팠다. 고(故) 김주혁씨가 55회 대종상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내가 시상을 했던 남다른 인연이 있다.
 
이후로도 연구회 활동은 꽤 주목받았다. 정기국회 개회식 날인 9월 10일에는 서울 정동극장에서 ‘국회 문화예술의 밤’ 행사를 열어 국악 공연을 함께 봤다. 연구회 회원뿐 아니라 국회의장과 3당 대표를 포함한 299명 의원 모두에게 부부 동반 초청장을 보냈다. 물론 다 오진 못 했지만 이런 대규모의 국회의원 부부 동반 문화행사는 이때가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쟁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여의도 땅에도 한 그루 예술나무를 심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언젠가는 꽃 피우고 열매도 맺길 바라면서 말이다. 지금 눈앞의 상황이 갑갑하기만 하다.
 
정리=박정호 논설위원,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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