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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1차 협력사만 약자?…2차 협력사는 피눈물 난다

중앙일보 2019.12.27 00:04 경제 5면 지면보기
전국건설노조가 10월 30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건설기계 임대료 30일 이내 지급 및 불법다단계 하도급 근절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뉴스1]

전국건설노조가 10월 30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건설기계 임대료 30일 이내 지급 및 불법다단계 하도급 근절을 촉구하며 행진하고 있다. [뉴스1]

#2013년 경기도 수원의 택지지구 건설현장에서 1차 하도급업체가 잇따라 부도가 나면서 2차 하도급업체가 자재·장비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한 1차 하도급업체의 경우 시공사로부터 대금을 받았지만 3~6개월짜리 어음 발행을 남발하다 부도를 냈다. 결국 10억원이 넘는 손해는 자재·장비 관련 2차 하도급업체가 온전히 부담해야 했다.

건설업계 불법 하도급 만연한데
진짜 약자인 2차 협력사는 방치
“대기업 규제에 매몰돼 현실 무시”

 
#시공사 A는 하청업자 B에게 하도급 대금을 제때 줬다. 그런데 B가 2차 협력사 대금을 주지 않았다. 돈을 받지 못한 인부들이 현장을 점거했다. 공사가 늦어지다 보니 지체보상금, 작업원가 상승 등을 포함해 5억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 더욱이 하청업자 B는 부도를 내 각종 가압류 및 민원이 발생하고 말았다.

 
최근 대한건설협회가 조사한 하도급 불법사례들이다. 건설산업기본법(건산법) 29조에 따르면 시공사에서 공사를 하청받은 업체는 공사를 다시 재하청 줄 수 없게 명시돼 있다. 시공사(원청업자)의 허락을 받거나, 공사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예외적인 경우만 가능하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불법 재하청이 비일비재하다. 공사 범주가 넓은 건설업계의 특성상 발생하는 ‘사각지대’다.

 
아파트 공사를 예로 들면 발주자가 시공사에 공사를 맡기면 시공사가 모든 공정을 직영으로 할 수 없으니 전문업체에 몇 가지 공정을 하청 준다. 문제는 그다음의 영역이다. 하청을 받은 1차 협력사가 2차로 재하청을 주는 경우다.

 
강운산 대한건설협회 전문위원은 “하청업체는 재하청을 줄 수 없고 직접 시공해야 하지만 무면허 사업자에 대한 불법 재하도급이 만연한 상황”이라며 “조사 결과 건설현장에서 발생하는 임금 및 대금체불의 80%가 재하청 과정에서 근로자나 자재장비업체에 대한 체불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건산법에는 하청의 불법 재하도급에 대해 영업정지(또는 과징금)를 하도록 제재하고 있다.

 
하지만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하도급법)에서는 이를 제재하는 내용이 없다. 강 위원은 “하도급법이 원청업자(시공사)에 대해서만 각종 규제를 갈수록 강화하고, 불법 재하청을 일삼는 1차 하도급자에 대해서는 약자라며 관대하게 대하는 것이 문제”라며 “진짜 경제적 약자인 2차 협력사가 방치되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반면 건설업계는 이번 정권 들어 하도급 관련 규제가 더 강화되고,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인센티브 제도가 줄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것이 하도급 대금지급보증 면제제도다. 현행 하도급법에는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 우수기업인 시공업자(원청)에 대해 하도급 대금 지급 보증서를 끊지 않아도 되게끔 면제해주고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기준을 삭제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해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인센티브 제도가 없어지면 비용 부담이 꽤 크다.

 
결국 발주자 부담이 커진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지난해 하도급 금액 기준으로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신용평가 우수기업 상위 15개가 업체 지급 보증서를 발행하기 위해 드는 수수료만 연간 200억~300억원에 달한다.

 
정수근 법무법인 클라스 변호사는 “하도급법의 출생 자체가 대기업의 불공정한 하도급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시장 현실과 달리 대기업 규제에만 주목하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라며 “재하도급 거래에서 불거지는 병폐가 만연한 만큼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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