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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규 하고픈 역 해"···영화 '천문' 세종 역 뒤엔 최민식 의리

중앙일보 2019.12.25 17:56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왼쪽부터) 세종 역의 한석규와 장영실 역 최민식이 촬영 막간 웃음을 터뜨렸다. 36년지기의 편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왼쪽부터) 세종 역의 한석규와 장영실 역 최민식이 촬영 막간 웃음을 터뜨렸다. 36년지기의 편안함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장영실이 처음 세종 앞에 물시계 브리핑을 하고 근정전에 불려가서 둘이 같이 벌러덩 누워 별을 보잖아요. 그게 (한)석규 아이디어거든요. 시나리오엔 그저 궁 후원 바위 같은 데 앉는 거였는데 석규가 ‘별을 누워서 봅시다’ 그랬어요. 이야, 무릎을 탁 쳤죠. 파격이잖아요. 그게 세종 캐릭터야. 신분이 뭐가 중요하냐. 같은 뜻을 품고 같은 곳을 바라보면. 노비 출신인 장영실은 감동이죠. 나를 알아주는 주군한테 자기 능력을 200%, 300% 다하고 싶지 않았겠어요.”

새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감독 허진호, 26일 개봉, 이하 ‘천문’)에서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 역에 나선 배우 최민식(57)의 말이다.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자리에서다.  
영화는 관노로 태어나 천부적인 재능으로 종3품 대호군에 오른 장영실과 세종대왕이 20년간 신분을 뛰어넘어 이룬 우정과 업적을 그렸다. 세종대왕 역의 한석규(55)와는 ‘쉬리’ 이후 20년 만에 스크린에서 재회했다.  

'서울의 달' '쉬리' 스타 최민식·한석규
26일 개봉 영화 '천문'서 20년만에 재회
세종대왕·장영실 신분초월 '브로맨스'

'뿌리깊은 나무' 이어 세종 역 한석규
"민식 형님과 재즈 연주하듯 연기했죠"

 

'올드보이'도 같이 할 뻔했죠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 역을 맡은 최민식을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조선시대 과학자 장영실 역을 맡은 최민식을 19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동국대 연극영화과 82‧83학번 선후배인 두 사람은 충무로의 소문난 ‘절친’이다. 그런 시너지 덕일까. 함께한 작품마다 평가도 좋았다. 신인시절 처음 호흡 맞춘 MBC 드라마 ‘서울의 달’(1994)에선 옥수동 제비족 홍식(한석규)과 순박한 고향친구 춘섭(최민식) 역으로 시청률 48%를 거두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때 제가 MBC 공채였고 민식이 형은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떻게 우연히 둘이 발탁됐죠. 방송국에서 만날 때까지 전혀 몰랐어요. 상대역이 형일지.” 

23일 따로 만난 한석규가 귀띔했다.  
드라마 '서울의 달' 당시 갓 30대이던 한석규와 최민식이 촬영 현장에서 대본을 보고 있다. [중앙포토]

드라마 '서울의 달' 당시 갓 30대이던 한석규와 최민식이 촬영 현장에서 대본을 보고 있다. [중앙포토]

3년 뒤 코미디 영화 ‘넘버 3’에선 깡패 같은 검사(최민식)와 뺀질뺀질한 조직 넘버 3(한석규) 역으로 입담을 겨루며 시대를 풍자했다. 각기 남북한 요원 역으로 총구를 맞댔던 ‘쉬리’(1999)는 한국형 액션 블록버스터 시대를 열며 전국 582만 관객(영화진흥위원회 공식통계 기준)이란 당시로선 대기록을 세웠다.  
“‘올드보이’(2003) 때도 박찬욱 감독한테 유지태 역할을 추천했는데 기회가 무산돼서 아쉬웠어요. 지태도 참 잘했지만, 석규가 하는 우진도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최민식의 말이다.  
 

세종·장영실의 절절한 브로맨스

이번 ‘천문’엔 그런 오랜 기다림이 다분히 묻어난다. 물시계‧천문의기 등 명나라도 시샘했던 장영실의 발명품도 신묘하게 소개되지만 정교한 원리보단 그에 얽힌 세종과 장영실의 신뢰와 애정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아버지는 원나라 기술자, 어머니는 부산 동래현의 관기라 전한다는 관노 출신 장영실이 세종에 발탁돼 재능을 펼치는 과정이 마치 신데렐라 스토리, ‘브로맨스’처럼 그려진다.  
영화에서 세종대왕(한석규)이 아직 노비 신분이던 장영실(최민식)에게 물시계 원리를 듣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세종대왕(한석규)이 아직 노비 신분이던 장영실(최민식)에게 물시계 원리를 듣고 있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들의 업적을 찍어누르려는 명나라와 조선 사대부들의 방해공작도 둘 사이의 애틋함을 더한다. 그토록 사랑받던 장영실은 왜 하루아침에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세종실록』 등에 남은 한줌의 기록에 상상을 보탰다.  
허진호 감독이 오랜 사이인 최민식, 한석규를 캐스팅한 것도 신분을 초월한 이 ‘관계’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가 배역을 정해주지 않고 두 배우가 상의해서 뭘 할지 정해 달라 했단다. “형은 아무거나 괜찮다”는 최민식의 말에 사흘 고민 후 한석규가 세종이라 답했다.  
 

최민식, 내가 세종 했다면?

영화에서 장영실이 임금의 가마 '안여'에 세종이 좋아하는 천문도를 정성껏 그리는 모습. 과학기기를 궁리하다 잠든 장영실을 세종이 슬쩍 들여다보는 장면 등 두 사람의 끈끈한 사이를 강조항 장면이 많이 나온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에서 장영실이 임금의 가마 '안여'에 세종이 좋아하는 천문도를 정성껏 그리는 모습. 과학기기를 궁리하다 잠든 장영실을 세종이 슬쩍 들여다보는 장면 등 두 사람의 끈끈한 사이를 강조항 장면이 많이 나온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최민식은 “저는 둘 다 좋았다. 장영실은 워낙에 기록이 없어서 할 게 많겠다, 욕심이 생기더라”며 “역사극을 참 좋아하는데, 이번엔 (그 해석이) 좀 더 자유롭길 바랐다”고 했다. “세종의 처소에서 (별자리 모양으로) 창호지 뽕뽕 뚫고 굉장히 아이들 장난 같은, 몽상가의 순수함, 천진함을 보여주고 싶었죠. 사실 지금 영화에서 보인 것보다 둘의 관계가 더 구체적이고 좀 더 진폭이 보였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어요.”  
또 “영화 보니 ‘개새끼’라 욕도 하는 석규의 인간적인 세종이 좋더라”며 “정형화된 왕의 권위를 한순간에 벗어버린다. 내가 만일 세종을 했으면 정남손(김태우·극 중 명에 충성하는 사대부) 걘 모가지 날아갔다. 그 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석규가 유머러스하고, 아주 여우같이 잘 표현했다”고 돌이켰다.  
 
 

한석규, '뿌리깊은 나무'와 다른 세종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은 한석규를 2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은 한석규를 2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민식이 형이 세종 역을 원했다면 ‘하세요, 형님’ 했겠지요. 근데 형이 ‘굿맨’, 좋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참 선배가 어려운 거겠죠.” 한석규가 가만히 웃었다.

그의 세종대왕 연기는 2011년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이후 두 번째다. 한글창제 뒷얘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그는 세종을 점잖은 성군이 아닌 소탈하고 고뇌하는 군주로 연기했다. ‘천문’의 세종은 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는 독립투사 안중근, 충무공 이순신을 들며 “보통 사람이면 포기할 상황에 죽음을 불사하고 위대한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뭘까”라 자주 자문한다 했다. “세종의 그 끊임없는 창작 활동의 원동력이 어머니인 것 같았다”고 했다.

“어머니 입장에선 군인집안 남편과 사랑도 없이 정략결혼해서 처갓집에서 왕(태종) 만들어줬더니 그 남편이 자기 집안 남자 형제를 다 죽였잖아요. 그 엄청난 한을 곁에서 본 어린 세종, 이도(세종의 이름)는 어땠을까. 왕이 됐을 땐 절대 (아버지 같은) 그런 짓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정말 한 사람이라도 돕고 살려야지, 그런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를 향한 마음이 신분을 초월해 백성을 귀하게 여긴 세종의 애민정신의 뿌리 아니겠느냐는 얘기였다.  
영화엔 세종대왕 즉위 초기부터 세종24년 명나라와 갈등을 겪는 시기까지 20여년에 걸친 세월이 그려진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엔 세종대왕 즉위 초기부터 세종24년 명나라와 갈등을 겪는 시기까지 20여년에 걸친 세월이 그려진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 연기가 일렉기타면, 석규는 베이스죠

“저희가 하는 대사는 노래에요. 잘 짜인 음악이 돼야 하거든요. 제가 일렉기타면 석규는 베이스. 그래서 우리가 참 잘 어울려.”
최민식의 말대로다. ‘천문’은 절절 끓는 그와 담백하게 감기는 한석규의 연기가 화음처럼 어우러진 영화다. 
“진짜 캐릭터도 석규는 ‘민식성~ 오늘 뭐 먹을거야아~’ 평소 말투가 그래요. 얼마나 어르신 같아요. 스무 살에 본 한석규하고 지금 똑같거든요. 그때 장발 석규가 테리우스처럼 생머리가 참 예뻤죠. 강변가요제도 나가고 얘가 노래 부르면 다 쓰러졌어요. 또 배우로선 연예계란 동네에서 저렇게 직업관, 연기관을 올곧게 성실하게 지켜가는 친구가 과연 몇이나 되겠냐 이거에요. 요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내가 정신이 한 500년 나갔었구나, 후배지만 배울 점이 많아요.”
송능한 감독의 영화 '넘버 3'(1997)에선 최민식이 깡패같은 검사, 한석규가 조직 넘버3로 올라선 진짜 깡패 역으로 코믹하게 호흡을 맞췄다. [사진 시네마서비스]

송능한 감독의 영화 '넘버 3'(1997)에선 최민식이 깡패같은 검사, 한석규가 조직 넘버3로 올라선 진짜 깡패 역으로 코믹하게 호흡을 맞췄다. [사진 시네마서비스]

 

민식 형님 자취방서 이런 놀이 했죠

한석규는 “요번에 형님과 ‘우리 재즈 연주하듯 해보자’했다. 척하면 착이었다”며 “민식이 형하곤 얘기가 잘 통한다. 추억이 많고 같이 연기도 하지만, 공통의 관심사는 결국 사람”이라 했다. “앞서 인터뷰에서 형님이 ‘나에게 있어 연기란 죽어야 끝나는 공부다’ 그 말을 했어요. 그 말은 후룩, 내뱉은 게 아니라 연기란 걸 좋아한 순간부터 고민하고 내린 정제된 말이에요. 100%, 1000% 이해됐죠. 저도 그렇거든요.”
그는 “이번에 (영화에 함께한) 신구 선생님께 ‘저희들도 꽃으로 치면 조금 지고 있는 편이에요’ 했더니 ‘이제 폈다, 이놈들아. 화알짝 만개를 했지’ 그러시기에 고개를 푹 숙였다”면서 최민식의 자취방을 오가던 빈털터리 대학 시절을 떠올렸다. “종이 한 장 놓고 1000만원 생기면 어떻게 쓸까. 형님 일단 담배를 한 100보루 킵합시다. 이런 놀이도 했죠. 형이 극장에 데려가서 로버트 드 니로 영화 ‘디어 헌터’도 보여줬어요. 그 형님 아직 휴대폰 컬러링이 ‘디어 헌터’ 주제가 ‘카바티나’에요. 그 소리 들으면 딱 그래요, 제가. 형님,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입니다.”
영화 '쉬리'에선 한석규가 남한 특수요원으로 북파 조작원 역의 최민식과 맞섰다. [사진 강제규필름]

영화 '쉬리'에선 한석규가 남한 특수요원으로 북파 조작원 역의 최민식과 맞섰다. [사진 강제규필름]

영화 '쉬리'에서 최민식. [사진 강제규필름]

영화 '쉬리'에서 최민식. [사진 강제규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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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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